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20대 중반 직장인 여성이 상담을 왔습니다. 에니어그램 7번 유형, 오행 기질 중 ‘화(火)’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에 명랑하고 붙임성이 있는 그는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도 안 돼!’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아오셨겠어요”라고 했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지금도 남들 보기엔 정말 잘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지금까지 뭘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요. 집에 혼자 있을 때 우는 일이 많아요.”
◇ 호기심 많고 명랑한 아이들의 속내…"나 너무 서운해"
행동형의 명랑한 아이들은 어딜 가나 인기 만점입니다. 여기에 예의까지 잘 갖췄다면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합니다. 거칠 것도 없고 어려워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분위기 메이커’로서 주변에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사례처럼, 어릴 때 모습과 성인이 된 모습을 오버랩해서 상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그동안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상담한 덕분일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행동부터 하는 타입이라 무엇인가를 많이 시도하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물어보면 상당히 억울해합니다.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 부모가 안된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까지 떼쓰는 이 아이, 그래서 부모들은 할 수 없이 허락해주는데 아이들은 정작 자신의 요구를 부모가 들어준 기억보다 거절당한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니, 부모들은 억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보통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기억 왜곡’을 합니다. 그런데 이 유형의 아이들은 그 왜곡이 유독 심합니다. 그 이유를 알면 부모도 좀 덜 억울하고, 아이들에게 그 ‘기억 왜곡’이 상처로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선 두 그룹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A: 명랑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의 요구 20가지
B: 진중하고 조용한 아이의 요구 2가지
A 기질을 가진 아이들의 요구 중 40~50%는 관철될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투자’를 하기로 작정했으니까요. 그리고 B 기질을 가진 아이들의 요구 2가지는 반드시 들어줄 것입니다.
여기서 성공확률을 보겠습니다. A 기질 아이의 성공률은 기껏해야 50%입니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더 낮으면 낮았지 더 높아질 확률은 낮습니다. 반대로 B 기질 아이의 성공률은 100%입니다. 그래서 A 유형은 B와 비교하면서 “B는 말만 하면 다 해주는데 나만 안 해준다”라고 무척 서운해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하려는 것마다 못하게 하고 혼냈다는 사실을 깊은 상처로 간직합니다.
한 집에 두 유형의 아이들이 있다면 비교가 쉬울 것입니다. 50%와 100%에는 엄청난 심리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B 유형은 어떨까요? B는 A를 ‘졸라서라도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지고야 마는 아이’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무척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기억은 어떨까요? A는 ‘졸라서라도 열이면 열 다 챙기는 아이’로, B는 ‘해주겠다고 해도 괜찮으니 필요 없다고 말하는 아이’로 기억합니다. A와 B, 그리고 그 부모까지 이 셋의 기억이 다른 이유는 입장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곡된 기억이 쓸데없는 상처로 남아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리를 위축하고 활동을 제약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 "돈 없어!"라는 말 대신 아이의 요구 '현명하게' 거절하는 방법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거절할 땐 무조건 “안 돼!”라고 하거나 떼를 쓴다고 혼내기보다는, 왜 그것이 꼭 갖고 싶은지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라거나 “이미 넌 많이 갖고 있잖아”라는 어설픈 논리로 아이의 요구를 거절해선 안 됩니다.
“돈이 없다”가 아닌 “계획된 예산”이 없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돈이 없다면서 부모들은 마음껏 소비 활동을 하는 것이 아이는 잘 이해되지 않거든요. 또, A 유형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다 해본 것이기 때문에 ‘호기심 영역’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부모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꼭 비용을 쓰지 않아도 가질 방법, 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로 혼내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가르치고, 그래도 꼭 갖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지 스스로 탐색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이 아이들의 행동적인 호기심은 스스로 많은 것들을 ‘쟁취’해 갈 것입니다. 그런 성취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강점으로 잘 발휘될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장성애는 경주의 아담한 한옥에 연구소를 마련해 교육에 몸담고 있는 현장 전문가이다. 전국적으로 부모교육과 교사연수 등 수많은 교육 현장에서 물음과 이야기의 전도사를 자청한다. 저서로는 「영재들의 비밀습관 하브루타」 「질문과 이야기가 있는 행복한 교실」 「엄마 질문공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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