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가르치지 말고 글을 가르쳐 주세요
글자를 가르치지 말고 글을 가르쳐 주세요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5.10.2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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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탈이 납니다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어느집 아이는 3살 때 한글을 뗐다, 4살 때 한글을 뗐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아이도 벌써 다섯 살인데 슬슬 한글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아빠 이름, 엄마 이름도 적고 공주, 뽀로로 같은 평소 나은공주와 친숙하다 싶은 단어를 적어주면서 "이건 공주라고 읽는거야" "이건 하마" "이건 꼬꼬" 하지만 아빠 욕심에는 아랑곳없이 아이는 금새 재미없다며 싫증을 냅니다. 그리고 아빠 손에서 색연필을 빼앗아 그림 그리기에 열중합니다. 옆에서 집사람이 핀잔을 줍니다. "그렇게 가르치니까 애가 싫어하지. 당신은 절대 안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가끔 길을 가다가 간판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 저건 나은이의 나자야. 그리고 나무할 때 나, 나비할 때 나" 또 은행 간판을 보더니 "저거는 나은이할 때 은이야. 은행할 때 은"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글자를 글자가 아니라 그림으로 인식한다던데 굳이 책상에 붙들어 놓고 억지로 가르치지 않아도 익숙한 글자는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가 봅니다.


얼마 전 독서 육아와 관련해 어머니들 앞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글은 언제 가르쳐야 해요?" 사실 여기에 정답이 있을까요?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보니 부모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합니다. 어떤 전문가는 취학 전에 글자를 가르치는 것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는 핀란드의 예를 들어 글자를 빨리 가르치는 것은 아이의 뇌에 혼란을 준다며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또 어떤 전문가는 한글은 영어와 달라서 빨리 가르쳐도 상관없으며 오히려 어린 시기에 한글을 알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어 긍정적인 효과가 높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글을 언제 가르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교육 현실상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읽고 ​쓰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요즘은 조기 교육 열풍 덕분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글을 미리 배우다 보니 학교에서도 한글을 뗐다는 전제 아래 교육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가 한글을 모르고 학교에 들어간다면 당장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올 것이며 수업이나 선생님의 지시 사항을 공책에 받아쓸 때에도 무척 곤란을 겪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한글을 떼게 하겠다며 아주 어릴 때부터 과도한 속도전을 벌이는 것 또한 지나친 강박증입니다. 가령 30개월에 한글을 ​떼고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다면 부모는 우리 아이가 영재라며 으쓱하겠지만, 사실 세종대왕님이 우리 말에 맞추어 워낙 쉽고 과학적으로 만들었기에 어휘력만 받쳐주면 누구나 금세 배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과, 글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얘기라는 사실입니다. 보기에는 아이가 혼자서 책을 술술 읽는 것 같아도 글자를 소리나는 대로 읽고 있을 뿐, 그 안에는 모르는 단어 투성이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글자가 아니라 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책은 언제까지 읽어줘야 해요?" "한글을 떼면 혼자서 읽어도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이가 읽어달라고 할 때까지 읽어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가 아이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면 첫째로 아이는 대화를 통해 어휘력을 늘려나갈 수 있고, 둘째로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성가실만큼 질문 세례를 퍼붓습니다. "이건 뭐에요?" "이건 왜 그래요?"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건 이런 뜻이야" "이건 이래서 그런거야"라고 설명을 들으면서 새로운 단어를 알고 책의 내용을 이해합니다. 만약 혼자 읽는다면 누구에게도 질문할 수 없겠지요.


글자를 가르치지 말고 글을 가르쳐 주세요.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것은 오히려 아이의 호기심과 학습 의욕을 죽이는 것일 뿐입니다. 틈나는대로 책을 많이, 그리고 꾸준히 읽어주면서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럼 아이는 글에 대한 내공이 조금씩 쌓일 것입니다. 준비가 되면 부모가 조급해 하지 않아도 글자에 관심을 가지고 가르쳐 달라고 할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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