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배운 지 1년이 거의 다 돼가는 여덟 살 둘째 윤이. 연습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곧잘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날도 그랬다. 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계속 음이 틀렸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하니까 짜증을 내지도 않는다. 연습 양을 늘려 곡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됐다. 음이 틀리면 “다시”라고 말하며 한 음, 한 음 다시 건반을 누르는 거다. 1분도 채 안 되는 곡을 연주하면서 "다시"란 말을 열 번도 넘게 하는 듯했다. 새삼 ‘다시’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자신을 다시 곧추세우게 되는 말 ‘다시’.
아이는 처음 걸을 때도 그랬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었다(한 발 한 발 내게로 걸어왔을 때의 그 기쁨이란). 밥을 먹을 때도 그랬다. 숟가락이 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으면서도 흘리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맛있게 그릇을 비워냈다(치우는 건 엄마 몫). 자전거를 탈 때도, 인라인을 탈 때도 무엇을 하든 새로 익혀야 하는 것들을 해내기 위해 아이는 속으로 수없이 많이 “다시”를 외쳤을 거다.
이뿐이겠는가. 친구를 사귀는 것도, 글자를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수를 셈하는 것도 모두 ‘다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아이들은 아무것도 않은 채 그냥 자라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어려운 걸 매일매일 해내고 있는 거였다. 누군가 크게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나는 어떤가. 이제 여덟 살 된 아이도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해 건반을 누르고 “다시” 또 “다시”를 외치며 마음을 잡는데, 나는? 질문에 당당해질 수 없었다. 바리스타 과정을 들어볼까 싶다가도 지금 그걸 할 때인가 싶고, 올해 버킷리스트였던 수영 배우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그래서다. 아이가 “다시”라고 하는 말이 유독 내 가슴에 남았던 것은.
늘 하던 일에서도 그랬다. 갑자기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고, 해서 뭐하는지 비관적인 생각을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뜻대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한번 중심이 흔들리면 대책없이 눈빛이 흔들린다. 귀는 '팔랑귀'가 되며, 입은 돌처럼 굳어 떼어지지가 않는다. 나 어떡해, 싶을 때가 더러 종종, 아니 자주 오더라. 나이가 들수록 더더더더.
이제는 그럴 때 피아노 앞의 아이가 생각날 것 같다. 열 번 틀려도 열 번 “다시”를 외치던 아이. 그리고 아이에게 해줬던 말도 내게 해줘야겠다. “틀려도 괜찮아”라고. “실수 좀 해도 괜찮아”라고. 좀 부족한 엄마여도, 일의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아도, 사람과의 관계로 힘들어도 “괜찮다”라고 말해야겠다. 내가 나를 제일 먼저 알아줘야겠다.
마음의 위로가 되는 주문같은 말 한 마디 "다시". 오늘도 다시, 내일도 다시다. 매일이 연습같은 오늘, 오늘 다시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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