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지 않는 시대, 육아하는 당신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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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8.10.23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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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저자, 사회학자 오찬호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지난 10일 저녁 서울 충정로 KT&G상상유니브 아틀리에서울에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 오찬호 작가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0일 저녁 서울 충정로 KT&G상상유니브 아틀리에서울에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 오찬호 작가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말하는 ‘어쩔 수 없음’이 야기한 의도치 않은 결과를, ‘치열함’ 속에 감춰진 우스꽝스러운 순간들을 나열한다. (…) ‘우리 사회’가 아닌 ‘우리 가족’만을 위한 프로젝트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12~13쪽)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 오찬호 작가는 새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휴머니스트, 2018년) 프롤로그에서 이같이 밝혔다. “‘우리 가족’만을 위한 프로젝트”에 등골 빠지는 삶을 견디는 부모들에게 참 기분 나쁜 소리다. 말 그대로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정교하게 정곡을 찔러대는 통에 외면하기도 힘든 단어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은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사랑했고, 결혼했고, 출산한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 민낯의 괴기스러움”(이상 13쪽)을 보여주는 책이다.

기분 좋은 얘기도 아닌데 그걸 왜 참고 읽어야 하느냐는 독자에게 이 ‘유쾌한 염세주의자’는 “어떤 방향이 틀렸는지 알아낸다면 우리는 옳은 방향을 찾을 가능성을 조금씩 높여나갈 수 있을 것”(11~12쪽)이라고 설득한다. 부모들이 매일 겪는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에 ‘사회학’이란 현미경을 대보면 무엇이 보일까.

지난 10일 저녁 서울 충정로 KT&G상상유니브 아틀리에서울에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출간 기념 저자 특강을 앞둔 오찬호 작가를 만났다. ‘문답’이라기보다 ‘대화’에 가까운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왜 사회학의 눈이 필요한지, 우리의 육아가 전쟁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또 찾았다.

◇ “아이 기르는 게 ‘전투’인 사회, 상식적으로 돌아갈까”

Q. 먼저 작가님의 관심이 결혼과 육아라는 주제로 이어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회학에는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이 실험실이다’라는 말이 있거든요. 결혼과 육아도 내 삶의 한 조각이에요. 그 속에서 사회학적인 ‘촉’을 계속 가동시키는 거죠. 특정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면서 의심했던 지점들이 늘 존재했고, 그걸 모아서 하나의 큰 맥락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거죠.”

Q. 이미 결혼한 사람들,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뜨거운’ 이야기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결혼과 육아의 당사자들에게 이러한 ‘사회학의 시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이를 기른다는 게 강박이나 경쟁에 빠져서 전투적인 모습을 띠게 될 때, 그 사회가 상식적으로 돌아갈까 늘 고민해야 되는 거죠. 책에도 ‘스타필드’ 얘기를 했습니다만, 이제 쇼핑몰 데려가서 장난감 사주고 하루 놀다 오는 게 부모도 편하고 아이도 즐거워요. 우리 시야가 자본의 힘으로 세팅되는 것에 편리해지는 거죠.

또 ‘엄마표 육아’나 모성이 강조될수록 여성은 일을 하면서 죄책감을 가지게 되죠. 그래서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일터에서는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자보다 남자를 선호하게 되는 악순환들. 우리가 처한 육아라는 현실을 더 큰 사회의 문제로 인지해야 해요. 실제로 생각보다 많이 꼬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이를 거부하다가는 ‘모성애조차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별수 없다. (…) ‘엄마답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워 이들은 경쟁에 뛰어든다. ‘모성’이라는 윤활유 덕택에 한국의 육아 공장은 다른 나라보다 수월하게 잘 돌아가지만, 이것은 진짜 기름이 아니니 이상적인 제품이 나오지는 않을 게다."(74~75쪽)

Q. 책에 “단언컨대 ‘모성’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악질적으로 남용되는 단어다.”라고 쓰셨습니다. 하지만 ‘작가도 그 모성 덕분에 잘 자라고 컸으면서 무슨 소리냐!’ 하는 반론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성의 힘으로 부당한 것들을 참고 견뎠죠. 그런데 그 때문에 어머니와 자식이 수평적인 어른의 관계가 되지 못하는 지점들도 존재해요. 자식들은 항상 미안함을 가져야 되잖아요. 그게 과연 좋은 인간관계일까? 아니라는 거죠. 어머니를 생각할 때 항상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 것만 떠오르는데,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죠.

그게 하나의 장벽이 되고, 더 폐쇄적인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모성이라는 것 좋아요. 그런데 그런 말이 많을수록 그 사람에 대해 진짜 깊은 얘기는 못 나누는 거예요. 모성이 너무 충만해져 있거나, 반대로 모성에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쉽게 접근을 못해요. 그런 인간관계가 과연 상식적일까요?”

오찬호 작가는 “육아라는 현실을 더 큰 사회의 문제로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오찬호 작가는 “육아라는 현실을 더 큰 사회의 문제로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누가 더 힘들게 견뎠는지 경쟁하는 ‘포장지의 사회’

Q. 강요된 모성을 비판하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계십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모성을 강요하면서도 이 때문에 여성을 상실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여성에 대한 이중의 강요를 꼬집어주셨습니다.

