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아버지'의 자리는 어디인가
'녹색 아버지'의 자리는 어디인가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9.06.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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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육아감옥]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을 보인 아빠들

연이의 초등학교 첫 참관 수업에 가는 길.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쩐지 들떴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매번 처음의 연속이고, 언제든 처음은 설렌다. 날씨는 화창했다. 연이는 햄스터처럼 앙증맞을까. 왈가닥일까. 대답은 잘할까. 남편과 나란히 걸어가며 연이를 떠올렸다. 남편의 옆얼굴을 올려보다 문득 참관 수업에 아빠들은 얼마나 올는지 궁금했다.

학기 초에 열린 ‘학부모 총회’ 때도 '학부모'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대부분 엄마들이 참석했다. 총회가 끝나고 반별로 모임을 하기 위해 엄마들은 우루루 강당에서 나와 교실로 이동했다. 각자 아이들의 작은 책걸상에 걸터앉았다. 연이의 자리에 앉아 교실을 휘 둘러보니 한 자리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의 아빠가 앉아 있었다.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를 외치는 사람처럼 홀로 모임에 참석한 아빠는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척 멋쩍어 보였다. 왠지 여자들의 모임에 남자가 낀 모양새였다. 이번에도 그럴까. 교실로 들어서기 전에, 혹시 다른 아빠가 아무도 없어도 쑥스러워 말라고 남편에게 당부했다. 

아직까지 학교 행사는 엄마의 일로만 치부된다. 아침마다 횡단보도 곳곳에서 교통지도를 하는 ‘녹색 어머니’, 학교 주변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어머니 폴리스’ 등의 명칭에서 드러나듯 학교 관련 일들에 ‘아버지’는 빠져 있다. 어쩌면 그런 관성 때문에 공교육에서조차 ‘아버지’의 자리가 쉽사리 생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참관 수업에는 연이 아빠를 포함해 세 명의 아빠가 참석했다. 어떤 반은 여덟 명의 아빠가 참석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빠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오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이는 종종 부모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엄마를 통해 아이에 대해 듣는 것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차이가 크다. 부부가 나눌 얘기도 많아진다. 가족 내에서 아빠의 존재감도 커진다.

수업을 듣는 연이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남편이 학교에 오길 잘했다고 했다. 나도 연이의 예쁜 모습을 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그럴 때면 ‘결정적인 순간’을 혼자 본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거나, 좁은 시야로 아이에 대한 걱정을 앞세우게 되는 까닭이다. 참관 수업에 함께 참여한 부부들도 분명 나름대로 만족과 행복을 얻었을 것이다.

◇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으로 얻는다 

며칠 전, 비 오는 월요일이었다. 연이를 학교까지 바래다주려고 신호등 앞에 섰다. 녹색 어머니가 아닌 '녹색 아버지’가 노란 비옷을 입고 신호등 신호에 맞춰 깃발을 여닫고 있었다. 신기해서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아마도 오늘의 ‘녹색 아버지’는 나처럼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몇 번 눈을 마주치다 이내 우산을 고쳐 썼다. 비가 와서일까, 집에서 엄마가 돌보아야 하는 어린 동생이 있을까, 아빠가 시간을 일부러 낸 걸까. 물음이 비처럼 후둑후둑 떨어졌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연이와 윤이를 데리고 성큼성큼 학교 쪽으로 향하며 아이를 돌보는 아빠를 어디서든 자주 보게 되기를, 아버지의 학교 행사 참여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되기를 바랐다. 

연이는 학교로 들어가고, 윤이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특별한 아버지’에게 꾸벅 묵례를 했다. 아이를 키우면 보는 눈도 달라지는지, 어떤 영화에서 우산을 들며 해사하게 웃는 톱스타보다 빗속에서 고생하던 ‘녹색 아버지’가 훨씬 멋있어 보였다.

녹색 아버지가 있던 자리엔 다시 녹색 어머니가 섰지만, 언젠가 우리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이 지금과 다른 말을 전할 수 있길. ⓒ신은률
녹색 아버지가 있던 자리엔 다시 녹색 어머니가 섰지만, 언젠가 우리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이 지금과 다른 말을 전할 수 있길. ⓒ신은률

◇ 최대한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넓혀야 한다 

셈해보면 엄마들이 사회로 나가 일 하는 만큼 아빠들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늘어나는 게 맞다. 신기루 같은 일이지만, 덴마크 아빠들은 오후 3~4시면 퇴근한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것이다.

덴마크 아빠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자전거를 타고 저녁을 먹는다.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걱정거리는 없는지, 식탁에 앉아서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밥을 다 먹고서는 주섬주섬 일어나 식탁을 치운다. 덴마크 아빠는 그렇게 아이들의 일상에 자신의 그림자를 더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기 마련이다. 덴마크 아이들은 훗날 자신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 곁을 스스럼없이 지키게 될 것이다. 대체로 우리의 생활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자주 비어있다. 가끔 연이의 그림에서 엄마와 연이, 윤이는 한데 모여 있는데 아빠만 외따로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우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아빠가 될 윤이를 위해서라도 무언가 조금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지금은, 가능한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때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공식적인 일에, 점점 더 자주 아버지를 호명해 보는 것이다. 이국의 꿈같은 일상을 만드는 건 그저 누군가의 작은 행동일 수 있다. 

연이 아빠도 우리의 차례가 되었을 때 ‘녹색 아버지’가 되어보겠다고 한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괜찮은 '거울'이 되는 일들을 늘려간다. 물감이 번져가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넓혀가는 것이다.

부모의 시간으로 쓰고 그리는 일상은 분명 아이들의 삶을 바꿀 것이다. 참관 수업에서 돌아와 돌잡이 아기를 키우는 동생에게 조언했다. 때가 되면 아무리 일이 바쁘더라도, 반차를 쓰든 연차를 쓰든 학교 모임에는 꼭 부부가 참석하라고. 가서 뿌듯해하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함께 보라고 말이다.

부모가 역할의 '무게중심'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그 모습을 아이들이 따라 하다 보면 우리가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이국의 모습과 조금씩 가까워지지 않을까.

봄비가 지나가자 동네를 가득 채우던 달큰한 아카시아 향이 사라졌다. ‘녹색 아버지’의 자리에는 ‘녹색 어머니’가 다시 자리를 지키고 섰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는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위로처럼 들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다시 아카시아 향이 퍼질 즈음이면, 몇 번이고 그럴 때면, 우리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이 다른 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를 키우는 일상이 생동하는 자연처럼 즐겁게 바뀌어 가기를 꿈꾼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글을 쓰며 '가정의 주인(主婦)'으로 살고 있다. 여덟 살 연이, 여섯 살 윤이를 키운다. 일 년의 절반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게 육아를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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