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 칼럼니스트 이기선
  • 승인 2019.03.19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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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어떻게 이해할까] 엄마 자리① "나 그냥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Q. 저는 두 아이를 둔 워킹맘입니다. 아이들은 친정엄마가 돌봐주고 계십니다. 주말에 엄마가 안 계실 때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먹이는 것도, 재우는 것도요. 게다가 엄마가 저희 집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가 불편해하시고 엄마도 아버지 걱정을 하셔서, 아예 아이들을 엄마댁으로 보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엄마보다 할머니랑 같이 있는게 너한테 더 좋을거야" 정말, 아이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베이비뉴스
"엄마보다 할머니랑 같이 있는게 너한테 더 좋을거야" 정말, 아이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베이비뉴스

A. 이 질문을 듣는 순간, 필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 워킹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아예 보내겠다는 생각은 아이들 육아가 귀찮다는 것과 거의 동일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육아를 친정엄마가 다 해주셨기 때문에 정작 엄마는 육아를 할 줄 모릅니다. 육아를 단지 아이를 보기만 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단순한 관념일 뿐입니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심오한 노동입니다. 육아는 우선 아이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를 관찰해서 아이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적절한 보살핌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영아는 말도 못합니다. 말을 하는 아이들은 명확히 요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반응하면 되지만 영아는 말을 못하기 때문에, 몸짓언어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려면 더욱 아이에게서 눈을 떼면 안됩니다. 끊임없이 눈길을 주어야 아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울 때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몸이 아픈지, 졸린지, 놀고 싶은지 등등의 다양한 욕구 중의 어느 한 가지를 찾아내서 그에 적절히 반응을 해야 아이가 더 이상 울지 않겠지요. 그러나 육아에 서툰 엄마가 주말에만 아이를 보면 엄마는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아이는 계속 울고… 엄마는 나름 노력하지만 아이가 계속 울기만 한다면, 엄마는 지칠 수 있습니다.

유능한 워킹맘인 엄마가 주중에는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고 있는데, 주말에는 이 작은 아기의 욕구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괴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유능한 내가 집에서는 이런 것도 못하나?’, ‘이런 작은 일도 못하면서 무슨 바깥일을 한다고?’라며 자책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이를 봐야하는 주말이 두려워질 수 있고, 그 시간을 피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육아를 작은 일로 생각했는데, 정작 친정엄마가 안계시면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피하고 싶다보니, 아예 할머니가 데려가서 키워주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선택을 전적으로 말리고 싶습니다. 이제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함께 저녁시간을 즐기는 삶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는, 특히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는 엄마랑 함께 하는 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엄마가 저녁에 왔는데, 엄마는 또 일을 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너무 반가워서 엄마 냄새 속에서 엄마랑 놀고 싶은데, 엄마는 바쁘다며 할머니랑 놀라고 합니다. 아이는 슬퍼집니다. 엄마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말에는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 날만 참고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아예 할머니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아이는 ‘싫어싫어’를 표현하지만, 엄마는 그럴듯한 이유를 말합니다.

"엄마는 네 이유식도 맛있게 못해. 할머니가 더 맛있게 잘 하시잖아. 너도 잘 먹잖아. 그리고 엄마는 너랑 있어도 바빠. 할 일이 많거든. 너랑 못 놀아줘. 그런데 할머니집에 가면 할아버지도 계시니까 할아버지랑 놀이터에도 갈 수 있어. 알았지? 더 좋지?"

할머니도 사회적으로 유능한 딸이 아이 때문에 발목 잡히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딸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시켜주려고 헌신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 정작 아이의 목소리가 없습니다. 말 못하는 아이의 눈빛과 표정을 들여다보세요.

'이유식 맛 없어도, 놀이터 안 가도, 엄마랑 있고 싶어. 나 보내지 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랑 한 공간에서 숨 쉬고, 먹고, 자면서 심적인 안정을 찾고 그 안정 속에서 내적인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반드시 엄마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엄마자리에 엄마가 있어주어야 아이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엄마가 뭘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칼럼니스트 이기선은 동덕여대에서 아동학(박사)을 공부하고, 메가원격평생교육원 아동학과 교수로 있다. 토브언어심리상담센터의 부모교육상담가, 함께하는아버지들의 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자녀와 싸우지 마라」 「봄의 요정 보미」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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