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너처럼 '신학기 증후군' 앓을 때 있단다
아빠도 너처럼 '신학기 증후군' 앓을 때 있단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03.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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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아빠도 때로는 용기가 필요해

내 삶을 돌아보건대, 필살기와 같은 '탁월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늘 실수투성이에 마음만 앞서 제대로 이루어 낸 일들이 없다. 만약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탁월함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나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내 삶을 누구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적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오늘 나는 그동안 쌓아온 9년간의 탁월함을 포맷하고. 텅 빈 바탕화면을 마주했다. 두 딸아이의 아빠로서 더 강해져야 하는데… 웬걸?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의 내가 나를 찾아왔다.  

그래 우리 딸 서율아, 아빠도 사랑해. ⓒ문선종
그래 우리 딸 서율아, 아빠도 사랑해. ⓒ문선종

◇ 내 앞에 불쑥 나타난 어린 시절의 '나'

올해 3월 서울 본부로 발령 받았다. 포항 구룡포의 작은 어촌마을 현장에서 9년 동안 일하던 사회복지사가 서울 본부의 홍보실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너무나 큰 세상으로 나왔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삶을 꽃 피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왔다면, 이제 그런 꽃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쌓아온 것들은 내려놓고, 새로운 일터에서 탁월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내 머릿속은 하얀 백지상태다. 우리 가족은 떨어지지 말고 살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 나는 지금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꽃이 피는 4월이 오면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 할 계획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 해 여름 무렵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낯선 새로운 환경, 낯선 친구들 속에 나는 위축됐다. 운이 없게도 학교에 학생들이 너무 많아 의자와 책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소외와 무기력감을 느끼며 며칠간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힘 있는 아이들이 괴롭히기 좋은 대상이었고, 아침마다 엄마가 준 용돈 500원은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선생님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어 수업 시간에 오줌을 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오줌을 쌌다며 엄마에게 둘러댔다. 낯선 환경에서 마음 고생하던 그 아이가 오늘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발령 후 첫 출근 아침. 나는 내 앞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고야 말았다. "집에 가고 싶어…" 그 와중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나의 엄마를 똑 닮은 첫째 딸 서율이다. 늘 발 하나를 내 배 위에 올려야 잠이 드는 녀석에 대한 귀찮음이 그리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우리 딸, 아빠도 용기를 낼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굵직한 사건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에서 이사와 같이 순백의 낯선 환경에 홀로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내던져진(被投, 피투)'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어른은 한 번도 어린아이였던 적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그렇지 않다. 내던져진 삶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상처 받았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도 함께 있다. 36살의 아빠도 이런 마음인데, 우리 서율이와 지온이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은 3월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신학기의 적응장애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일이다. 보통 세 달 안에 적응한다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심각하면 우울과 자살충동까지 일어난다. 해외에는 유년시절 이사를 자주 다닌 아동은 성인이 되어 우울증을 앓을 확률,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2017년 11월, 포항에 일어난 진도 5.4 규모의 지진으로 서율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이 무너졌다. 서율이는 지난해 3월 유치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딱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새로운 환경으로 가야한다. 지금 서율이에게는 관심과 상담,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아빠로서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이유는 서율이를 여유롭고 온화한 모습으로 만나야하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아빠가 힘 낼게, 용기 내 볼게. ⓒ문선종
너를 위해 아빠가 힘 낼게, 용기 내 볼게. ⓒ문선종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을 들으면서

첫 출근, 갑작스럽게 나타난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해 삭막한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을 들려준다. 이곡은 1892년 드보르작이 뉴욕 내셔널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부호인 저넷 서버 부인의 초청으로 뉴욕에 오면서 탄생시킨 곡이다.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불안하게만 하거나 움츠려들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기투(企投) 존재'라 했다. 우리는 세상에 던져져 환경에 좌우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미래를 향해 나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4악장처럼 나는 앞으로 무엇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편안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손을 잡고 말했다. 

"다 잘 될 거야. 우리 힘내자!"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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