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못하는 아기도 ‘참여권’이 있습니다
투표 못하는 아기도 ‘참여권’이 있습니다
  • 권현경·최규화 기자
  • 승인 2018.03.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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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도 참여권이 있어요①] 5인의 전문가가 말하는 영유아 참여권의 의미

【베이비뉴스 권현경·최규화 기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4대 기본권은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이다. 하지만 국내의 영유아 인권 논의는 생존권·보호권에만 치중돼 있고, 특히 참여권에 대한 논의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영유아 참여권의 의미와 중요성을 짚어보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개선 방향을 알아본다. -기자 말

[기사 싣는 순서]
① 투표 못하는 아기도 ‘참여권’이 있습니다
② “어른과 아이는 평등...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준비되셨나요?”
③ “영유아 참여권 보장? 교사 대 아동 비율부터 낮춰야”

“아동권리 원칙 중 생존권·보호권·발달권은 당연하다면서 참여권에 관해선 ‘생뚱맞다’고 한다. 참여나 권리란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가는 과정으로, 자기와 관련된 일에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아시아아동권리포럼 대표를 지낸 이재연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명예교수가 지난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이하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본다.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기본권을 명시한 국제 협약으로,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돼 한국은 물론 세계 196개국이 비준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대표적 방법으로 4대 기본권과 일반원칙 그리고 3Ps가 있다. 4대 기본권은 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으로 설명하며, 일반원칙은 협약에 담긴 모든 조항의 이행을 위해 고려돼야 할 원칙으로 비차별, 아동 최상의 이익, 생명·생존과 발달, 의견존중과 참여를 제시한다.

3Ps는 제공(Provision), 보호(Protection), 참여(Participation)를 의미한다. 이 세 가지는 협약의 의미와 내용 들을 설명하는 다양한 방법이다. 4대 기본권과 일반원칙, 3Ps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참여’다. 아동인권을 이야기함에 있어 결코 간과돼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원칙임을 의미한다.

유니세프(unicef)는 아동의 참여권을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권리”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평화로운 방법으로 모임을 자유롭게 열 수 있는 권리,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유익한 정보를 얻을 권리 등”이라고 덧붙였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을 지난 19일 서울시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영유아의 참여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19일 오후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을 서울시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참여권=투표권? 유엔은 아이 울음조차 의사표현으로 본다”

그렇다면 영유아의 참여권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2004년 논문 ‘영유아보육시설과 유아교육기관에서 영유아의 참여권의 신장방안’을 발표한 바 있는 이용교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난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참여권은 정치적 참정권과 동일시돼 왔기 때문에 영유아의 참여권 행사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유아라 하더라도 개인의 선호도가 있기 때문에 자신과 관련된 것에 대해 의사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지난 19일 베이비뉴스와 만난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라고 하면 정치적 의사결정만 생각하고 ‘갓 태어난 아기가 투표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투표는 의사결정의 한 과정일 뿐 유엔에서는 영유아의 울음조차 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 (성인과) 동등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국장은 “아이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참여권을 해석하는 데는 이견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부모와 교사는 의무이행자, 아이는 권리주체자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연 명예교수는 예를 들어 “예전 육아법은 시간을 지켜서 아이에게 젖을 주고 먹을 것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동권리협약이 나온 이후 사람마다 욕구나 상태가 다를 수 있어 시간에 맞춰 주는 것보다는 아이의 요구를 고려해 주는 것을 권장한다. 이를 영유아의 참여권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명예교수는 “‘영유아의 참여권’이라고 표현하면 성인에게 부여된 ‘참여권’의 의미로만 해석해 영유아에게 ‘너희들은 참여권이 없어, 우리(성인들)가 만든 것을 따라주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의사를 어른이 다 안다고 해서 어른이 대신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용교 교수 역시 “그동안 우리는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의 의견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고,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강요해도 된다고 당연시 해왔다”고 꼬집으며, “영유아의 경우 꼭 필요한 것이라도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종렬 서울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를 지난 13일 서울시 서초구 서울교대 내 허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나 영유아의 참여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13일 오후 허종렬 서울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를 서울시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교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청문권으로 해석 가능… 교사는 영유아 말 ‘들어줄 의무’ 있다”

한국법과인권교육학회 초대회장을 지냈고, 현재 서울교대 법과인권교육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허종렬 서울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를 지난 13일 만났다.

