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 대합실과 승강장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완공됐습니다. 오후 2시 열린 환영식에는 휠체어나 유아차(유모차)를 이용하는 교통약자들이 함께했습니다. 현장에서 연대발언을 한 진유경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의 발언문을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서울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진유경입니다. 저는 아이를 둘 키우면서 5년째 유아차를 끌고 있습니다.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해서 배낭여행과 국토종단도 했었고 차 타거나 무엇인가를 타기보다는 걸어다니기를 좋아했던 제가, ‘교통수단 내의 이동수단으로서 엘리베이터’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임신이 계기였습니다.
제가 첫 아이를 가졌던 2014년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내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매일 계단을 매일 오르면서 어떻게 이런 큰 역에 노약자·임산부·장애인을 위한 환승 엘레베이터가 없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장애인·임산부·유아동반한 사람들은 이동하기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5년에 백일 된 첫 아이를 유아차에 뉘여 처음으로 외출했던 날 제가 쓴 일기를 잠시 공유해봅니다.
“유모차를 끌고 걸어보니, 아기 낳기 전에는 안 보였던 세상이 보인다.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자전거,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엘리베이터가 있는 줄 알고 지하철을 타려 했는데 막힌 길.
백화점이며 마트에 온 엄마들을 보며 왜 저 여자들은 평일에 백화점을 점령하고 있을까, 된장녀들이로구나, 생각했다. 안전하고, 바닥도 고르고, 수유실도 잘 마련되어 있고, 눈·바람·비의 영향이 없고, 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곳이라 그랬구나. 애를 낳아보고 키워본 사람들이 행정을 한다면 뭔가 달랐을 텐데. 아쉽다.”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 저는 ‘이동할 권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이동’과 ‘권리’가 연결될 수 있는 단어라고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저는 이동에 전혀 제한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대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에 제 친구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참여했는데, 그땐 그 친구를 보면서 강 건너 불구경. '저런 것을 가지고도 시위를 하나?' 하며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휠체어가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유아차에게도 좋은 길
지금은 압니다. 모두에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것도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 유아차나 바퀴 달린 보조기구에 의지하며 걷는 노인, 그리고 아이를 태운 유아차. 모두 바퀴 달린 무언가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곧 노인과 아이들의 이동권 문제이기도 합니다.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아무 문제 없이 버스를 타고 턱이나 계단에 대한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면, 그건 아이를 태운 유아차도 아무 걱정 없이 어느 곳이라도 다닐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동권 보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요구해주신 결과 서울시장님께서 ‘이동권 선언’을 통해 2022년까지 전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하셨고, 서울교통공사는 2019년 1월부터 1역 1동선 미확보 역사 승강편의시설 설치 기본설계 용역을 진행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동권의 보장은 특정 계층에 대한 배려로 볼 문제가 아닌, 모든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바라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 권리가 잘 지켜지는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시하고 계속 요구할 것입니다.
또한 저는 양육자로서 아이들을 잘 키우겠습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려는 마음 없인 아이를, 노인을,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제도가 생기지도 못할 것이며 정착하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광화문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환영합니다. 이 작지만 큰 변화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광화문엘리베이터 설치를 원하는 모임'에서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차별철폐와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얻기 위해 꾸준히 요구해온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성과이기에 감사드립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 결실을 함께 누리는 데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이에 앞으로도, 바퀴가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벽을 낮추는 데 한 시민으로서 함께 뜻을 보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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