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유치원에 한 남자 아이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나은공주한테 심한 장난을 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 또래 아이들이 원래 그렇지, 라고 했는데 다른 아이들한테는 안그런다고 하는군요. 나은공주를 향한 나름의 애정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 "그럼 엄마가 혼내줄까?"라고 하니 "응. 어떻게 혼내줄꺼야?" 하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고 하니 엄청 화가 난 모양입니다. 지난 달만 해도 자기더러 "나보고 예쁘대"라고 했다며 그 아이를 좋아했는데 어느 사이 완전히 마음이 멀어진 모양.
그 아이 말고 나은공주를 좋아하는 또다른 남자아이 이한이. "이한이는 어때? 걔도 나은이 귀찮게해?" "이한이는 안 그래. 이한이는 멋져. 나 지켜줘."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 "나 이한이하고 결혼할까?" 태어난지 4년 2개월밖에 안되는 주제에 너무 앞서갑니다. "너 결혼이 뭔지는 알아?" "알쥐~ 결혼은 둘이 손잡고 이렇게 딴딴따다 하는 거야!"
집사람에게 전해 듣고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흔히 아빠들은 딸이 남자친구가 생기면 "어떤 놈이야?"라고 경계부터 한다는데,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고 솔직히 그 아이를 한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부터 앞서네요. 어린이집을 졸업한지가 이제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요근래 들어 점점 조숙해지는 느낌입니다. 벌써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사회적 성, 즉 젠더(Gender)의 개념이지만요.
늘 느끼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모습은 참으로 재미있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철없는 애기였으니까요. 어린이집에 가서도 또래 친구들과 깔깔대며 즐겁게 뛰어놀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친구라기보다는 단지 같은 공간에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일 뿐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놀이를 하더라도 상호작용 없이 따로 놀거나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따라할 뿐입니다. 하물며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 알리 없었습니다. 그런 애기가 어느 사이 숙녀가 되었다는 사실.
하지만 아빠한테는 절대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얘기는 쉴 새 없이 쫑알거리면서도 아빠가 남자 친구를 물어보면 되려 못 들은 척 하면서 말을 돌립니다. 본능적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걸까요. 대신 엄마한테는 솔직하게 "어떤 남자애가 좋아" 털어놓습니다. 벌써부터 아빠를 빼놓고 여자들만의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서운하면서 한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래봐야 아직 응가도 혼자서 못 닦고 엄마, 아빠의 손을 빌려야 하는 주제에 말이죠.
예전에는 몰랐지만, 아이가 부모의 품에 있는 시간은 인생 전체에서 본다면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만약 직장을 핑계로, 내 시간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무관심했다면 아이의 신비로움을 느낄 기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갈수록 하루하루가 기대된다랄까요.
다섯 살 딸의 첫사랑 스토리, 훗날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 네가 그랬어"라고 이야기하면서 다 함께 웃을 때가 오겠지요.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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