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고 보습학원 보내지 마세요
불안하다고 보습학원 보내지 마세요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03.0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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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학습'보다 '꿈'을 키워야 하는 아이들

“엄마, 우리 선생님이 뭐라고 했게?”

새로운 반 배정받고 둘째 날, 둘째 따님 또 뜬금포 질문이다. 

“몰라!”

“엄마가 엄청 좋아할만한 얘긴데.”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왜, 공부 못해도 된대?”

“아니, 땡!”

“그럼, 학원 다니지 말래?”

“응! 비슷해!”

둘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첫날 아이들에게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운을 뗀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둘째 날 첫 수학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질문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첫 단원은 약수와 배수임)

“약수와 배수 배운 사람?”

아이들 대부분이 우르르 손을 들었고, 다음으로 “그럼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물었을 때 딱 세 명이 손을 들었단다. 그 중의 한 명이 나의 둘째 아이이고. 처음 봤겠지. 엄마도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너의 교과서를 들추어 봤으니 말이다. 

“그런데 엄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앞으로 나는 저 3명에게 맞춰서 수업을 할 테니까 재미없어도 이해해주세요’라고”

그래서 아이가 내린 결론이 ‘우리 선생님은 엄마가 좋아하는 그런 선생님’, ‘학원을 다니지 말라고 하는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이었다. 

5학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곱셈과 나눗셈에서 매우 헤매고 있는 이 아이는 공부 이외의 것에 무척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이번에는 반장을 할 것인지, 회장을 할 것인지, 친구를 어떻게 하면 빠르게 많이 사귈 수 있는지,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피구부에 어떻게 하면 언니의 명성(?)을 등에 업고 무혈입성 할 수 있을 것인지 등. 이렇게 매사에 적극적인 아이지만, 수학과 영어 시간만 되면 한없이 작아지는데, 한 번도 보습학원이라는 걸 다녀보지 못한 아이는 학년이 올라 갈 때마다 갑작스레 업그레이드 되는 진도에 늘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아이를 보습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조금 부족한 부분은 집에서 반복해서 풀어보게 하면 된다. 그래도 곧잘 100점짜리 쪽지시험지를 들고 와 자랑을 한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첫 아이는 참 많은 사교육 시장을 돌아다녔다. 아니, 돌렸다. 5살이 막 넘어서는 아기들이 한다는 한글*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튼튼** 가정방문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5학년이 돼서는 유명하다는 SL* 어학원에 보내보기도 했다. 아이는 별 말 없이 다녔다. 그런데 결국 재미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고 말한 것은 학원에 다닌 지 1년 뒤, 중학생이 되어서였다. 그렇게 초보엄마였던 나 역시 학습비용을 참 많이도 치렀다. 

그리고 결심한 것이 “둘째는 국영수 학원은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보습학원들은 죄다 선행학습을 시켰고, 끝도 없는 선행학습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아이가 수업을 중간중간 따라가기 어려워 하기도 한다. 그 때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동안 이 전 학기 교과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복습을 충분히 시켜주면 된다.

전 세계에서 수학교육 수준이 제일 높아서 아이들에게는 수학이 재앙인 이 나라에서 수업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그걸 선행학습까지 하면서 초등학생이 중학교 수학을 익히고 있다. 당연히 아이들은 수업이 재미없고 지루하다. 선생님들의 가르치는 의욕은 감퇴하고 공교육의 질은 낮아진다. 이 악순환의 굴레는 고스란히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다시 학원을 보내야하고, 학교수업의 의미는 점점 퇴색된다. 

이것을 조장하는 것은 학원가와 부모들이다. 머리로는 알면서 그 굴레를 끊어 내지를 못한다. 우리 아이가 혹여나 뒤쳐질까 두려워서. 

그런데 괜찮다. 우리 둘째 아이의 교사처럼 최근 “학교에서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흐름이 꽤나 형성되고 있다. 공교육의 질이 좋아지고, 교사들도 많은 연구를 한다. 학원 없이 학교수업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했어요”라는 아이들이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것은 서울대가 이미 부와 계급을 물려받은 아이들, 특권층의 아이들만 가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욕심을, 불안한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아이가 행복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를 서열화 시키는 교육을 ‘모두가’ 거부하면 된다. 부모의 의지에 따라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떠도는 아이는 자기 판단과 꿈이 없어진다. 부모가 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노는 법도 모르게 된다. 친구도 스스로 사귈 수 없게 된다. 

어제 SBS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9살 소년 최주원군을 보면서 “아! 이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9살 과학 소년 최주원. ⓒSBS '영재발굴단' 화면 갈무리
9살 과학 소년 최주원. ⓒSBS '영재발굴단' 화면 갈무리
내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포근한 엄마의 품으로 돌려보내줄께. ⓒSBS '영재발굴단' 화면 갈무리
내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포근한 엄마의 품으로 돌려보내줄께. ⓒSBS '영재발굴단' 화면 갈무리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세월호에 타지 말라고 누나, 형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을 학원으로, 점수 경쟁으로 떠밀기 이전에 “나는 내 아이를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부터 해보자. 혹시 내 아이가 “어느 대학에 들어가길” 또는 “어떤 직업을 갖길”이라는 건 아닌지. 행복한 아이, 꿈이 있는 아이, 친구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 그런 아이가 자신의 미래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 의자에 앉아있기도 좀이 쑤시는, 학교에서도 이미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아이들에게 국영수 보습학원은 보내지 말자. 다 같이 보내지 않으면 아무도 불안하지 않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가 행복하다.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도 행복하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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