“만약 강압만 없다면 긍정적인 신호죠. 왜냐면 지금까지 모성적인 사람은 여성적이면 안 됐잖아요. 지금까지 엄마들이 꾸미고 다니면 욕먹었잖아요. 내가 엄마지만 여성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의미 있는 거예요. 문제는, 그 여성성이 남성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아름다운 상품적인 여성성이라는 거죠.

남편이 바람을 안 피우려면 아내가 예뻐야 된다, 이런 식. 결국 여성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되는 더 큰 부담감이 되는 거죠. 모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좇는 여성이 절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어요. 왜 그런데 이 사회는 다이어트로 여성성이 완성되는 것처럼 보느냐, 하는 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Q. “모성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에 지친 엄마들의 하소연이 ‘나도 견뎌냈다’는 다른 엄마들의 무례한 해석에 덮여버린다.”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먼저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고통이 폄하되는 상황, 무엇 때문일까요?

“누가 더 힘들게 견뎌냈는지 경쟁하죠.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오랫동안 노출돼 있잖아요. 반사적으로 나오는 버릇이, 자기 삶을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는 거예요. 평범하게 시간을 보낸는 게 죄악시되는 시대예요. 일상의 자기소개서를 쓰는 듯한 느낌도 받고, 저는 그게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났다는 걸 드러내거나, 내가 힘들다는 걸 드러낼 때도 아무도 깔보지 못할 정도의 힘듦이라는 걸 타인이 공감해야 돼요. 약자로서의 상품성도 존재하는 거죠. 일상에서, 나는 극복했다, 내가 더 힘들다, 너만 힘드냐 하는 식의 진흙탕 싸움이 돼버려요. 저는 그래서 ‘우리 사회는 포장지의 사회다’라고 해석합니다.”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는 대부분의 엄마는 모성 가득한 사람이 되어 육아에 전투적으로 매진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해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유달리 집착하는 건 모성의 힘을 강요하는 사회의 끔찍한 결과일 뿐이다."(86쪽)

Q. 말씀하신 ‘포장지의 사회’라는 해석으로, 책에 쓰신 ‘육아서 비판’ 또한 이해가 됩니다.

“‘워킹맘의 극복기’ 이런 게 너무 많아요. 워킹맘의 고충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가면 되는데, 거의 ‘극기열전’이죠.(웃음) 굉장히 기만적인 내용도 많고. 도저히 다른 사람한테 육아를 맡겨놓고 극복할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하는데, ‘애도 보면서 일도 잘하네’라는 메시지만 부각시켜요. 전형적인 ‘포장지의 사회’의 모습이죠.”

◇ “우리가 절대 빠뜨리면 안 될 한 가지, ‘시민’을 기르는 것”

Q. ‘아빠육아’ 효과에 대한 말씀은, 저 역시 아빠인지라 더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구분된 성역할에 따른 효과가 아니라 주양육자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에서 오는 효과라고 해석하셨어요.

“아빠육아조차도 성차별적으로 담론이 만들어져 있어요. 지금까지 육아에 신경을 못 쓰던 아빠가 육아에 들어오면서 아이가 즐겁게 노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할 수 없는 아빠만의 육아가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이가 여러 가지로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걸 보고 충격을 좀 받았죠.

그게 과연 아빠라는 성별에서 오는 효과인가. 저는 그건 ‘좋은 어른’이 하나 더 육아에 투입됨으로써 오는 효과 아닌가 생각해요. 아빠육아조차도 아빠만의 육아가 따로 있다는 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적인 사회의 모습이죠. 아빠들의 진정성은 좋아요. 그런데 해석을 어떻게 할지는 늘 경계해야죠.”

Q.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 대안입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대안교육과 대안육아마저 비판하고 계십니다. ‘대안’을 향한 쓴소리까지 하신 이유는 뭔지 듣고 싶습니다.

“‘대안을 선택한 사람을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개인의 선택은 존중하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결심 없이 살고 싶어요. 그냥 집 앞에 있는 학교를 가도, 서울대 가고 그런 건 아니더라도 시민으로 자라길 바라는 거죠. 대안을 선택한 사람들의 고민이 평균치가 돼버리면,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누려야 될 권리가 흔들려요.

사회학에서는 ‘대안이 많으면 중심이 면죄부를 얻는다’고 표현하거든요. 슈퍼에서 파는 식재료에 문제가 생겨도, ‘네가 생협 가서 사면 되잖아’ 해버리면 별 문제가 안 되는 거죠. 대안학교가 대안이 되면 일반학교의 학력 차별은 어떤 의미에서 정당화 돼버려요. 대안이 사회적인 선택지로 제시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Q. 결론에는 ‘시민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만 남겨두셨습니다. 힌트라도 하나 주시면 어떨까요? 

“시민이란 그 사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등해지는 지점으로 가게 하는 사람이죠. 우리가 아이를 기를 때 그건 절대 빠뜨리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의 개성도 중요하지만, 보다 인류 공동체의 광범위한 평등을 만들어가기 위한 일상의 결심이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남들처럼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고, 남들처럼만 하는 것도 답은 아닐 것이고. 일상에서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과잉된 육아와 교육의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는 거겠죠.”

"현실을 ‘버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버티지 않고도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시민은 ‘보다 좋은 사회를 위해서 객관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자녀를 시민으로 기를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게 어떻게 ‘사람의 육아’라 할 수 있겠는가."(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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