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랑 있니?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랑 있니?
  • 칼럼니스트 노승후
  • 승인 2018.03.2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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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아빠의 독립육아]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자존감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랑 있니?” 육아 초기 아이들과 동네를 다니다 보면 할머니들로부터 가끔씩 듣게 되는 말입니다. 분명히 아빠인 제가 아이들 옆에 있는데도 말이죠. 

제가 전업으로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주변의 시선이었습니다. ‘저 집 아빠는 왜 맨날 평일에 아이들과 다니지?’ ‘혹시 엄마 없이 아빠가 키우는 집인가’라는 궁금함이 그들의 시선에서 느껴졌습니다. 직접 물어보시면 저도 편하게 말씀드릴 텐데 그냥 마음속으로만 삭히게 됩니다. 왜 아빠가 아내 대신 아이들을 키우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려 해도 막상 남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본능적으로 움츠려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육아 시작할 때의 자신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점점 외출조차 두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고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유치원 하원한 아이가 “아빠, 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요”라고 떼를 써도 애써 달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저 스스로 위축이 되니 엄마들 사이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몇 번 씩 아이의 요구를 무시했더니 어느 날 아이가 저에게 한 마디를 하더군요. “아빠, 우리도 친구들이랑 밖에서 좀 놀고 싶어요. 맨날 집에만 있으니 심심해요.” 그 말에 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 속내는 모른 채 하고 오직 저 부끄러운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이 어릴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육아인데, 분명 먼가 잘못되고 있었습니다. 육아의 주인공은 키우는 부모가 아닌데 말이죠. 주인공인 아이들을 서포트하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저는 제가 주인공인 줄 착각했던 겁니다. 아빠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감이 없어지니, 아이들 역시 또래들 사이에서 위축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부터는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외출을 할 때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합니다. ‘남들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남들의 시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자존감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그 당시 아이들의 유치원 등하원은 저에게 부담스러운 숙제 중 하나였습니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들 무리에서 저는 항상 조금 떨어져 쭈뼛쭈뼛 서 있었거든요. 눈인사는 하지만 서로 말을 섞는다는 건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엄마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도 저를 반겨주시고는 이것저것 그동안 저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육아휴직을 하신 거냐”에서부터 “어떻게 전업으로 하실 생각하셨는지 대단하다"라는 반응까지 그렇게 그분들과의 거리감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유치원 등원하는 딸 아이. ⓒ노승후
유치원 등원하는 딸 아이. ⓒ노승후

제가 엄마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섞이기 시작하니 아이들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당당해진 저의 말과 행동에서 아이들도 용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부끄럽게 나오던 “우리 아빠”라는 단어가 친구들 사이에서 부끄럽지 않고 씩씩하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장애물 하나를 넘으니 아이들도 자신들의 장애물을 스스로 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기가 막히게 따라 하니까요. 
 
한번은 “이제는 아빠랑 다니는 거 친구들에게 안 부끄러워”라고 물었더니 큰 딸은 “엄마가 일하고 있으니까, 아빠가 대신해서 우리들과 있어주는 거잖아요. 저는 아빠가 우리들과 있어주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하더군요. 당당한 딸의 대답에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딸들에게 좀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로는 아이들과 외출해도 남들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들의 불편한 시선은 결국 제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경 쓰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만 당당하게 아이들 잘 키우면 되지, 남자가 육아한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독 남의 일에 관심 많은 할머니들이 “오늘은 아빠가 쉬는 날이라서 좋겠네.”라고 하시면 저는 ‘오늘만 쉬는 게 아니라 매일 쉬는데요’라고 넘길 정도로 여유도 생겼습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몇 년 전부터 유행입니다. 아이의 자존감도 중요하고 부모의 자존감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들도 다양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존감을 저는 아이들 덕분에 높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려다 보니 결국 제 자존감까지 올라가게 됐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같이 성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예전에 알고 있던 상하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평등한 관계였습니다. 아이만 크는 게 아니라 저 역시 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자존감 또한 함께 단단해지겠지요.

*칼럼니스트 노승후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TX조선, 셀트리온 등에서 주식, 외환 등을 담당했으며 지금은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5년째 두 딸을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 모두를 경험해 본 아빠로서 강연, 방송, 칼럼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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