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무명 연극배우 “아무리 생각해도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11년 차 무명 연극배우 “아무리 생각해도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 최대성 기자
  • 승인 2022.03.1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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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빠살이] 마흔둘 아빠의 연극배우 분투기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11년 차 연극배우 권일훈 씨. 배우답게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11년 차 연극배우 권일훈 씨. 배우답게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올려다 본 그의 얼굴은 거칠었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수염이 수컷 냄새를 더했다. 하지만 마주 앉은 자리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순식간에 순박한 이웃집 삼촌으로 분했다. 천의 얼굴을 타고나야 비로소 배우가 될 수 있음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빛이 깨끗했다. 깊게 팬 눈가 주름과 맑은 눈동자가 대비됐다. 지난 10여 년간 연극에 올인한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비칠 만큼 깨끗했다. ‘40대 아빠살이’ 14번째 주인공은 가족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기로 결단한 마흔둘 아빠 권일훈 배우의 이야기다.

◇ “이것만큼은 포기하기 싫었다”

객석의 웃음과 울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배우가 내뱉는 대사 한 마디와 사소한 몸짓에  대한 반응이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무대 뒤 한 켠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무대에 오른 그는 흩어지는 호흡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대사를 힘차게 외쳤다. 

“첫 대사요? ‘오 보름달!’이었어요. 절대 잊지 못해요. 연기학원 졸업 워크숍이었는데 처음으로 올리는 무대였거든요. 정말 긴장이 되더라고요.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어요.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때 그 떨림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게 제가 지금까지 연기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단역이었지만, 첫 무대는 강렬했다. 그는 그 느낌을 한마디로 ‘떨림’이라 표현했다. 첫사랑처럼 짜릿했던 무대가 끝난 뒤 그는 깨달았다. 이걸 평생 할 수 있겠다고. 

“어릴 땐 꿈이 없었어요.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죠. 공부머리가 없어서 삼수를 했어요. 부산외대 경영학부를 다니게 됐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내 길이 아니더라고요. 결국 2학년이 되던 해에 자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몇 년 했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흐지부지됐습니다. 공부가 힘들고 어려웠어요. 그때쯤이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과 공무원 시험 모두 부모님의 의지였다고 털어놨다. 어느새 맞이한 20대 중반.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마주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교과서를 읽었던 기억이 났어요. 보통은 그냥 국어책 읽듯이 건조하게 읽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소심해서 실제로 하진 않고 생각만 했지만요. 그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배우는 스스로 정한 길이었다. 고민 끝에 부모님께도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니 믿어달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곧바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절대로 포기하기 싫었던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거니까.   

“학원에서 1년 공부하고 다음 해에 부산예대 연극과에 합격했어요. 07학번이었는데, 학년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어요. 면접 볼 때 교수님이 나이가 많은데 왜 왔느냐고 묻더라고요. 연극이 너무 좋아서 왔다고 답했더니 많이 좋아하셨어요. 하하하”

그는 늦은 나이에 배우를 시작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연극 곁에 머문 동기는 그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는다.

배우 권일훈 씨 프로필.  ⓒ권일훈
배우 권일훈 씨 프로필. ⓒ권일훈

◇ “나는 똥배우였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당연했다. 학교 소극장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쌓였다. 졸업 후 부푼 마음을 안고 극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게 착각임을 깨달았다. 

“처음 극단 가서 연기를 배울 때 ‘다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 전달도 안되고 딕션도 안되니까 너무 어려웠어요. 학교에서 배운 건 그냥 ‘0’이더라고요. 연기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낀 거죠. 맞아요, '똥배우'였어요. 학교에서 배울 때는 말이 안 돼도 감정적으로는 앞서나가니까 힘으로 밀어붙였어요. 그래선 안됐는데... 그땐 나름대로 학교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잘못 배운 거죠. 어느 날 극단 대표님이 ‘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배워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많이 혼났어요.”

