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우연히, '이혼하고 마음의 상처가 되어 죽고 싶어요'라는 상담글에 어느 유명한 스님께서 위로의 글을 달아주신 걸 보았다. 헤어지고 만나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라는 위로의 글. 맞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맞는 말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힘들 때 매일 되뇌어보세요. '저는 행복합니다 살아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이혼 안 해보셨으니 이리 편히 얘기하시는 건가?'
목숨을 버릴 정도로 아픈 그 가슴에 '행복하다고 되뇌라'는 말을 해주는 게 무슨 소용일까. 바다에 빠져 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발버둥치고 있는데, 저기 멀리에 서서 바다에 빠진 사람을 향해 "이럴 때 마음을 진정하고 바다에 네 몸을 맡겨. 자연스럽게 몸이 둥둥 뜨게 된다. 그럼 넌 살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무미건조하고 마른 지푸라기 같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스님이 배운 대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의 위로를 한 건데 너 왜 그러니? 그렇게 '오바' 하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안다. 근데 이혼한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걸 어떡한담? 심지어 '이건 위로가 아니잖아! 이혼을 하고 스님이 되셨다면 더 깊이 있는 위로의 글이 올라왔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는데 '행복하세요. 곧 잊혀질 거예요. 이혼 별거 아니에요. 다 그렇게 살아요. 인생 뭐 있습니까? 고난의 연속이죠!'라고 말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나는 한 번도 위로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 나름대로는 나를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위로를 해줬다는 것 또한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나를 위로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나는 무심한듯 얘기하는 말에 가장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알아. 니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무심한듯 얘기하는 그분의 입술을 보고, 그동안 꾹꾹 참아온 내 모든 감정들이 터져나오면서 서럽게 운 시간들이 불현듯 다시 기억이 났다.
"아프지. 아파…. 너 지금 아파야 해. 충분히 더 아파해.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렴.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질러도 된다…."
나는 '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이렇게 울면 너무 추해 보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동안 쌓아놓은 서러움, 외로움, 원망, 억울함, 비참함, ‘실패한 결혼’이라는 타이틀에 들어가 있는 썩은 감정들을 눈물과 함께 밖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꺼냈다.
그렇게 몇 시간 처절한 눈물의 사투를 벌인 끝에 든 생각이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였다. 억눌렸던 그 모든 감정들, 괜찮은 척 도도하게 감춘 내 안의 절망의 상처들이 모두 비워지니 이제서야 살 것 같다는 말이 입으로 툭 나와버렸다. 모순 같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감정의 쓰레기통을 다 뱉어내니 이제는 새로운 감정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살다보면 이혼할 수도 있겠지요. 살다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매일 매일 연속이겠지요. 그러다보면 죽고 싶고, 살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겠지요. 죽고 싶은 나도 나, 살고 싶은 나도 나. 사랑받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실패한 결혼생활에….
우리 결혼생활에는 실패했지만, 이제 이혼생활에는 성공해보아요. 이건 생활이잖아요. 결혼생활은 실패했지만 이혼생활은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때에도 또 죽고 싶고 버거운 마음이 들면, 울고 불고 또 울고 불고 죽고 싶을 만큼 소리치고 난 후에 또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울어요.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소리치며 억울하다고, 죽고 싶다고, 내 인생 너무 거지 같다고 욕하고 소리치다보면, 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우리 울어요. 그 눈물 끝에 '이제는 좀 살겠다'라는 마음이 들면 또 한 고비 넘긴 거겠지요. - 죽고 싶을 만큼 살기 싫었던 이혼녀가"
그분이 나에게, 이혼해서 죽고싶다고 상담을 해왔다면 나는 어떤 글을 썼을지 고민해보았다. 아무래도 저렇게 쓰지 않았을까 싶다.
이혼녀의 삶은 고단하고 피곤하다. 물론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삶들 속에도 피곤하고 버거운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안다. 며칠 전 혼자 애를 키우는 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어서 말을 안 듣는다고, 이혼한 아빠에게 가버리라고 소리쳤다는 거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언니들은, 아무리 화가 나도 애한테 그렇게 상처 되는 말을 할 수가 있냐며, 너무 생각이 짧은 거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그 언니들의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이해하는데. 그 한마디 말이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고, 말을 한 순간부터 그 언니도 후회했을 테지만,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뱉어낸 그 말이 나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으니 제발 살게 해달라'는 말로 들리는데. 언니들은 몰라. 남편이 있는 언니들은. 우리는 정신적인 책임감을 매일 매일 언니들보다 두 배로 쓰고 있어서 지쳐서 그렇지. 방전되었으니까."
나의 말에,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언니들은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는 이혼했습니다. 이혼 전의 삶도 힘들었는데, 이혼 후의 삶이 더 힘든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혼했다는 것을,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는 것을, 그런데 가끔씩 웃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우리 같이 살아내보아요. 그냥 하루 하루 무심한듯 담담하게, 그러다보면 또 살아내잖아요.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이혼녀, 이혼남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요.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을 유지하지 않고 이혼을 선택했던 그 용기. 세상의 모든 시선들과 삶의 걱정들까지 다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그 용기. 그 용기로 우리는 다시 열심히 살아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용기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대한민국에서 이혼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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