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직장·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저랑 남편은 같은 곳에서 일하고 같은 직급이지만 남편한테는 아무도 ‘애는 누가 키워?’ 이런 질문을 하지 않거든요. 저는 다시 일 시작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럼 애는 누가 키워?’였어요. 같이 애 낳은 건데 왜 나한테만 이러나….”
23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장명희(37) 씨는 국회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한다. 국회의원실에는 대학교 4학년 때 인턴으로 들어가서 13년 정도 일했다. 남편인 이세영(36) 씨도 장 씨와는 다른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한다. 장 씨는 20대 국회 때 A 의원 임기 중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휴직 중에 선거가 치러졌고 A 의원이 낙선해 복귀할 곳이 사라졌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당선자 중심으로 의원실이 꾸려진다. 그 때문에 국회가 시작할 때 의원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자리가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 장 씨는 21대 국회가 시작되자, 남은 육아휴직을 포기하고 출산 후 9개월이 지난 시점에 재취업에 뛰어들었다.
경력도 10년 넘었고, 외국 석사 학위도 있고, 선거 경험도 많은 장 씨의 재취업은 출산 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달 11일 저녁 7시경, 경기도 안양시 장 씨 집을 방문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집에는 아이를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와 남편이 함께 있었다.
◇ “내가 어떤 능력을 보여도 나를 뽑을 생각이 없는 곳이구나”
국회는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인 만큼 다른 직장과 비교해 임신·출산·육아에 필요한 제도를 편히 좀 사용할 수 있을까. 장 씨는 출산 후 9개월 차에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솔직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열심히 포트폴리오 준비해서 서류를 넣어도 연락조차 안 오는 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랑 경력이 비슷하거나 짧은 친구들도 남자들은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심지어는 골라서 가더라고요.”
장 씨는 열다섯 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은 네다섯 곳 정도 봤다. 면접 땐 그동안 만든 법안, 쓴 질의서, 수행했던 업무 등 포트폴리오를 꼼꼼하게 준비해서 갔다. 그러나 실제 면접에서 장 씨가 들은 첫 질문은 ‘애가 너무 어리지 않아요?’였다.
“‘아 여기는 내가 어떤 능력을 보여도 나를 뽑을 생각이 없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면접에서 돌아오는 길이 굉장히 슬펐던 기억이 나요. 아이를 키운다는 걸 짐으로 여기면 안 되는 곳이잖아요. 국회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는 곳이긴 하지만 변화에 아직 혁신적으로 동참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아서,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기 때문에 직원이 1년을 육아휴직을 쓰는 것 자체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외적으로 장 씨가 지금 일하는 의원실에는 보좌관 한 명과 비서관 두 명, 모두 세 명이 워킹맘이다.
“저는 운 좋게 이전 의원실에서 임신 초기와 말기 유연근무제도 쓰고, 육아휴직도 썼어요. 그리고 지금 일하는 의원실 의원님은 제 포트폴리오를 중요하게 봐주셨어요. 아이와 관련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고요.”
장 씨는 육아휴직 하면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혼자 약간 뒤처지는 느낌. 아이 키우는 것도 너무 가치 있는 일이지만 ‘영원히 사회로 복귀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남편은 (21대 국회 시작할 때) 여러 군데서 제안받아서 고민하는데 저는 면접 기회도 없고, 면접 보더라도 아이 얘기하고 그때는 너무 우울해서 남편한테 엄청 히스테리 부리고,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것 같단 생각까지 들기도 하고 재취업할 수 있을까 불안감도 컸던 것 같아요.”
◇ “‘이래서 애 있는 엄마는 안 돼’…이런 선례를 남기기 싫어요”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느낀 건 사회적 인식이 다 ‘엄마 책임’이더라고요. 엄마의 죄책감을 굉장히 가중시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아빠는 조금만 해줘도 백점짜리 아빠, 엄마는 조금만 실수해도 빵점 엄마 이런 인식이 있어요.”
일하면서 가장 힘든 건 아이가 아플 때다. 장 씨의 아이도 2월에 돌발진이 심하게 왔다. 한두 시간 정도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한테 가기는 했지만 스스로 되게 눈치가 보였다. 아이가 아플 때, 편하게 직장에 얘기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법이나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얘기하긴 어렵다.
