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소중하다면, 가족도 '타인'임을 인정합시다
가족이 소중하다면, 가족도 '타인'임을 인정합시다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9.05.09 1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가족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다

생활고 등을 비관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를 ‘동반자살’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타살’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를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올해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만 7건이라고 한다.

지난 6일 시흥에서 네 살, 두 살 두 자녀와 함께 30대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생활고 탓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 가족이 숨진 날은 어린이날이었다고 했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비극이라 가슴이 더 먹먹했다.

지난달에도 세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가 자녀 한 명을 숨지게 한 40대 남성이 징역 5년, 아내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 따르면 부부는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아홉 살, 일곱 살 쌍둥이 등 세 자녀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또 3월에는 경기 화성과 부산, 충남 공주에서 30대 부모가 10대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1월 서울 강서구에서는 10대 자녀 두 명과 40대 부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를 비관한 부모가 자녀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죽음은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거나 빈곤에서 빠져나올 대책이 없던 이들에게 사회안전망이 무용지물이었기에 일어난 죽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같은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한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타살’의 범주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말하기엔 답답한 그 무엇이 있다.

‘부모가 자녀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일까?’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인가?’

나는 이 대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16년 전 개봉한 영화 '황산벌'(2003)이 떠올랐다.

'자녀 살해 후 자살' 보도를 접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떠오른 영화 '황산벌'. ⓒ씨네월드
'자녀 살해 후 자살' 보도를 접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떠오른 영화 '황산벌'. ⓒ씨네월드

영화에서 전투를 앞둔 계백장군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거여."

치욕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호랑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여. 가족 내팽개치고 전쟁터만 돌아당긴 사람이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죽을 테면 너나 죽어라.”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아! 반전이다' 하고 키득거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블랙코메디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가장이 다른 가족의 생명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가부장주의에 뿌리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나 사회에도 이런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에 '자녀 살해 후 자살'에 한바탕 ‘동정’하고 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죽음만이 그럴까. 조금 가까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보면 자녀나 가족을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뿌리 깊은 가부장주의가 배후다.

배우자의 행동을 내 취향에 맞도록 강권하는 모습, 자녀가 나의 꿈을 대신 이루기를 바라는 모습, 나의 기준에 맞추어서 가족을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들, 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실망하는 태도들. 사회에서 맺은 인간관계라면 쉽게 하지 못하는 행동들이다. 혹여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한두 번씩 생각해보고 ‘기술’을 부려보거나, 동기부여를 통하곤 하지.

◇ 가족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 관계의 전제는 예의와 배려다

가족도 수많은 사회관계들처럼 노력하고 배려하고 조심해야 한다. 태어나 수십 년 동안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다 만난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녀와 관계는 더욱 그렇다. 내가 낳았다고, 또는 나의 보호 아래 양육하고 있다고 자녀를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순간 가정의 불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보통 둘째아이를 기르며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첫 아이 겪어보니 이제는 알겠다. 그때는 잘 몰랐다'고. 그런데, 그때 잘 몰랐다는 이유로 세상의 모든 첫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막연하게 ‘가족끼리 잘 해주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가족도 타인임을 인정하는 것, 사회생활을 하면서 쏟고 고민하는 시간과 노력의 반의 반 만이라도 가족 간의 관계를 만드는 데 쏟아야 한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다 이해해줄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존의 가족관계와 가부장질서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 세상이 변화 발전하는 만큼 가정도 진보해야 하고, 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도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결국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내 안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유무형의 폭력들은 없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