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중심영어? 말 자체가 모순… 구조화된 놀이는 놀이 아냐”
“놀이중심영어? 말 자체가 모순… 구조화된 놀이는 놀이 아냐”
  • 김재희·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4.1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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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베이비뉴스 김재희·최규화 기자】

‘국민들이 가장 지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은?’

정답은 ‘아동인권법(영유아인권법)’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한 달 뒤인 2017년 6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3551명 중 90.4%가 아동인권법 공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동인권법의 핵심은 과도한 영유아 대상 사교육을 억제하고 영유아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지난달 13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유아 학부모가 가진 불안과 걱정을 덜고자 소책자 ‘안심해요, 육아!’를 출간하고, ‘100만 국민나눔운동’ 출범식을 열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만든 다섯 번째 소책자인 ‘안심해요, 육아!’는 영유아 부모들이 흔히 가지는 열두 가지 질문에 전문가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안심해요, 육아!’ 출간을 기해, 지난 1일 서울 한강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윤지희 공동대표를 만났다. 영유아 사교육 문제의 심각성부터 문재인 정부의 사교육 대책에 대한 평가, 그리고 영유아 부모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까지 이야기는 폭넓게 이어졌다.

◇ “아이 키우는 모든 영역에 사교육 침투… 시장 논리가 압도”

지난 1일 서울 한강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일 서울 한강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영유아 사교육의 심각성, 어느 정도로 진단하고 계십니까?

“아이를 키우는 모든 영역에 사교육이 침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유아 교육에 대한 철학, 옳고 그름에 대한 사회적 기준 자체가 없다고 봅니다. 정부나 학계가 영유아 교육에 대한 철학을 정착시켜야 하는데, 그게 부재한 공간에서 사교육의 논리, 시장의 논리, 경쟁의 논리가 합쳐져서 그것만이 팽배해져 있어요.

유아교육 박람회에 몇 만 명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전부 영유아 시기 아이들에게 경쟁과 학습부터 강조하고 있고, 그걸 임신한 예비엄마들도 미리 와서 열심히 살펴보더라고요. 시장의 논리와 교육의 논리를 마주 놓고 본다면 거의 9:1 정도로 시장의 논리가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Q.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어떤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과거부터 대학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있어왔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특목고 입시를 위한 중학생 사교육이 굉장히 늘어났어요. 실제로 중학생이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특목고 입시 전형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활동들이 성과를 내면서 중학교 사교육 시장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또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가 줄면서 초중고 사교육 자본들이 두 가지 방법을 모색해냈습니다. 바로 해외시장 진출과 영유아 사교육 확대입니다. 아이를 적게 낳지만 한 아이에게 더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썼죠. 그에 따라서 영유아 영어교육 시장도 커지고 교재교구 시장도 같이 확대됐습니다.”

Q. 2013년에 영유아 사교육 근절을 위해 ‘영유아사교육포럼’을 발족하셨습니다. 그동안 ‘영어유치원’ 명칭 사용 금지 등 여러 활동들을 해오셨는데, 가장 의미가 큰 성과를 한 가지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한동안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떼는 게 필수라고 생각해왔어요. 부모의 경쟁심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교육과정 문제도 있거든요. 23차시 정도,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에 한글을 떼도록 돼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굉장히 버거울 수밖에 없죠. 부모도 아이가 받아쓰기 빵점 받아오고 열등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눈에 불을 켜고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희가 초등학교 한글 수업시간을 충분히 확보해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활동해서 지금은 2.5배 정도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Q. 지난해 유치원 방과후 영어 허용을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요, ‘놀이중심영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영어를 학습이 아닌 놀이 식으로 하면 스트레스를 안 주면서 접근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구조화된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에요. 놀이는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데, 구조가 들어가고 체계가 들어가면 이미 놀이가 아닌 거죠. ‘놀이중심 영어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 “영어교육 ‘결정적 시기’ 주장은 오래된 신화… 한국 현실과 무관”

지난달 13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소책자 ‘안심해요, 육아!’를 출간하고, ‘100만 국민나눔운동’ 출범식을 열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13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소책자 ‘안심해요, 육아!’를 출간하고, ‘100만 국민나눔운동’ 출범식을 열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안심해요, 육아!’ 소책자 제작 과정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영유아사교육포럼을 통해 쌓인 자료만 6년 치입니다. 몇 천 쪽 되는 자료 중에서 열두 가지 주제만 뽑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거였죠. 또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짤막하게 요약하는 조탁의 과정이 힘들었죠.

