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양희석의 육아픽
보슬비가 내렸다. 놀자는 하필 이런 날 늦장을 부렸다. 집에서 준비를 다 마쳤을 때는 이미 어린이집 운행차량이 떠난 뒤였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며 놀자와 길을 나섰다. 그 속을 모르는지, 심지어 마을버스를 타지 말고 걸어가잔다.
마음속엔 이런저런 생각이 솟아났다. ‘약속 시간을 지키려면 늦어도 10시엔 집을 나서야 하는데 늦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얼핏들었고, ‘이렇게 비오는 날은 귀찮은데’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찼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래, 오랜만에 한번 걸어가보자’라는 큰(?) 결심을 했다.
좀 돌아가긴 하지만 늘 가던 길로 놀자를 앞세우고 따라갔다. 놀자는 평상 시의 작은 오솔길도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늘 쉬던 곳에서 쉬기도 하면서 계속 길을 갔다. 놀자의 표정이 다르다. 비때문에 평상 시의 풍경과 다른 느낌을 놀자도 느낀 것일까?
특별한 곳을 가진 않았지만 놀자는 자주 보던 풍경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걸어가기로 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뿌듯함이 나만의 자위는 아니겠지?
*사진가 양희석은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서른 즈음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 사진임을 깨닫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사진기자로도 일했으나 2006년부터 프리랜서로 밥벌이와 사진 작업을 하며 살아오고 있다. 2009년 '놀자'가 태어나자 하는 일에 '육아'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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