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사춘기 딸아이와 학원문제로 갈등이 계속 되다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서로에게 비수가 돼 결국 터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내가 너를 포기한다’고 내질렀고, 아이는 ‘마음대로 해라’로 응수했다. 서로 붉어진 눈으로 대치하다 결국 내가 돌아섰다. 머리를 식히러 카페에 가 차가운 커피를 벌컥이며 마음을 다스렸다. 차츰 이성이 되돌아오니 후회만이 남았다. 아이의 말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내가 싫다잖아”, “힘들어”, “재미없어”, “다른 걸 하고 싶어”…
아이의 재주가 아까워 이것 저것들을 밀었고, 곧잘 따라오는 딸아이는 나의 자랑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욕심이 났다. 분명 처음에는 아이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펼치기를 바랐는데, 어느 새 그건 내 욕심이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은 없었다. 모두가 내가 먼저 아이에게 제시한 일들이었다. 어리니까, 아직 잘 모르니까, 내가 엄마고 어른이니까 잘 알려줘야지, 좀 더 많은 걸 가르쳐 줘야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아이니까 모든 것이 새로울 테니 기다려줘야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살펴봐야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시간을 줘야지.. 이렇게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이렇게 아이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늘 엄마가 생각난다. 줄줄이 연년생 세 딸을 키우시느라 엄마는 늘 분주하셨고 그 중 막내인 난 무관심 속에서 자랐다 생각했다. 단 한번도 무언가를 ‘이루라’한 적이 없으셨던 엄마였기에-물론 어린 시절엔 섭섭함도 느꼈지만-난 늘 내 마음껏 선택할 수 있었다. 단 한번도 내가 배우고 싶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신 적이 없었고, 결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다. 선택은 늘 나의 몫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나의 것이었다.
예전 엄마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엄마는 나 어렸을 때 왜 학원 안보냈어?”
“네가 싫다고 해서.”
“그럼 공부하라고는 왜 안했어?”
“잔소리 한다고 네가 공부하겠니? 할 때 되면 하겠지 했어.”
믿음. 엄마의 믿음은 언제나 나를 지탱해 주었고 그 안에서 난 마음껏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내가 선택했으니까.
결국 난 딸아이를 믿기 보다는 내 아쉬움에, 내가 못 이뤘던 것을 아이에게 미뤘나 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이에게 미안했다. 먼저 아이의 생각을 묻지 않은 것이, 아이의 선택을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이, 내 바람을 아이에게 미룬 것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얼른 가서 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엄마가 기다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너의 선택을 믿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엄마가 변하겠다고, 네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엄마가 절대 해서는 안될 ‘포기’라는 말을 해서 잘못했다고 말해야겠다.
어쩌면 아이의 선택은 내 기준에서는 믿음직스럽지도, 만족스럽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리고 활짝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 아닐까. 혹 아이가 그 선택을 후회하고 실망하더라도 그건 아이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테니 그걸로 괜찮을 거다.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가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내 마음을 전해야지. 서로에게 상처가 남지 않도록, 서로를 좀 더 믿을 수 있게.
*칼럼니스트 권정필은 현재 사춘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아이들의 방황과 성장을 보며, 함께 방황하며 다시 한 번 성장하고픈 평범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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