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나보다 덜 상처 받았으면...
우리 딸은 나보다 덜 상처 받았으면...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8.03.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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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누군가의 독설, 누군가에게는 상처

내 주변에 그나마 금수저를 물고 사는 언니라고 칭송(?)받는 동네 언니가 있다. 아마도 우리 중에 돈이 가장 많아서 금수저라고 몰아 세워주며 커피숍에 갈 때마다 커피를 사달라고 조르면 흔쾌히 기분좋게 커피를 사주는 동네언니! 가끔씩 우리는 우리 중에 제일 부자라며 나름 아부 아닌 아부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얻어 먹곤 했다.

그런 언니에게도 어린 시절 큰 상처로 인해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다며 꺼낸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을 아프게 했다. 더 가슴이 아픈건 놀란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를 남얘기하듯 서스럼없이 하는 언니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들로 어린 시절 상처를 주고 받았는지, 또 배우게 됐는지, 지금도 이런 트라우마가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며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

아빠는 바다고 나는 공주라며 그린 그림. ⓒ차은아
아빠는 바다고 나는 공주라며 그린 그림. ⓒ차은아

◇ '금수저 언니'에게 상처로 남은 엄마에 대한 험담

언니는 금수저의 환경답게 어린 시절 꽤 잘 살았는데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아버지는 자살을 하시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손에 언니를 맡겨두고 돈을 벌러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항상 할머니가 언니에게 ‘네 아빠가 죽은건 다 네 엄마 때문이야. 네 엄마는 널 버리고 갔어’라며 언니에게 엄마에 대해 안좋은 말들을 하셨고, 그런 언니는 어린시절 정말 할머니의 말대로 엄마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언니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하며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모두 오해였고 엄마는 어떻게든 언니와 살아보려고 아둥바둥 미친듯이 일만하고 살았으며 나중에는 형편이 좋아져서 엄마와 같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했다. 어린 시절 힘든 삶으로 인해 할머니의 한스런 이야기들이 푸념이라는 것과 사실이 아닌걸 안 지금에서도 언니는 꼭 그렇게까지 할머니가 자기에게 이렇게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했다.

그 어린 시절 언니는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까? 할머니의 이야기들로 인해 매일 엄마를 원망하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작은 아이의 마음은 왜 어른들은 몰라줬을까? 자라는 시간 동안 이 언니는 친 엄마라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원망하며 지옥처럼 보냈을까? 할머니는 그 어린 아이의 마음에 대못 같은 상처를 박아 놓고는 그리 긴 시간을 원망과 눈물로 보내도록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셨을까?

지금은 무심한듯 얘기하는 언니의 말속에서 나는 언니가 지금도 그때의 상처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속상하셨어도 꼭 손녀에게 그렇게까지 얘기 하셨어야 했나? 30년 전의 세월이 먹고 사는게 바빠서 무식하리 만큼 앞만 보고 사는 세상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손녀에게는 얼마나 큰 두려움이고 원망의 씨앗이 됐을지는 생각을 해보셨을까?

금수저 언니의 이야기에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가슴 아파 했다.

◇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원망의 말을 하지 말자는 다짐

그래서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을 후에 아이에게 더 많은 아빠의 칭찬과 환상을 심어줬다. 아빠는 사랑이를 너무도 사랑하고 아빠는 엄청 자상하며 사랑이를 너무 보고 싶어한다고...

나는 내 딸에게 한번도 아이 아빠 욕을 해본 적이 없다.

아빠가 나랑 엄마를 버리고 다른 이모가 좋다고 떠났다는걸 아이가 알게 되면 아빠에 대한 원망에서부터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그것이 아이가 자라면서 얼마나 삐뚤어진 시각과 인격을 갖게 될지 너무나도 잘아는 나로서는 아이로부터 이 상처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아빠로부터 아이를 지켜주는 방법은 아이에게 아빠에 대해 원망의 말을 하지 말자고 나 스스로도 매일 매일 다짐했다. 어떠한 힘든 일이 오더라도 아이에게만은 아빠의 좋은 이미지만 심어주자라는 마음과 약속을 나는 지금까지도 지켜주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 언니를 보면서 미리 겁을 먹고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와 겪어보지 않은 사실을 자기 것처럼 바라보면 클 우리 아이가 너무나도 걱정이 돼서 아빠로서의 잘못된 실수들을 홧김에라도 얘기해 주고 싶지 않았나보다.

모든 진실을 알게된 아이가 아빠에 대한 실망과 더 큰 상처를 받게될까봐... 그 상처받은 모습을 옆에서 볼 자신도 없었고 눈물을 흘리며 달려올 아이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에 그저 착한 거짓말로 환상이라도 심어주자라고 생각했나보다. 그것이 엄마의 마음으로서 그냥 내선에서 정리하고 해결하자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는 잘못이 없으니... 이기적인 어른들로 인해 두번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금수저 언니의 할머니처럼 나도 우리 딸에게 속상하고 화가 나서 홧김에 아빠에 대해 안좋은 얘기를 하게 되면 그 당시 내 감정은 풀렸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더 커다란 상처를 줬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혹 우연히 아빠를 만나게 된다면 금방이라도 뛰어가서 안기고 싶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아빠라는 사람은 항상 멋지고 자상하고 따듯한 사람이라고 기억 되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환상이든 거짓이든 아이에게는 내가 받은 상처로부터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 아이는 여전히 아빠가 너무 보고 싶고 언제나 멋진 아빠라며 이제는 양육비도 위자료도 보내지 않은 무책임한 아이 아빠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난 여전히 아이를 상처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아이에게 선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 사비를 털어 아빠가 보내준 선물이라며 아이에게 주는 날은 너무나도 행복해하는 우리 딸을 보면서 아빠없이 크게 하는 것이 모두 내 잘못 같아 가끔은 큰 죄책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지금은 내 상황에서 최선의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 우리 딸은 나보다 덜 상처를 받았으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미래를 계획하고 소망하며 1년뒤 2년뒤를 내다보면 살아갈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아직까지도 없다. 매일 매일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가 고되고 지치며 눈물바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와 내 딸은 엄마의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꾸역꾸역 버티며 잘 살아가고 있다.

그 힘들게 버틴 하루 하루를 견뎌내다보면 '나도 이만큼 까지 버텼구나'라고 스스로 되뇌일 때는 나름 기특하다고 생각할 때도 올테니 말이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 상처는 지금도 기억하기 싫고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아픈 추억이라고 하는데... 나는 우리 딸 아이의 어린시절은 '엄마랑 함께 행복했다'라고 포장해주고 싶고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우리 딸은 나보다 덜 상처 받았으면 좋겠고 나보다 덜 아팠으면 좋겠고 나보다 덜 울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 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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