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아이들을 망친다
친절이 아이들을 망친다
  • 칼럼니스트 장성애
  • 승인 2018.1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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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질문공부] 가위질도 어려운 아이들

하브루타 질문으로 교육을 많이 다니다보면 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중에 유아교재를 만들어서 납품을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심각성에 대해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아교재의 많은 것들이 스티커를 떼서 붙이거나 혹은 이미 오려져 있어서 뜯어서 쓰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렇게 친절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친절한 교재들의 문제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위질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재를 만드는 분들은 내용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사용하는 부분까지 고려해서 많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연구를 하고 또 연구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도안이 되고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교재를 만드는 사람은 자꾸 생각을 합니다. 아이디어를 내게 되지요,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떼서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결국 아이들의 사고훈련을 위해서, 두뇌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교재나 교안들은 어른들의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아이들은 그냥 수용하기만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른들의 창의는 아이들의 생각을 막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예를 들어볼까요? 10년도 더 전에 제가 전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다닐 때는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갈 때나, 광주 등으로 갈 때에는 지도를 열심히 보고 IC 검색을 철저히 해서 도로주행을 할 때에도 주변을 살피는 등 주의집중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하면 가까운 곳에 갈 때에도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을 해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전화번호 30개 정도는 암기를 했던 듯합니다. 가족들의 번호는 당연히 다 외우고, 친한 친구나 주변 사람들 번호는 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대였기 때문에 뇌가 무엇을 기억하는 노동을 감수하도록 어느 정도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다시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가면, 손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이 프로그램화 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대한민국이 국가로서는 IQ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쇠젓가락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을 쓰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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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어릴 때 놀았던 구슬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새총을 만들어서 놀기, 땅에 그림을 그려서 노는 오징어놀이 등도 결국 손을 써야 합니다. 비석치기는 온몸으로 노는 놀이입니다. 이런 놀이들은 몇 달에 한 번 프로그램화 해서 놀았던 놀이가 아니라 매일 했던 놀이들입니다. 온몸으로 익숙해진 놀이들은 머리를 쓰게 하고 창의력을 높입니다.

겨울에는 초등학생일 때에도 스스로 썰매를 만들어서 놀기도 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놀이인 소꼽놀이들도 직접 옹기 깨어진 것들을 다듬어서 작은 그릇을 만들거나, 반찬들도 풀을 찧거나 해서 직접 만들고 놀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실뜨기 놀이를 하며 놀거나, 뜨개질이나 가벼운 바느질 정도는 당연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 중에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에 가서 1년간 공부를 하고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잘 안 되니 친구들을 쉽게 사귈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혼자 노는데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공기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2단, 3단의 공기놀이를 혼자 하고 있으면 미국 아이들이 다가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신기하게 쳐다보고, 서로 친해지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방과 후에는 친척이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종이접기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 모습을 본 학생들로 놀라워했고, 역시 그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남학생이 말을 걸어올 정도로 인기가 짱이었다고 합니다.

이 친구의 이야기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빨대 긴 것 두 개를 사용해서 젓가락질을 하면서 햄버거를 먹었다고 합니다. 서양 아이들 눈에는 완전 마술에 가까운 묘기처럼 보였겠지요. 당연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졌고, 미국생활도 잘 적응하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기보다는 한국적인 재치와 끼를 잘 발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대단한 우리의 기술들을 우리는 전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힘이 들까봐 미리 오려놓은 교안들, 그리고 아이들이 풀로 붙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깨끗하게 스티커형으로 나온 재료들, 젓가락 사용이 어려울까봐 플라스틱 포크를 사용하도록 하는 부모와 교사의 수고들이 아이들이 뇌를 사용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손으로 하는 정교한 작업들을, 잘 만들어진 교구를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가능하도록 도와준다면 지능지수 세계 1위는 계속 유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 읽기, 쓰기, 외우기와 질문 토론이 곁들여진다면 유대인을 능가하는,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칼럼니스트 장성애는 경주의 아담한 한옥에 연구소를 마련해 교육에 몸담고 있는 현장 전문가이다. 전국적으로 부모교육과 교사연수 등 수많은 교육 현장에서 물음과 이야기의 전도사를 자청한다. 저서로는 「영재들의 비밀습관 하브루타」, 「질문과 이야기가 있는 행복한 교실」, 「엄마 질문공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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