허 교수는 “영유아 인권 관련한 학계 논문을 살펴보면서 영유아 참여권을 ‘들어달라고 하는 권리’, 즉 청문권이라고 해석한 것이 눈에 띄었다.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볼 때 아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그것을 잘 들어주는 것이 아이들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허 교수는 “단순히 ‘청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규정하는 것과 ‘청문에 대한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며, “원장과 교사가, 영유아들은 청문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영유아 단계에서 참여의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동권리협약 제 12 조 1항]
당사국은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에게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

2015년 발표된 논문 ‘아동 참여권의 재해석과 영유아 보육현장 적용’(이성옥·이순형)을 살펴보면, “아동권리협약 제12조 제1항이 헌법상의 일반적 자기결정권에 조응함을 확인함으로써 목적은 아동의 자기결정권 실현임”을 명시했다.

논문은 아동의 자기결정권 실현을 위해 이를 청문권으로 개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동청문권 개념의 핵심 내용은 (…) 성인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는, 성인의 법적, 도덕적 의무”임을 제시했다. 청문권은 영유아의 권리이므로 그 권리를 보장할 의무는 국가 외에 보육기관과 영유아 교사에게 있다는 의미다.

영유아를 위한 아동권리협약 적용은 2005년 ‘초기 유년기의 아동권리 이행에 대한 일반논평’을 통해 분명히 선언됐다. 허종렬 교수는 이 일반논평의 취지를 “유아들이 협약에 부여된 모든 권리의 보유자임과, 초기 유년기가 이러한 권리의 실현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라는 인식을 고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모든 유아의 인권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고 유아에 대한 당사국들의 의무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도록 하며, 권리의 실현에 영향을 주는 초기 유년기(영유아기)의 특징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의 점심시간. "저는 깍두기는 싫어요", "밥이랑 하이라이스 더 주세요", "저는 물 먼저 먹을래요"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의 점심시간. "저는 깍두기는 싫어요", "밥이랑 하이라이스 더 주세요", "저는 물 먼저 먹을래요"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영유아 보육·교육기관, 영유아 참여권 보장 거의 없다”

하지만 영유아 보육·교육 단계에서 참여권에 대한 고려는 그리 깊지 않다. 이용교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보육·교육과정을 선택할 때 영유아의 참여권이 별로 없고, 일상생활 규칙, 급식과 간식, 특별활동 등을 정할 때에도 참여권이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영유아에 대한 참여권 교육 역시 미흡하며, 보육 교육시설을 선택할 때에도 아동의 참여권은 거의 확보돼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에 대해 이재연 명예교수 외 7명의 연구진이 쓴 책 ‘아동권리 0-8’(교육과학사, 2015년)은 “초기 아동기는 특히 미성숙한 것으로 간주돼 ‘자기 고유의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존중되기를 요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쉽게 ‘애들이 뭘 알아,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하는 태도를 갖는 수가 많다”고 설명한다.

영유아의 참여권 보장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보육현장에서 보장되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

이재연 명예교수는 “영유아 보육·교육 현장이 준비돼 있지 않다. 경험 부족, 지식 부족, 여유 부족 등 아이들의 성장환경이 아동친화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성장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흐름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뭐든 ‘빨리빨리’ 결과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교사나 부모의 상황 때문에 아이와 소통하고 아이를 제대로 파악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명예교수는 “아이가 원할 때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 사회 일원으로 자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갈등과 편견은 요람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 숲 체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산내들생태어린이집 5세반 아이들 숲 체험. 아이들은 놀잇감을 발견하고 놀이를 만들고 규칙도 정하며 ‘스스로 선택’해서 놀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참여권은 아동인권의 꽃… 영유아 자존감 높여줘”

영유아의 참여권은 왜 중요한 것일까. 한국아동권리학회 회장을 지낸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지난 9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참여권은 아동인권의 꽃이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주어지는 삶은 실존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어떤 간식을 먹고 싶은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 말하면서 책임감도 생기고 자아를 존중하게 된다. 자기 의사 표현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재연 명예교수는 역시 “자기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자아 존중감이 낮아지고 이 세상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의사표현으로 사회성을 키울 수 있고,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권리를 침해당하기 쉽다”고 자기결정권으로 해석되는 영유아기 참여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인권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는 타고난 권리이다. 영유아기는 신체적·인지적·심리적·사회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시기로 이 시기의 성장과 발달은 아주 빠르게 일어나고, 이에 따른 변화는 이후 성인이 됐을 때 전반적인 발달의 기초가 된다.

정병수 사무국장은 “영유아기 때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평생 남게 된다”며, “그런데도 (성인들이) 영유아를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참여권을 청문권으로 해석한 허종렬 교수는 “교사가 수업의 내용과 방법을 결정할 때 아이들에게 방법을 물어보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지면 아이들이 훨씬 자아에 대한 존중감과 참여의식이 생길 것”이라며 “그러면 아이들도 ‘오늘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면 선생님이 내 얘길 들어줄 것’이란 생각에 기쁘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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