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지위 인정하고 역할 알려주니 ‘의젓한 네 살’ 됐어요
형님 지위 인정하고 역할 알려주니 ‘의젓한 네 살’ 됐어요
  • 칼럼니스트 추주형
  • 승인 2015.11.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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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아이 자기 집 정착기에 네 살 형님도 한몫

[연재] 추주형의 명랑가족 창조기


지난 편 예고대로 이번 편은 둘째아이가 집에 정착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형님 연재의 시각과 노력이 중심입니다.


2015년 10월 3일 사진. 형님 연재는 동생 연걸이가 사용할 육아용품을 준비 중입니다. 일거리로 생각하면 고생이지만 식구 한 명 더 생기니 그런 의무감조차 행복입니다. 첫째 연재의 행동은 단지 엄마아빠가 하는 모습을 모방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깊은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좌)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티슈를 집어 물품을 닦고, (우)빨래 정리도 도왔습니다. ⓒ추주형
2015년 10월 3일 사진. 형님 연재는 동생 연걸이가 사용할 육아용품을 준비 중입니다. 일거리로 생각하면 고생이지만 식구 한 명 더 생기니 그런 의무감조차 행복입니다. 첫째 연재의 행동은 단지 엄마아빠가 하는 모습을 모방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깊은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좌)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티슈를 집어 물품을 닦고, (우)빨래 정리도 도왔습니다. ⓒ추주형


◇ ‘미운 네 살’, 형님 된 뒤 ‘의젓한 네 살’로


병원에 있던 동생이 집으로 온 뒤 형님 연재가 변했습니다. 임신기에는 엄마아빠의 ‘안 돼’라는 말이 늘어서인지 의기소침한 면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들에 대한 판단이 제법 빨라졌습니다. 의젓해졌지요. 제 나이또래에 하지 않아도 될 감정컨트롤을 하는 것 같아 엄마아빠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자기방식대로이긴 하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동생이 울기라도 하면 다독이고 코치하는 모습이 대견할 정도입니다. 심술부리거나 동생을 해코지할까 걱정했던 건 괜한 것이 돼 버렸습니다.


사실 연걸이 임신기의 연재는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이었습니다. ‘안아 달라, 업어 달라’는 표현은 엄마아빠의 ‘안 돼’라는 반복된 답변에 현격히 줄어들었고, 누워 있는 엄마 배를 넘어 다니거나 달려와서 부딪히는 등 몸을 쓰는 놀이도 더 이상 엄마와 함께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간 자기주장이 강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규칙에 대한 애착과 본인이 정한 순서대로 일처리를 해야 하는 고집, 이를테면 이불을 털려고 하면 세월아 네월아 낑낑대면서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어서는 기어코 본인이 가져다줘야 하는 것 등이 그런 것이죠. 부모로서 아이에게 배운 점도 있지만, 어린 생각으로 어른 흉내를 내는 것에 엄마아빠가 지쳐 갈 때 쯤, 그 날이 왔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요? ‘미운 네 살’ 연재는 동생을 본 뒤 정말 형님처럼 의젓해졌습니다.


(좌)2015년 10월 5일 사진. (우)2015년 10월 16일 사진. 각각 연재가 그린 공룡과 자동차 그림입니다.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매우 꼼꼼하게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두 동생 연걸이를 위한 그림이라네요. 연재는 ‘연걸이가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림그리기를 완료했습니다. 다른 걸 그리거나 잃어버리지 말라고 아빠에게 신신당부도 하고, 혹시 모른다며 사진도 찍어두라고 하네요. ⓒ추주형
(좌)2015년 10월 5일 사진. (우)2015년 10월 16일 사진. 각각 연재가 그린 공룡과 자동차 그림입니다.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매우 꼼꼼하게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두 동생 연걸이를 위한 그림이라네요. 연재는 ‘연걸이가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림그리기를 완료했습니다. 다른 걸 그리거나 잃어버리지 말라고 아빠에게 신신당부도 하고, 혹시 모른다며 사진도 찍어두라고 하네요. ⓒ추주형


◇ 동생은 아빠만큼 친한 친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하니, 자리를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연재에게 형님 역할을 알려주기로 한 거죠. 더불어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인지시켰습니다.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이해는 임신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엄마배가 불러올수록 연재를 훈육하는 횟수와 강도가 늘어났습니다. 친해야 할 부자 사이가 더 벌어지는 것 같았죠. 동생이 이미 태어났을 때를 가정해 이해시키기를 여러 번, 연재 입에서 “동생 왜 안 나와? 언제 나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나와야 엄마와 다시 놀 수 있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함께 놀이할 동생에 대한 기대감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길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 있으면 동생이 엄마 다리 사이에서 나올 거예요.”라며 뿌듯해 했으니까요.


