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커가면서 부쩍 ‘오늘은 뭘 하고 놀아줘야 할까?’ 싶은 고민이 더욱 많아지는 요즘이다. 이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놀거리도, 장소도 많아지겠구나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미세먼지 등등 험한 세상에서 아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환경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설상가상 매일 가는 단지 내 놀이터도 이제 시들시들해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궁금한 것을 찾아 커 가는 아이에게는 (내가 보기에는) 제법 큰 아파트 울타리마저 어느새 작아지고 있나 보다.
이러한 와중에 정말 씁쓸한 기사를 보았다. 어느 지역의 아파트 입주민 대표(회장)가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던 외부 어린이들을 경찰에 신고해 이슈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부모로 추정되는 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 내용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신고를 한 어른은 아이들이 단지 내 놀이터에 와서 기물을 파손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고, (기물 파손 정황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고 한다) 신고를 당한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무작정 잡혀 간 상황이라 많이 놀라고 당황한 것 같았다.
해당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귀가 시간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던 중에 경찰로부터 기물파손죄 관련 연락을 받고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진술한 내용을 보면 놀이터에서 이동하던 중에도 어른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다른 단지 놀이터에 오면 도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만한 증거가 딱히 있는 상황은 아니라 아이가 놀이터에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했던 것인지, 정말로 기물 파손에 해당할 만한 일을 저지른 건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도 아이를 둔 부모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했던 어른들의 행동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었다면 그러지 못하도록 타이르거나, 혹은 부모와 상의해도 되지 않았을까? 만약 기물 파손 등의 문제 행위는 없었고, 정말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왔기 때문에 아이들을 잡아 둔 것이라면, 역으로 해당 어른들이 미성년자 감금죄 등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관련 법과 죄목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나로서는 이런 단어를 언급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서글프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이웃사촌이라고 해서 집과 집 사이의 경계보다는 공동체, 정을 더 중시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이 각박해진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한참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슨 잣대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해당 사건은 아이를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어른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도둑’ 그리고 경찰의 출동과 같은 일이 정말 이런 상황에 나올 말과 행동인지 해당 어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제 아이가 놀이터에만 간다 해도 걱정이 늘어날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마저 이미 일부 어른들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울타리가 생긴 것 은 아닐까? 혹시 멀지 않은 미래에 단지 내 놀이터마저 입주민 확인 기계 같은 것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다만 같은 부모로서 이번 사건이 아이들 마음에 큰 상처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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