【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1999년 6월 30일 새벽 1시 30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교사 544명이 잠자고 있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 불길이 치솟았다. 1층 콘크리트 건물 위에 컨테이너를 2층으로 쌓아 만든 건물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화재는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나리(23·가명) 씨는 당시 불길을 피해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다. 불과 일곱 살의 나이에 재난의 한가운데 섰던 그는, 이제 스물세 살 대학생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섰다.
최 씨는 사고 이후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제2회 어린이트라우마컨퍼런스에 참석해 '나의 트라우마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베이비뉴스가 공동으로 마련한 행사다.
"컨퍼런스에 참여하기로 한 뒤에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16년 전의 사건을 다시 고백하기 위해 선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울먹이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저의 작은 용기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며 포기하지 않고 발표를 이어나갔다.
최 씨는 화재가 시작된 301호 바로 옆인 302호에 머물고 있었다. 같이 손잡고 유치원을 다니던 쌍둥이 친구 둘은 301호에서 자다 목숨을 잃었다. 최 씨는 친구를 둘이나 잃었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자신이 어떤 상태인 건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트라우마는 번번이 최 씨를 괴롭혔다. 방문이 닫히는 게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방문이 닫히면 집안이 불길에 휩싸이는 환상이 보였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진 차에 오르는 것조차 두려웠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불이 나는 장면은 차마 보질 못했다.
최 씨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건 사춘기 무렵이었다. 부모 몰래 씨랜드 화재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죄책감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볼 때마다 괴로웠다.
성인이 돼도 트라우마는 진행 중이다. 소방차가 경적을 울리면 집에 불이 났을까 가슴이 떨리고, 타는 냄새를 맡으면 안절부절 못한다.
고통은 진행형일지언정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을 위해)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의 마음이 모여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최 씨가 마지막으로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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