그는 다시 시작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담금질을 계속했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서른이 됐을 무렵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어린 마음에 스타가 되고 싶었다. 어차피 하는 거 얼굴도 좀 알리고 돈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상업적인 드라마, 영화 쪽 무대를 두드렸다. 하지만 초년 배우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다 잘 될 줄 알았어요. 드라마 찍고 영화를 찍을 줄 알았죠. 자신감이 여기까지 넘쳤거든요. 하하. 그런데 쉽지 않았어요. 몇 달 동안 프로필 돌리고 오디션도 봤는데 죄다 떨어졌어요. 이래선 안될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연극 무대에서 공부를 좀 더 하기로 했습니다.”

한 번 더 담금질을 하기로 결심한 그는 극단 '연미' 사람들과 창작극 ‘심생’ 무대를 꾸몄다. 그는 대학로 청운예술극장서 올린 이 연극을 데뷔 무대라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자신감을 되찾은 무대였기 때문이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 ‘김영춘’을 연기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연기했는데 연출이 가만 놔두더라고요. 하하. 디렉션도 별로 없었어요. 얻은 게 많았던 무대였죠. 잃었던 자신감도 되찾았고 무엇보다 배우의 길을 함께 걸어갈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아빠 권일훈 씨는 아이들에게 물질적으로 많이 해주지 못하는 대신 몸으로 더 많이 놀아준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빠 권일훈 씨는 아이들에게 물질적으로 많이 해주지 못하는 대신 몸으로 더 많이 놀아준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올인”

연극에 진심인 그는 ‘올인’했다고 표현했다. 절절한 마음으로 잠자는 시간까지도 줄여가며 꿈을 이루기 위해 베팅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이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포기해야 할 일들이 생겨났다.  

“경제적인 부분이죠. 연극배우는 월급제가 아니에요. 극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건 바이 건으로 무대 페이를 받아요. 연극을 올리려면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해야 했기에, 보통 사람들처럼 많은 시간을 내어 직장에 다닐 수도 없어요. 사실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돈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가 극단 ‘까망’에 있을 때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연극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연극’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 둘은 사랑했다. 그당시 아내가 서울예대 연극 영화과에 합격해 작가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지만 학교를 한 달 정도 다녔을 무렵, 덜컥 아이가 들어서고 말았다. 

“임신 소식을 듣고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죠. 아내는 결국 자퇴했어요. 저는 그게 지금도 미안해요. 나중에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면 사실 학교 다니기 싫었다고 말하긴 하지만 믿진 않아요. 저라도 너무 아깝고 아쉬운 기회였으니까요.”

그는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할 각오로 장인 장모를 만났다. 크게 반대하실 줄 알았지만 다행히 결혼을 허락받았다. 당장 돈이 필요했다. 좋아서 시작한 연극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다. 그렇게 부부는 작은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태중에 아이를 안고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던 터라 가정을 지켜야 할 책임감 또한 커졌다. 하지만 그는 연극을 포기할 순 없었다. 택배, 우유배달, 말똥 치우기 등등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를 살아냈다. 혼수와 돌반지도 팔아 생활비에 보탰다. 그의 표현대로 버텨냈다. 그렇게 경제적인 안정을 포기했다. 모든 게 연극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놓친 게 있었다. 

“어머니가 자궁암에 걸리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서울에서 연극 무대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어요. 수술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지만, 저는 공연 연습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내려가지 않았어요. 연습을 하는 도중에는 절대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는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연극 일정이 있으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나름대로의 책임감이죠. 지금 생각하면 참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어머니 수술 당일에도 무대를 지켰다. 그때는 꿈을 위한 선택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극배우로서 무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당시 그가 내린 최선의 결단은 수술을 마친 어머니를 만난 이후 후회로 바뀌었다.

“나중에... 어머니 뵙고 나오는데 눈물이 났어요. 내가 참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들 노릇을 잘 못했잖아요. 만약 내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면 엄마 옆에도 있어주고 그랬을 텐데... 큰 불효를 했어요. 그래도 연극은 포기할 수 없었어요.”  