훈육 초점은, “아빠가 연재를 가르치고 보호하듯, 연재가 동생 연걸이를 가르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님도 동생도 작은 우주”라는 것을 기본으로, 서열이 아닌 가족애와 사회관계를 가르치려 애썼고요.

바라고 바라던 동생이 나왔지만, 형님 연재는 아직도 기다립니다. 어휘 한 두 개라도 구사하고 일어서서 걸으려면, 빨라야 1년은 더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동생의 실체가 더 명확히 보여서인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동생을 챙기는 연재입니다.


2015년 11월 15일 사진. 연재는 10월 초에 그린 공룡 그림과 중순의 자동차 그림 이후, 부쩍 그림그리기에 열중했습니다. 거의 매일 두어 개씩 그려서는 가위로 잘라달라고 하더군요. 11월 들어서는 그리는 것조차 선생님과 엄마아빠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던 중 쏙 마음에 드는 그림이 탄생했나 봅니다. (좌)동생 연걸이가 추울 것 같다며 큰 수건을 덮어주더니, 이내 치워버렸습니다. (우)이유가 뭔지 궁금해 다가가보니, 어제 그렸던 그 ‘마음에 드는 공룡’을 연걸이에게 선물했네요. 연걸이가 좋아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연재는 ‘세상이 참 내 맘 같지 않다’고 느꼈을까요? ⓒ추주형
2015년 11월 15일 사진. 연재는 10월 초에 그린 공룡 그림과 중순의 자동차 그림 이후, 부쩍 그림그리기에 열중했습니다. 거의 매일 두어 개씩 그려서는 가위로 잘라달라고 하더군요. 11월 들어서는 그리는 것조차 선생님과 엄마아빠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던 중 쏙 마음에 드는 그림이 탄생했나 봅니다. (좌)동생 연걸이가 추울 것 같다며 큰 수건을 덮어주더니, 이내 치워버렸습니다. (우)이유가 뭔지 궁금해 다가가보니, 어제 그렸던 그 ‘마음에 드는 공룡’을 연걸이에게 선물했네요. 연걸이가 좋아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연재는 ‘세상이 참 내 맘 같지 않다’고 느꼈을까요? ⓒ추주형


◇ ‘의젓한 네 살’ 연재의 노력


동생 연걸이가 사용할 육아용품을 세탁하고 있는 엄마아빠 곁에 와서 물티슈를 뽑아 드는 연재, 아기의자를 닦는 연재의 표정에 사명감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 모습에 엄마아빠도 즐겁습니다. 일거리로 생각하면 고생이지만 식구 한 명 더 생기니 그런 의무감조차 행복입니다.


큰아들 연재의 행동은 단지 엄마아빠가 하는 모습을 모방하는 것이겠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깊은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한가득 널어놓은 빨래 쪽에 가서 점검도 합니다. 본인이 같이 널었던 걸 꼼꼼히 살피더군요.


동생 연걸이가 태어난 지 한 달 쯤 되던 10월 중순, 형님 연재는 공룡과 자동차 그림 그리기에 열중이었습니다.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색연필을 계속 바꿔 가며 매우 꼼꼼하게 색칠도 했습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광경이어서 엄마아빠는 놀랬었죠. 모두 동생 연걸이를 위한 그림이라더군요. 연재는 ‘연걸이가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림그리기를 완료했습니다. 잃어버리지 말라고 아빠에게 신신당부도 하고, 혹시 모른다며 사진도 찍어두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는 거의 매일 두어 개씩 그려서는 가위로 잘라달라고 했습니다. 11월 들어 그리는 것조차 어린이집 선생님과 엄마아빠에게 부탁했고요. 거실에 있는 연재의 ‘뽀로로 어린이책상’ 위에는 연재가 손수 만든 각종 공룡과 자동차 그림이 늘어갔고, 너저분한 종이 쪼가리들을 정리하려는 깔끔한 엄마와 아들의 신경전에 아빠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연재 녀석이 쏙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아빠와의 소풍을 준비하던 주말 아침, 연재는 동생 연걸이가 추울 것 같다며 덮어주었던 큰 수건을 이내 치워버리더군요. 이유가 뭔지 궁금해 다가가보니, 마음에 들어 했던 그 공룡 그림을 연걸이에게 선물했네요. 연걸이가 좋아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시반사로 버둥거리는 통에 가슴팍에 안겨준 형님 연재의 선물 공룡 그림이 어깨 너머로 떨어져버렸으니까요. 연재는 ‘세상이 참 내 맘 같지 않다’고 느꼈을까요?


