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도 학습' 언제부터였을까.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기 주도를 기대한 것은. 내가 어렸을 땐 자기 주도든 타인 주도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냥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만 있었을 뿐이다. 참 투박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부모는 아이가 공부를 '그냥 잘하는 것' 말고 스스로 계획하고 성과를 내는 '자기 주도' 학습을 하기 바란다.
자, 그렇다면 이것부터 점검하자. 지금까지 아이가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주도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마트에 들어간다. 아이가 장난감 코너로 재빠르게 달려가더니 자동차 장난감을 집는다. “엄마 나 이거! 이거 살래.” 엄마는 집 안에 쌓여있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장난감을 상기한다. “그런 거 많잖아. 또 그걸 왜 사.” 그때 엄마의 눈은 빠르게 장난감 진열대를 스캔한다. “이게 좋겠다. 차라리 이거 사.”
서점에 들어간다. 아이는 뽀로로가 그려진, 우리가 보기에는 한없이 시답잖은 미술교재를 골라온다. "또 뽀로로? 그런 거 집에 있잖아. 이거 사자. 에이비씨디 있는 거, 이거!" 아이가 한 눈을 파는 사이 아이가 골라온 책을 슬쩍 제자리에 놓아두고 온다.
어디 그뿐이랴. 오히려 아이 스스로 선택해본 것을 나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지금까지 엄마와 아빠가 주도한 삶을 살아온 아이에게 "이제는 학교에 들어갔으니 네가 스스로 해보는 게 좋겠다"며 '자기 주도'의 탈을 쓴 또 다른 '부모 주도'의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내 아이가 자기 주도적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그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야 마땅하다.
성인이 돼서도 일상생활 자체를 주도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
결혼 3년 차인 한 친구는 모든 행동에 앞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김 서방이 나에게 짜증냈어. 엄마가 뭐라고 좀 해봐.”
“엄마, 김 서방이 청소를 안 해. 엄마가 뭐라고 좀 해봐.”
“엄마, 김 서방이랑 싸웠어. 나 어떻게 해야 해?”
그 요주의 김 서방은 아내와 둘이 사는 게 아닌 장모님과 아내, 본인 셋이 사는 것 같다며 피로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대신 고민해주고 대신 결정해주고 대신 행동해주곤 했다. 읽을 책을 고를 때에도,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에도, 학원을 결정할 때에도 늘 엄마가 선봉에 서있었다. 성인이 됐고, 결혼을 했지만 엄마가 빠진 생활을 그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됐다. 그녀는 항변한다. "엄마랑 상의하는 게 뭐가 잘못됐나요?" 상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결정을 누가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한 대학 동기가 군대에서 제대할 무렵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는 데에도 절반 이상은 그의 엄마가 진두지휘했다. "거긴 좀 위험하지 않니? 거긴 좀 지저분하지 않니? 거긴 좀…..." 엄마의 잣대로 평가되고 그렇게 걸러진 아르바이트 자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그 후 그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기 무섭게 엄마에게 전화해 '오늘은 힘이 들었는지 괜찮았는지,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 등 상세히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부모라는 우리는 '아이를 바른길로 이끌어준다'는 명분하에 아이의 삶에 크게 개입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간단하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물어봐 주는 것이다. 아이의 생각과 의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엄마가 하라니까 하는 것 말고 정말 우리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넌 뭘 고르고 싶니? 넌 뭘 하고 싶니?"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그러곤 아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주는 것이다. 때로는 아이가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 부모는 범위만 정확히 정해주면 된다. 예를 들어 "너 뭐 마시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다고 술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범위를 정해주는 거다. '여기 우유가 있고, 여기 주스가 있어. 넌 뭘 마시고 싶니?' 범위는 부모가 정했지만 최종적으로 고민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기저귀를 벗었다. 팬티를 입어야 하는데 아이는 뭔가 익숙하지 않은 팬티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나는 색색의 팬티를 구입해 아이 앞에 펼쳐 보이며 입고 싶은 것을 골라보게 했다. 아이는 강렬한 빨간 팬티를 골랐고 자신이 고른 그 팬티에 애착을 보였다. 자랑스럽게 팬티를 입은 것은 물론이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주도 학습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 본 아이들이 훨씬 쉽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네가 결정해 봐"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꾸준히 물어봐 주는 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 본 경험을 차곡차곡 아이 안에 쌓아주는 일. 그것이 우리 부모가 할 일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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