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12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 늘 그렇듯 피켓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빼곡하다. '투표시간 연장', '나와라 정봉주' 등 다양한 피켓을 든 시위자들은 뜨거운 가을 햇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시위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시위자가 보인다. 산소호흡기를 꼽은 채 유모차에 앉아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10살 임성준(경기도 용인시·2003년 1월생) 군이다. 임 군은 엄마와 함께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 5월 21일부터 진행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책 촉구 1인시위'의 100번째 시위자로 나섰다.
'사람 죽이는 생활용품 가습기살균제'라는 피켓 옆에 자리한 성준 군은 뜨거운 햇볕이 싫은지 연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영락없는 10살 아이의 모습이지만, 성준 군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10여년 간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진행형인 가습기살균제 피해
엄마 권미애 씨는 아직도 어릴 적 성준 군의 모습이 생생하다. 첫돌이 지난 성준 군은 단순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폐섬유화로, 다시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증세가 악화됐다. 의사는 호흡부전증으로 뇌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쌓여 깨어나더라도 엄마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했다. '못 알아봐도 괜찮으니 제발 깨어나 준다면.' 권 씨의 바람처럼 성준 군은 기적처럼 깨어났고 정신도 온전했다.
하지만 성준 군은 지금까지도 산소호흡기를 꼽고 가파른 호흡으로 오래 걷지 못해 집밖에서는 유모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폐로 인해 심장까지 영향을 미쳐 심장약을 먹기도 한다. 기도협착으로 갈비뼈 연골을 떼어내 이식을 했으며, 골다공증까지 생겨 조금만 넘어져도 뼈가 잘 부러지기 때문에 학교생활은 꿈도 못 꾼다. 10살 아이가 감당하긴 버거운 현실들. 권 씨는 "처음엔 병원 오진인 줄 알아, 병원을 원망했었다. 하지만 작년 가습기살균제가 우리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권 씨는 "내가 내 자식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아직도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누구나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가 이런 상황을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당시 성준 군이 태어난 직후부터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는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과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등이다. 권 씨는 "제품회사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 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손세정제나 섬유유연제 등 다른 제품 괜찮을까', '아무것도 사용하지 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염려했다.
권 씨와 성준 군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피해자 대책 마련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세상에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에서다. "나라에서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주겠지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더라. 내 자식을 지키려면 내가 발 벗고 나서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권 씨는 지난 8일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성준 군의 고통에 관심 갖지 않았고 뚜렷할만한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았다. 권 씨는 "가습기살균제의 잘못을 인정한다,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어떤 방안을 내려준다, 이런 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나몰라라하고 나 혼자 아이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두렵고 무섭다"고 토로했다.
장애수당 등 지원 사라져···"혼자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원할 뿐"
성준 군의 상태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올해부터 성준 군에 대한 정부 지원도 뚝 끊겼다. 호흡기장애 1급으로 받아오던 장애수당은 물론,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감면혜택까지 사라졌다. 소득수준 때문이란다. 3개월에 한번 정기적 검사를 받고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르는데 이런 현실은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권 씨와 성준 군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
성준 군은 자신이 왜, 얼마나 아픈지, 1인 시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그저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설 뿐이다. 권 씨는 "성준이가 어리기 때문에 나쁜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성준 군은 그 현장에서 늘 자기 이야기를 한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매번 "엄마 또 울 거지? 울지마"라고 말하는 성준 군을 보면 엄마 권 씨는 더욱 강해진다.
학교가길 꿈꾸는 성준 군에게, 권 씨는 매일 "우유 많이 먹고 밥 잘 먹으면 갈 수 있어. 그러니까 많이 먹어야 된다"고 말한다. "성준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나 지원을 원할 뿐"이라는 그는 그러기 위해선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월 31일에는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함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거나 판매한 기업에 대해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권 씨는 성준 군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성준 군과 함께 전면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대책모임이 수집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 7차 집계현황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는 추가피해사례 54건 등을 포함해 총 232건이다. 이중 사망사례는 78건이며 폐·심장을 이식하거나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는 모두 154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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