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낙태죄는 지금과 같을까?
조선시대 낙태죄는 지금과 같을까?
  • 이중삼 기자
  • 승인 2019.05.16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카드뉴스] 조선시대 낙태죄, 지금과는 개념이 달랐다

【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알림] 시각장애인 웹접근성 보장을 위한 대체텍스트입니다.

1. 조선시대의 낙태죄는 지금과 같을까?

2. 낙태란 용어가 조선왕조 문헌에 처음 표기된 것은 태종실록이다. 조선시대 낙태에 관한 기록을 통해 낙태죄 처벌을 살펴봤다.

3. “1418년 근래 강회중(姜淮仲) 처가 임신하였는데 양홍달(楊弘達)이 배 한가운데에 덩어리가 생겼다고 생각하여 뜸을 떠서 낙태(落胎)한 뒤에야 그가 아들을 가졌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태종실록

4. “1426년 백정 박문(朴文)의 아내 웅덕(熊德)을 발로 차서 낙태하여 죽였으니 형률에 의해 교수(絞首- 목을 졸라서 질식시키는 사형 방법)에 처해야 한다.”-세종실록

5. “1428년 지양근군사(知楊根郡事) 이종직(李從直)이 임신한 부녀자를 구타하여 낙태하게 하였습니다. 청컨대 장 1백에, 자자(刺字)에 처하게 하소서.”-세종실록

6.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낙태죄는 지금과는 개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7. 중국 명나라 형률서인 ‘대명률’을 따랐던 조선시대는 상해로 인해 낙태될 경우 상해를 입힌 가해자를 처벌할 뿐, 낙태한 여성 등 처벌 규정은 따로 없었다.

8. “1459년 양녕 대군(讓寧大君)이 지난번에 경상도(慶尙道)에 있을 때 종자(從者)가 양산군(梁山郡)의 아이를 밴 부녀를 구타하여 낙태(落胎)를 시켰으며, 또 김해 부사(金海府使) 변포(卞袍)는 무사(武士)들을 많이 모아서 그들로 하여금 사후(射侯)하게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추국(推鞫)하게 하소서.”-세조실록

9. “1583년 형조(刑曹)가 임신부를 형문(刑問)하다가 낙태(落胎)가 되어 죽게 하자 색낭청(色郞廳) 김건(金鍵)·참의 권수(權)를 파직하고, 참판 윤탁연(尹卓然)·판서 강섬(姜暹)을 체직하도록 명하였다.”-선조실록

10. 조선시대는 임산부를 구타해 낙태시켜 사망하게 한 사람에게는 교형에, 구타로 낙태시킨 사람에겐 장 1백대를, 관청에서 심문하다 낙태로 사망한 경우는 관직을 파직시켰다.

11. 자신이 원치 않는 타의에 의한 낙태가 주를 이루고 있어 지금과는 낙태죄에 대한 개념이 달랐던 조선시대였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