지난 네 번의 소책자 출간 때마다 특별모금을 했어요. 이번에도 3000만 원 목표로 특별모금을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동안 해온 것보다 더 빨리 목표를 초과해서 모아졌어요. 연령을 떠나서 아이들이 과잉학습에 지치고 시달리는 현실에 마음 아픈 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셨어요.”

Q. 소책자에는 잘못된 영유아 사교육 정보 열두 가지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들어 있습니다. 열두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영어 사교육이 굉장히 심각하죠. 영어발레, 영어태권도, 모든 것에 영어를 붙여놨어요. 말도 못하는 아기들 장난감에서도 영어가 나와요. ‘만 3~5세에 영어에 노출되면 효과가 크다’는 이른바 ‘결정적 시기’에 대한 주장은 아주 오래된 신화처럼 알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에요.

결정적 시기에 대한 연구는 이민자가 많은 미국에서 ‘몇 살에 영어를 배워야 원어민처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고, 그것도 13세 전후인지가 쟁점이에요. 단일언어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결정적 시기에 대한 연구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인데, 이게 사교육에서는 3~5세까지 내려와서 얘기되는 거죠.”

Q. 그런데 사교육 줄이자는 이야기가 ‘엄마표 교육’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래서 사교육 대신 엄마가 주도적으로 학습을 시켜야 한다’는 결론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죠. 이른바 ‘엄마표 교육’은 자칫 엄마와 아이 모두 지치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엄마가 굳이 아이를 붙들고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은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 “‘대통령 공약’ 영유아인권법 제정, 올해가 마지막 기회”

윤 공동대표는 “영유아인권법 제정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윤 공동대표는 “영유아인권법 제정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영유아 사교육을 막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영유아인권법 제정’ 운동도 하고 계십니다. 영유아인권법(아동인권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데, 추진이 더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공약을 입안할 때 충분한 검토나 준비가 없었던 것 같아요. 결국 시장과의 충돌 때문이죠. 영유아 사교육 시장을 압박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반발이 예상되잖아요. 지금 정부는 학원 휴일휴무제 등 사교육과 관련한 어떠한 공약도 이행하고 있지 않아요. 국민들이 끝까지 지켜보면서 정부를 견인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Q. 영유아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잉학습 문제는 정부가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나가야 하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교육정책의 중장기 설계를 위해서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다는데, 반드시 영유아 분과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저출생 문제가 너무 심각하잖아요. 지금처럼 행복할 수 없는 세상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큰 거죠. 국가가 영유아의 보육과 교육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해요. 그런 점에서 자기 권리를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영유아인권법도 제정이 돼야겠죠.”

Q. 영유아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부뿐만 아니라 학계 또한 역할을 해야 할 텐데요, 소책자를 만드는 데 함께하신 29명의 전문가들 중에 유아교육 학계에 계신 분은 3명에 불과합니다. 좀 아쉬운 비중입니다.

“유아교육 교수님들이 기관들의 눈치를 많이 보실 수밖에 없더라고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운영이나 흐름에 대해 비판하면, ‘저 학교 졸업생들은 교사로 채용하지 마’ 하는 카르텔이 작동한다는 거죠. 그동안 영유아사교육포럼을 통해서 수십 차례 토론회를 해오면서도, 유아교육 교수님들은 참 모시기가 어려웠어요.”

Q. ‘안심해요, 육아!’ 소책자 ‘100만 국민나눔운동’을 선포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가실 건가요?

“영유아인권법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제정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안심해요, 육아!’ 소책자 배포와 영유아인권법 제정을 연계해서 대국민 캠페인을 할 생각입니다. 또 영유아 시민정책위원회를 운영해서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더 전문화해나갈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사교육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자 하는 양육자들에게 응원을 담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방법을 잘 몰라서 이웃이나 시장의 정보에 자기도 모르게 휩쓸리게 돼요. 학계나 전문가의 정보를 많이 듣는 게 좋지만 그럴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죠. 돈을 들여서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노력과 정성을, 그런 이야기를 찾아 듣도록 방향을 바꿔서 기울여야 해요.

그리고 저도 부모로 살아오면서 가장 힘이 된 것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거든요. 아무리 올바른 생각이라도 혼자만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해요. 주변에서 흔드는 힘이 워낙 강하잖아요.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연대와 만남이 중요해요.”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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