“의원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려고 하시는데 워킹맘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거에요. 그냥 혼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게 있어요. 스스로에 대한 어떤 압박 같은 거겠죠. 아이를 이유로 일에 지장이 가는 모습을 보여서 ‘이래서 애 있는 엄마는 안 돼’, 같은 조건이면 남자를 뽑는 게 더 보편적인 이 분야에서 저 스스로 그런 선례를 남기기 싫은 것 같아요.”
야근하고 들어가면 아이는 자고 있고 바쁠 땐 2~3일 아이 얼굴을 못 본 적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보니 기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잡고 걸으려고 했다. 장 씨는 “아니 이런 걸 못 보고 내가 뭐를 위해서 일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년은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 ‘아이는 두 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아이가 엄마랑 같이 자야 정서적으로 불안하지 않다’ 등 주변에서 말하는 엄마의 역할 때문에 많은 워킹맘은 죄책감을 느낀다.
“‘일도 육아도 다 잘할 수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 아이에게 죄책감 느끼지 말고,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죄책감에 흔들리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애는 금방 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이 순간은 잠깐이다’, 이 말이 굉장히 위로되고 저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말 중 하나였어요. 열심히 해도 엄마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조금 뻔뻔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 “다른 아빠들은 안 그랬는데… 너만 아빠야?”
일하는 아빠, 이세영 씨는 고충이 없을까.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가진 엄마와 아빠를 보는 시각은 분명 차이가 있다. 이 씨는 “선후배들에게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에 특별한 일이 있어 양해를 구할 때, ‘선배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너만 왜 유독 그러냐’, ‘너만 아빠야?’, ‘다른 아빠들은 안 그랬는데 너는 왜 그래’, ‘네가 언제부터 깨어 있었다고’” 이런 반응이라고 했다.
이같은 반응을 접하면, “내가 너무 튀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는데… 누군가는 겪어내야 남자 후배들이 아빠로서의 역할을 좀 더 많이 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씨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아이 태명을 딴 ‘꿀복이법’을 제안했다. 이 법은 임산부가 임신 초기와 말기에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기존 법안에서 더 나아가 임신 전 기간에 유연근무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것으로 올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씨는 아내가 일하는 데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지금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보다 스펙이 낫고요, 일을 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단지 엄마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인 저에 비해 직장 경력이 짧아지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원하는 한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아이에게 시간을 쏟는 게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제 아이도 엄마가 걷고 있는 길을 가야 하잖아요.”
장 씨는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작은 저의 노력이지만 사회를 조금씩이라도 바꿔 가는 일이기 때문에 특히 제가 건의해서 만든 질의서가 정부 정책에 조금이라도 반영되거나 저희가 만든 법이 조금이라도 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한다거나 이럴 때 보람을 많이 느끼죠.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그런 보람요.”
◇ “아이를 하나 낳은 것밖에 없는데 여러 군데에서 죄인이 된 것 같더라고요”
장 씨가 재취업한 후, 18개월까지 친정엄마 혼자 아이를 돌봤다. 처음엔 주중에는 친정에 살고 주말에 집으로 짐을 싸오는 생활을 8~9개월 했다. 그러다 이제 장 씨 집으로 정착했고 친정엄마가 장 씨 집에 오셔서 돌봐주신다.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다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접어들면서 7월부터 다시 가정에서 돌본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면서 부쩍 늙으셨다는 장 씨. 딸이 아이를 낳으면 엄마처럼 봐줄 자신이 없다. “친정엄마께는 너무 죄송스럽죠. 사실 아이를 키우는 게 엄마의 희생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희생이 꼭 들어가야 하잖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들이 돌봄을 서로서로 메꾸면서 할 수 있을까. 아이 봐주시고 부쩍 늙으셨어요(글썽).”
“아이를 하나 낳은 것밖에 없는데 여러 군데에서 죄인이 된 것 같더라고요. 일터에서는 100%를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 죄스럽고, 아이한테는 엄마 역할 많이 못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장 씨는 임신하고 임신·출산 관련 법들을 살펴보니, 육아휴직 관련 법과 제도는 잘 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사회적 인식은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임산부 관련 법을 강제조항으로 해버리면 기업이 임산부를 안 뽑아요. 있는 임산부도 내보내려고 하고 그래서 법만 강하게 만든다고 효과가 있는 건 아니에요. 현장 상황 모르고 법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게 결국 칼이 돼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무섭게 깨달았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회적 인식 개선도 같이 가야야 하고요, 돌봄에 있어 국가의 책임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많은 엄마들이 일하고 더 많은 엄마들이 걱정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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