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job!' 아이의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에서 균형잡기
'Great job!' 아이의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에서 균형잡기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6.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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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자신감이 중요한 미국의 킨더가든 교실에서는 발표를 매우 자주 한다. 사진은 발표를 준비중인 아이들.
자신감이 중요한 미국의 킨더가든 교실에서는 발표를 매우 자주 한다. 사진은 발표를 준비 중인 아이들. ⓒ이은

미국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이뤄내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 여겨지며, 선생님들 또한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칭찬을 해주는 편이다. 예컨대 “우리 OO는 참 착하구나”와 같은 일반적인 느낌의 칭찬보다는 “OO가 오늘 다른 친구들이 들어올 때마다 친절하게 먼저 인사를 해주다니 정말 착하구나”와 같이 어떤 행동과 태도가 칭찬받을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며 칭찬해주는 편이다.

미국에서 아시안계 부모는 자녀에게 칭찬보다는 비평을 많이 가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아시안부모는 좀 더 객관적인 비교를 많이 하는 편이며, 아이들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면 가감없이 지적하는 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오죽하면 미국의 아시아계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자신들의 부모가 던진 가감없는 솔직한 평가를 주요 웃음포인트로 들고 나오겠는가. 예를 들자면, 농구경기에 나간 아들에게 중국인 아버지가 열심히 하라고 응원은 하면서 너는 슛을 너무 못하니까 잘하는 다른 아이에게 패스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 등 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가끔 마주하는 미국 부모들의 지나친(?) 칭찬에 당황하게 될 때가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여러가지 체험이 가능한 어린이 박물관(Children’s Museum)을 방문한 어느 날, 가면만들기 액티비티를 하던 4~5세 정도의 아이 하나가 종이 위에 검정 크레용을 몇번 끄적이더니 일분도 되지 않아서 엄마에게 가지고 뛰어갔다. 가면을 받아든 엄마는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잘했어! 정말 훌륭해! 너무 멋져! 에너지가 느껴지네(Great job! Excellent! This is awesome! I like your energy)”하면서 아이를 안아주었다.

칭찬은 확실히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어린이 박물관에서 본 그 아이도 엄마의 칭찬에 힘입어 나중에는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또 꾸미기에 취미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 역시 여느 엄마들처럼 될 수 있는대로 아이를 격려해주고 많이 칭찬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나친 칭찬이 독이 될까봐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한국에서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른 아이의 태도 때문이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그저 한번 씨익 웃거나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던 아이가 미국생활이 길어지면서 좀 변했다. 한번은 혼자서 어려운 블럭을 빨리 완성한 아이에게 내 한국인 지인이 “너 참 똑똑하구나(You are so smart!)” 칭찬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I know(나도 알아요)”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벌써 어른들과 농담도 할 줄 아나 하면서 아이의 표정을 쳐다보았는데 아이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지인도 나도 당황해서 깔깔 웃었다. 지인과 헤어진 후, 나는 아이에게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물어봤다. 아이는 여전히 진지하게 자신은 이미 똑똑하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다양한 블럭을 가지고 놀고 또 만들어왔는지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 동안의 자연스러운 노력이 아이가 새 블럭을 쉽게 만드는 능력에 기여했음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다음으로 내가 말하려던 바는 '겸손함'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한참 애를 먹었다. 아이는 어느 새 미국식의 자신감과 당당함이라는 개념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내가 뛰어나고 잘한다는 사실을 왜 말하면 안되는지 왜 자랑하면 안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않는다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지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자신의 장점을 강조한다거나 자신의 장점 때문에 스스로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내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내 큰 목소리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어려웠다. 아이가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장황하게 떠드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고개를 몇번씩 갸웃거리기도 또 끄덕여보기도 했다.

“아, 알았다. 사실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고 오비디어스에게는 그런 칭찬을 하나도 안해주지만, 오비디어스의 그림에도 오비디어스만의 생각과 느낌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모두의 그림이 소중한 거니까 내가 내 그림이 제일 좋다고 자랑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는 이렇게 얘기했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언어가 정리되지 않아서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는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분명히 한국 사람이기도 하다. 국적이나 자라나는 환경을 떠나서 엄마 입장에서는 사회속에서 배려와 어울림을 알면서 자라나주길 바라는 소중한 한 사람이다.

앞으로도 듣게 될 'great job'이라는 수많은 칭찬에 안주하지 않기를, 다양함 속에서 그 가치를 익히길, 겸손함 속에서 깊이있는 삶을 배우길, 엄마는 오늘도 기원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 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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