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만약에 언니가 죽고 나서 한 사람에게 딱 한마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요?"
후배가 물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이제 막 나온 음식에서 올라온 뜨끈한 김이 턱 근처를 간질였다. 그리고 이내 울컥 치미는 그 무엇을 참아내느라 목울대가 뻐근해졌다.
한동안 일이 없었던 후배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젊은 사장님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그분을 지원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 건데?"
"사장님은 어떤 분인데?"
"그래서, 일이 할 만해?"
묻고 싶은 것을 한참 물었고, 후배는 나름 재밌다는 답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후배는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문자를 남겼다. 그 사장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오래 알지는 않았지만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부대끼며 함께 일하던 사람이라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후배와 오늘 다시 만난 거다.
후배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고인이 된 사장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딱 묻고 싶은 게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분은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고 저는 그 일을 돕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그분의 계획을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었는지 그게 참 궁금해요. '사장님, 사장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딱 한 번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묻고 싶어요."
그러면서 나에게 물은 것이다.
'죽고 나서 한마디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남길 것인지' 말이다.
내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목울대에 힘을 주며 참아보려 했지만 이미 눈물샘이 시원스레 방류를 시작한 터라 어찌해볼 수 없었다. 활기차게 사람들이 오가는 복합쇼핑몰의 음식점 안에서 한 술 뜨지 않은 음식을 앞에 두고 울고 있는, 누가 봐도 묘하고 당혹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후배의 질문을 듣는 순간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까'라는 고민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 사람의 얼굴이 훅 튀어나왔다. 준비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그를 대면하고 눈물이 버선발로 마중 나온 거다. 이미 나는 아이를 꼭 안고 (더 이상은 안아줄 수 없으니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안고) "사랑해 아기"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랑해 아기, 엄마가 더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가 더 자주 안아주지 않아 미안해, 혹시라도 너의 맘을 아프게 한 일이 있었다면 미안해, 용서해줘. 너를 끝까지 돌봐주지 못하고 먼저 가게 돼서 미안해, 너에게 아픔을 남겨주어서 미안해.
"많은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사랑해"라고 한마디 할 것 같아."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남자 주인공은 우연히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잘못된 연애를 되돌리기 위해, 동생의 차 사고를 돌이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는 것을. 과거의 사건을 바꾸어 놓고 집으로 돌아온 그. 문 앞에서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한다. 어제까지 얼굴을 부비며 안아 들어 올리던 그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처음 보는 낯선 아이가 "아빠!"를 외치며 그에게 달려오는 것이다.
'그냥 이 아이가 내 아이려니 하고 키우면 안 되나?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를 품 안에 안아보니, 매일 밤 아이와 꿀 떨어지는 대화를 하다보니 '그거 안 되는 거구나' 싶다. '죽은 후 아이에게 사랑해, 라고 말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 뚝뚝 흘리는 그런 엄마가 되었기에. 이미 우리는 그런 사이가 돼버렸기에….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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