(좌)2015년 10월 24일 사진. 거실 매트리스에서 잠든 연재와 연걸이입니다. (우)2015년 10월 27일 사진. 며칠 전 동생 연걸이와 함께 잠든 것이 행복했었는지, 형님 연재가 동생 옆에 누워 이불을 덮어주며 같이 자자고 속삭입니다. 오른쪽 하단 ‘뽀로로 어린이책상’ 위에는 연재가 손수 만든 각종 공룡과 자동차 그림이 즐비합니다. 연걸이이게 줄 선물을,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모양입니다([사진3] 참조). ⓒ추주형
(좌)2015년 10월 24일 사진. 거실 매트리스에서 잠든 연재와 연걸이입니다. (우)2015년 10월 27일 사진. 며칠 전 동생 연걸이와 함께 잠든 것이 행복했었는지, 형님 연재가 동생 옆에 누워 이불을 덮어주며 같이 자자고 속삭입니다. 오른쪽 하단 ‘뽀로로 어린이책상’ 위에는 연재가 손수 만든 각종 공룡과 자동차 그림이 즐비합니다. 연걸이이게 줄 선물을,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모양입니다([사진3] 참조). ⓒ추주형


‘내 맘 같지 않다’고 느꼈을 사람은 또 있습니다. 바로 엄마죠. 신생아인 연걸이가 두 세 시간마다 깨서 울고, 안 울더라도 엄마가 깨서 젖을 먹여야 하니, 우리 부부는 큰아들 연재의 성장발육이 걱정이었습니다. 연걸이가 깰 때마다 연재도 같이 깨서 두리번거리기 일쑤였거든요. 그래서 아빠와 연재는 지금처럼 안방에서 자고, 엄마와 연걸이는 거실로 잠자리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연재를 배려한 조치였지만, 엄마는 한동안 잠자리에 들 때마다 큰아들의 ‘같이 자자’라는 애원을 거부해야 했습니다. 인기 없는 아빠는 혼자 머리만 긁었죠. 어쨌건 이것도 엄마와 같이 자야 할 나이에 굳이 떨어져 자야 하는 큰아들 연재의 스트레스 극복기이자 노력입니다.


거실에 매트리스를 놓다보니 그나마 아래층에 덜 미안하면서 연재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생겼습니다. 연재 연걸 두 형제가 때때로 함께 낮잠도 자는데, 형님 연재는 동생 옆에 누워 이불을 덮어주며 ‘같이 자자, 잘 자라’ 속삭이고, 공룡과 자동차 이야기도 해 줍니다. 스킨십과 애정 표현도 적극적이고 과감합니다. 옹알이에도 일일이 대답해주고요. 기특하지요.


이렇게 동생 연걸이가 자기 집에 편안히 정착하기까지 형님 연재의 노력은 꽤 컸습니다. 명랑한 가족을 만드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연재가 아빠는 자랑스럽습니다.


*‘의젓한 네 살’이라고는 했지만, 제 아들 연재도 ‘미운 네 살’인 게 기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미운 네 살’ 연재 이야기를 담습니다.


2015년 11월 15일 사진. (좌)형님 연재는 동생 연걸이와의 스킨십을 좋아합니다. (우)(하)애정 표현도 적극적이고, 과감합니다. 동생 연걸이가 자기 집에 편안히 정착하기까지 형님 연재의 노력은 꽤 큽니다. 큰 공을 세운 셈이네요. ⓒ추주형
2015년 11월 15일 사진. (좌)형님 연재는 동생 연걸이와의 스킨십을 좋아합니다. (우)(하)애정 표현도 적극적이고, 과감합니다. 동생 연걸이가 자기 집에 편안히 정착하기까지 형님 연재의 노력은 꽤 큽니다. 큰 공을 세운 셈이네요. ⓒ추주형


*칼럼니스트 추주형은 한때 기자였다. 기자를 글쟁이가 아닌 정보쟁이라고 말한다. 학부 및 석사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행정 조직으로 이직했다. 사회복지 관련 입법지원 및 홍보기획을 주요 업무로 오래 다뤘다. 언론과 사회복지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이자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점이 공통분모라고 말한다. 지금은 용기를 내 육아휴직 중이다. 부부 사회복지사로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베이비뉴스 칼럼 연재를 통해 고민하며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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