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이 감기라면서 왜 항생제 처방해주세요?
선생님, 아이 감기라면서 왜 항생제 처방해주세요?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8.12.14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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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의 MOM대로 육아]감기에 항생제 처방 안 해주는 병원 찾기 참 어렵다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40.4도. 첫째 아이의 몸이 불덩이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 몰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아이는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이집에 안 간다며 신났다. 뛸 힘이 남아있는 거 보니 덜 아픈가보다. 열만 나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니 콧물이 나고 기침, 가래가 심해진다. 집이 좋다며 방방 뛰던 아이는 힘없이 누워만 있다. 밥도 안 먹고 좋아하는 고래밥도 안 먹는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아이의 감기는 쉬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또 온 가족이 다 옮겠구만’ 싶어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오른쪽에 중이염이 있긴 한데요, 아주 약해서 열 날 정도는 아니에요. 단순 열감기로 약 처방해 드릴게요. 약 먹이고 상태 한 번 보세요.”

치료할 정도의 중이염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처방받은 약을 보니 항생제도 들어있다. 하루 두 번 먹이고 냉장 보관하란다.

‘왜 또 항생제야!’

갑자기 신경질이 난다. 약봉지를 받아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동안 받아온 항생제 약병들이 일렬로 줄을 섰다. 얼마 전 둘째 아이도 열감기로 고생했었다. 별다른 증상 없이 열이 지속돼 몇몇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전부 “다른 증상 없는 열감기”라면서 항생제 약을 처방해줬다. 그 약을 먹이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두니 쌓이게 된 것이다. 둘째 아이는 며칠을 앓고 나서야 열이 떨어졌다. 그때 무턱대고 항생제부터 처방해준 병원들을 피해 첫째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병원을 찾아 갔던 건데 또 항생제라니. 이사 온 지 10개월이 됐지만 마음에 맞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해주지 않는 병원 말이다.

아이 대신 내가 아프면 좋겠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 대신 내가 아프면 좋겠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이사 오기 전에 다니던 병원은 항생제 처방을 최소화하는 곳이었다. 남편도 아기였을 때 다녔던 곳이라고 한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많은 진료 경험을 토대로 똑 부러지게 진료해줬다. 약을 먹는 것보다도 “푹 쉬고 물 많이 먹고 콧물 잘 흘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약을 처방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고 항생제는 단 한 번도 처방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지금 동네 병원들은 죄다 항생제 없는 약은 약도 아닌 것 마냥 처방해주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항생제를 먹이면 더 빨리 낫나?’ 하는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창에 ‘감기 항생제’, ‘아이 항생제’ 등의 키워드를 쳤다. 많은 부모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항생제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다. 조금만 찾아도 ‘단순 감기에는 항생제를 먹일 필요가 없다’는 정보가 줄줄이 나온다. 정부도 ‘항생제는 감기약이 아니다’며 항생제 오남용 줄이기를 강조하고 있었다. 감기는 바이러스 감염이고 항생제는 세균 감염에 쓰는 약이다. 오히려 항생제를 오남용하게 되면 내성이 생긴다. 정말 아이가 아플 때, 꼭 세균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항생제가 듣지 않을 수 있어 위험하다. 쉽게 말해, 항생제 내성이 심각하면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서 벌어지던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맞아 맞아. 그래서 항생제를 최대한 안 먹이는 게 중요하지.’ 끄덕 끄덕 하면서도 망설여진다. 왜? 병원에서 처방해줬으니까 믿고 따라야만 아이가 덜 아플 것 같은 생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생제는 아니다 싶어 약을 먹이지 않기로 했다. 보온이나 습도를 조절하는 데 더 신경 썼다. 목이랑 발을 따뜻하게 해주고, 따뜻한 물과 배즙도 많이 먹였다. 먼지가 많을까봐 방 청소도 깨끗하게 하며 아이의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냉장고 한 쪽에 일렬로 놓여 있는 '지긋지긋한' 항생제. 모두 감기에 처방해준 것들이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냉장고 한 쪽에 일렬로 놓여 있는 '지긋지긋한' 항생제.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곧 나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아이의 열은 떨어질 기미가 없다. 해열제를 먹여도 39도, 40도다. 둘째 아이의 열감기 때보다도 더 오래 가는 것 같아 다시 마음이 조급해진다. ‘혹시 독감일까?’ ‘중이염이 더 심해져서 열이 나나?’ ‘다른 곳이 아픈 건 아닐까?’하는 걱정은 ‘처방받은 약을 먹였어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 야간 진료를 한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감기 시즌이라더니 병원 대기실엔 마스크를 쓴 아이들로 가득하다.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고 독감 검사도 했다. 결과는 이상 없단다. 중이염도 심하지 않았다. 이젠 정말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면 되겠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근데, “기침, 가래가 심하니 물 많이 먹고 약 잘 챙겨 먹이라”는 의사는 또 항생제를 처방해주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률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터키,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라더니, OECD 회원국의 평균 사용량보다도 1.6배나 높다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왜 감기에 항생제일까? 궁금한 마음에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아이 감기라면서 항생제는 왜 처방해주시는 건가요?”

“지금은 괜찮다가도 상태가 더 악화돼서 폐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약 먹으면서 기침 소리가 심해지는지 잘 보세요.”

“아...”

그랬다. 항생제는 혹시 모를, 혹시 악화될지 모를 아이의 상태를 위한 비상약이었다. 지금은 폐렴이 아니더라도 폐렴으로 갈 수 있으니 미리 항생제를 처방해서 먹이라는 것이다. 세균 감염을 미리 예방하라니…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며칠을 더 앓고 회복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개구쟁이가 됐다. 꼬박 열흘이 걸렸다.  항생제를 포함해 처방받은 모든 약을 먹지 않았다. 감기가 나을려면 보통 1~2주는 걸린다더니 딱 그랬다. 의사의 걱정처럼 항생제를 ‘미리’ 먹이지 않았지만 폐렴으로 악화되지 않았다. 아이가 아픈 동안 아이 만큼 나도 힘들었지만 약을 먹이지 않고도 다 나을 수 있다는 값비싼 경험을 했다. 다음에 아이가 아플 때는 덜 조바심 내며 아이의 회복을 기다려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항생제가 만병통치약인 것 마냥 처방해주는 몇몇 병원(아닌 곳도 분명 있다) 대신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는 엄마인 내 생각을 실천할 용기. 물론 심각한 세균 감염의 경우는 전문의의 처방을 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마음에 꼭 맞는 병원,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는 병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빨리 만날 수 있길 기도해본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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