배우 권일훈 씨(가운데)가 연극 나무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서 아저씨를 연기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배우 권일훈 씨(가운데)가 연극 나무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서 아저씨를 연기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그가 아동극을 대하는 자세“ 

‘아리’는 그가 몸담은 세 번째 극단이다. ‘까망’ 극장이 없어지면서 새로운 무대를 찾던 차에 극단 아리 대표(최원)가 손을 내밀었다. ‘아리’는 아동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이다. 그는 당시만 해도 아동극은 배우들에게 돈벌이 수단쯤으로 치부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리'를 선택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돈벌이를 위해 갔어요. 사실 아동극을 하는 다른 극단들 중에는 공연 3일 전에 대충 연습해서 무대에 오르기도 하거든요. 연기에 진심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아리'는 체계적이었어요. 배우들이 나중에 다른 영역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잘 짜여있었어요. 저는 이곳에 있는 동안 정말 많이 배웠어요. 덕분에 연기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아동극을 무시하는 경향을 꼬집었다. 조그마한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일은 성인 무대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기에 더 많이 집중하고 신경 써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 표현해요. 못한다 싶으면 바로 눈을 돌려버리죠. 물론 잘하는 경우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봅니다. 예전에 슬픈 연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우는 연기를 건성으로 했었는데 객석의 아이들 중 한 명이 ‘에이 가짜로 운다! 가짜로 운다!’ 하더라고요. 얼굴이 벌게졌어요. 그때 제대로 느꼈어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제대로 해야겠구나’라고요.“

그 사건(?) 이후 그는 무대에서 진심으로 웃고 울었다. 전력을 다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그의 연기에 폭 빠졌다. 심지어 아이들 손에 이끌려 온 부모들까지.

”연극이 끝나고 무대 정리를 할 때, 아이들이 몰려와서 ‘삼촌, 또 보고 싶어요. 또 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럴 때면 ‘아이들이 연극을 잘 봤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어떨 때는 부모님들이 연극을 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시기도 해요. 특히, 저희가 하는 ‘나무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라는 연극을 보고 많이 우시더라고요. 아마도 어린 꼬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는 나무 이야기에, 힘들지만 행복하게 아이를 키우는 자신의 모습이 엿보여서 그런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저는 관객들의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 “다른 일을 알아봐야 되지 않을까?”

수년간 지속된 코로나 시대에 공연계는 아사 직전이다. 극장 자체가 코로나에 취약한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습조차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당연히 수입이 급감했다. 

“지금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공연 횟수가 80% 정도 줄어든 것 같아요. 최근에 방역 패스도 중단됐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다른 소소한 일들로 버티고 있지만, 줄어든 수입 때문에 생계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였을까. 최근 그의 아내도 ’돈‘에 대한 걱정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평소에 아내는 심각한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하루는 돈 이야기를 하며 묻더라고요. 다른 일을 알아봐야 되지 않냐고요. 사실 해마다 가끔씩 듣는 말이었어요. 그때마다 ’아 됐어‘라고 장난스레 넘겼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정말 앞만 보고 일했는데 요즘에는 너무 일이 없다 보니 주변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 ’다른 일‘을 고민했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안정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마땅한 직업이 떠오르지 않았다. 10년 동안 연극 무대를 지켰기에 더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범위를 넓히기로 했어요. 연극은 연극 무대로 국한되어 있잖아요. 이제 연극만 하지 않고 연기도 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에도 도전을 해볼 생각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 연기를 선보이고 싶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드라마 보조출연도 나간다. 지난 10여 년간 차라리 대리운전을 나가더라도 보조출연 일은 배우로서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지만, 이제는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았다. 사실 그가 이런 마음을 굳힌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제가 힘들어 보였었나 봐요. 아내가 힘내라는 의미로 한 방송에 사연 신청을 했고 거기서 아내의 영상편지를 보게 됐는데, 연극을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더라고요. 아내는 제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연극에 대한 제 고집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꺼낼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싶었어요. 맞아요, 11년 된 고집이죠. 그래서 이번엔 고집 꺾고 현실과 타협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요.”

연극배우 11년 차 권일훈 씨 가족.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연극배우 11년 차 권일훈 씨 가족.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아내가 없으면 저도 없어요”

그는 배우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아내의 배려와 희생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의 자리 역시 아내 덕분에 지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돌아보면 아내 덕분에 배우의 꿈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영상편지를 보낸 아내다. 미안해하는 아내를 위한 답가를 부탁했다. 

“항상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많이 힘들겠지만, 좀 더 버텨보자.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고 내 와이프가 되어줘서 고맙다. 사랑해.”

“... 고맙다는 말 밖엔 생각이 안 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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