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주차장은 '역차별'이라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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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용주차장은 '역차별'이라는 당신에게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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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여아·남아 모두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 아침밥 챙겨줄 생각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수련회 장소를 나섰다.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먹을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는 남편에게 일찍 집에 들어가겠노라고 약속한 터였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런데 어느덧 내 옆에 흔들흔들,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저씨가 와서 섰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많이 드셨군' 생각하던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흔들거리던 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옮겼고, 나는 타기를 포기했다. 늘 있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를 실은 엘리베이터가 올라갔고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땡!” 1층에 다시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런데, 헉!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는 나에게 “안 타세요?” 하고 물었다. 무서웠다. 그 좁은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될 상황도 무서웠지만, 두 번이나 타지 않으면 자기를 무시하냐며 해꼬지라도 할 것 같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결국 타는 쪽을 택했다. ‘그래, 5층만 올라가면 된다!’

최대한 그와 떨어져 구석진 벽에 붙어 섰다. 그래! 술 취한 사람 하나쯤은 힘으로 이길 수 있어! 그런데 흔들리던 그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집이 아니에요. 여기가 아니에요.”

아이고야, 이분 집을 못 찾고 있구나. “몇 층이세요?” 하고 물으니 “6층인데, 여기가 아니에요”란다. 그래요. 저도 아저씨를 본 적이 없네요. 아마 옆 라인 주민인 것 같다. 이 아저씨 오늘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할까나. 내가 탈출을 시켜줘야겠다. 몇 호인지 묻고, 다시 내려가시라고 1층 버튼을 눌러주었다. 그런데 또 말을 건다.

“저기요~ 그거 알아요? 지갑도 잃어버리고, 핸드폰도 잃어버리고….” 아이고. 그랬구나. 소지품도 다 잃어버리고 게다가 집도 잃어버려서 '멘붕'에 빠진 고달픈 사람 앞에서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으면서도, “땡!” 하며 우리 집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빛과 같은 속도로 튀어나갔다. ‘이 사람이 혹시나 쫓아 내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함께.

대한민국에 사는 '여자사람'이라면 흔히 있는 일상이고, 그 일상에서 흔히 하는 ‘오해’이다. 그리고 사실 그 ‘오해’보다도 더 자주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으니 그 오해가 꼭 내 잘못은 아닌 듯하다. 그날 집에 ‘무사히’ 돌아온 나는 큰 딸아이에게 ‘엘리베이터에 낯선 남자와 단 둘이 타지 말 것’, ‘혹시나 밀폐된 공간에서 남자에게 공격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 "여성주차장이 왜 필요해!" 아이들 세대라고 안 그럴 거라 자신할 수 있나

또 몇 해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여성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려는데, 어느 남자 운전자가 얌체같이 그 공간에 쏙, 주차를 해버렸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여기는 여성 전용 주차장입니다만.”

그랬더니 그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것도 다짜고짜 반말로. “여성 주차장이 뭐가 필요해? 여자가 대통령도 하는 세상인데!” 그러고는 내가 미처 반론을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휑하니 가버렸다.

순간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받았던 무수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왜 여성휴게실만 있나. 남성휴게실도 만들어라”, “여성부(여성가족부)가 있으면 남성부도 있어야지. 역차별 아니냐”,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 “힘쓰는 일도 똑같이. 여자도 생수통 날라라” 같은 말들 말이다.

얼마 전 큰아이가 이퀄리즘이 뭐냐고 물었다. 얼마 전에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도 물어본 참이었다. 요즘 청소년, 특히 여자 아이들 세계에서 ‘페미니즘’ 관련한 이슈들이 관심사라더니 부쩍 관련 질문이 많아졌다.

사실 나 역시 ‘이퀄리즘’이라는 용어가 생경하기만 하다. 직역하면 ‘평등주의’쯤 되는데, 그 어원을 찾아보니 이 말은 한국에서 발생한 용어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남성을 배제하는 여성우월주의'라고 주장하며 그의 대안으로 ‘이퀄리즘’을 주장했다고 한다.

앞서 말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적으로 배려하는 것’에 대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칭한 말쯤 되시겠다. 가부장사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체급이 다른 선수들에게 ‘평등하게 맞짱 떠보라’는 상황 같은 거라고나 할까?

출발선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퀄리즘'은 진정한 평등주의가 아니다.
출발선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퀄리즘'은 진정한 평등주의가 아니다

왼쪽과 오른쪽 그림 중 무엇이 '평등'인가? 한 시간에 평균 2회 이상 성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여성 주차장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성감수성에 앞서 이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나저나 여성 주차장에 당당히 주차를 했던 그분은 어찌 잘 살고 있으려나? 여전히 나 같은 여성을 만나면 “세상 참 좋아졌어. 여자들이 운전도 하고 나다니고 말이야! 집구석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시지!” 하며 씩씩거렸던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 세대라고 그런 말과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 있나? 페미니즘과 이퀄리즘의 차이를 가르치지도 않는데!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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