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의 먹거리를 챙긴다는 것은...
미국에서 아이의 먹거리를 챙긴다는 것은...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5.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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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어제 싸 준 아이의 점심 도시락: 한식 중에서 먹기 간편하면서도 지나치게 이국적이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준다. ⓒ이은
어제 싸 준 아이의 점심 도시락: 한식 중에서 먹기 간편하면서도 지나치게 이국적이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준다. ⓒ이은

큰 아이가 미국의 킨더가든에 입학할 때까지 나는 아이를 기관에 보낸 적이 거의 없다. 친정어머니의 헌신적인 원조와 학생 엄마의 유연한 편인 시간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관에 보내지 않다보니 내 시간은 더 없어졌지만 아이는 집에서 이것저것 잘 챙겨먹었고 혼자서 지겹도록 뒹굴뒹굴 놀았다. 그리고 집에서 세끼 식사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한식위주의 식사를 계속 하게 됐다. 큰 아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버거와 피자도 좋아했지만 어쩌다 연속해서 몇끼씩 미국식 식사를 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꼭 배앓이를 하곤했다. 킨더가든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됐는데 학교의 급식 메뉴가 지극히 한국적인 내 눈에는 너무 부실해보였다. 시판 냉동 피넛버터와 젤리 샌드위치, 혹은 냉동 치킨 너겟과 같은 메뉴들은 우리집에서는 거의 먹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학교 급식을 먹어보겠다고 했던 큰 아이는 일주일이 지나자 그냥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점심 시간이 30분가량밖에 되지 않는데 그 동안 식사도 하고 운동장에서 놀기도 해야하는 바쁜 아들을 생각하니 간편하게 먹을 만한 것을 생각해야했다. 김치나 멸치같이 한국인이 거의 없는 이곳 학교의 아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이국적일 메뉴도 피해야했다. 냄새때문에 놀림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메뉴는 주로 집에서 직접만든 샌드위치나 꼬마김밥들, 돈까스나 재료를 바꿔가며 만드는 주먹밥 등이었다. 이따금 부리또나 크림소스로 만든 떡볶이나 파스타 샐러드 같은 것도 싸주었다. 채소와 과일은 항상 곁들였다. 아침 시간에는 늘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렇게라도 점심을 챙겨보내면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아이가 오후에 하교하고 돌아와서 확인해보면 도시락이 반이상 남겨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물어보면 늘 노느라, 혹은 배가 불러서가 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나눠써야하는 학교 식당 탓에 킨더가든 아이들은 10시 15분이면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늘 아침을 챙겨먹고 가는 큰 아이는 항상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을 게 뻔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같은 반 아이들의 사분의 일 정도만 도시락을 싸오는데 그 중에 대부분은 런처블즈(Lunchables)를 싸온다고 했다. 후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VIP day 행사(각 학생의 부모님이나 지인 중에 한명씩만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고 점심 시간을 함께하는 이벤트) 때문에 학교에 가게 됐는데 아이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런처블즈는 작은 포장 안에 크래커와 치즈 그리고 햄등이 들어있는 상품으로 미국 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품이다. 미국의 아이들은 간편하게 이 상품을 들고오거나 이와 비슷한 구성으로 도시락을 챙겨와 점심으로 먹는 것이다. 물론 미국 부모들 중에서도 유기농 제품과 슬로우 푸드 위주의 식생활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의 밥상보다는 보다 간편하고 가볍게 챙겨먹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에게는 간식 같은 크래커나 라이스케이크(rice cakes, 한국의 뻥튀기와 비슷하게 생긴 제품으로 맛도 비슷하다)도 크림치즈나 허머스(hummus, 지중해식 콩 버터)를 곁들이면 아이들의 한끼 식사가 된다. 각 영양소는 챙기면서 간편하게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간편식단이다.

하지만 순도 100%의 한국인인 나에게는 무언가 부족해보인다. 한창 때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서 무언가를 집고 씹고 단순히 열량과 영양소를 채우는 것을 떠나서 입과 눈과 코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이나 구성이 엄마의 음식만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하는 일은 아니다.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고 또 대안적인 다른 음식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우리 큰 아이가 배앓이를 자주 안했으면 좋겠고, 많이 먹지는 않아도 적어도 처음 몇 수저는 맛있게 즐겼으면 좋겠다. 반복적인 학교 급식 메뉴보다 조금은 더 다양한 메뉴의 도시락을 먹으면서 지금처럼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내일은 어떤 과일에 어떤 메뉴를 싸달라고 계속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미국의 아이들 먹거리나 그 식단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미국식 메뉴는 시간과 노동력, 그리고 대부분은 영양학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다만 나는 때로는 비효율적인 여러가지 재료가 어우러진 한국식 메뉴가 주는 오감에 대한 깊은 자극, 그리고 소화과정까지 생각하는 건강한 측면에 더 마음이 끌린다. 적어도 우리 아이는 한국식 도시락을 먹고 난 후부터는 배앓이가 다시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간편화 버전의 한국식 도시락을 싼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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