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생활공간, 부모들이 직접 청소해요
아이들의 생활공간, 부모들이 직접 청소해요
  • 기고 = 김기정
  • 승인 2013.02.04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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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직접 가꾸고 청소하는 성미산어린이집

[성미산마을-베이비뉴스 공동기획] 왜 공동육아가 대안인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 그대로 서울 도심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돼 아이를 키우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마을이다. 최근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성미산마을이 펼치고 있는 공동육아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베이비뉴스는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육아 기획기사를 진행한다. 성미산마을 주민들이 번갈아가며 한 달에 한 번씩 공동육아를 소개하는 기고를 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성미산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부모들이 직접 가꾸고 청소하는 성미산어린이집. ⓒ성미산어린이집
부모들이 직접 가꾸고 청소하는 성미산어린이집. ⓒ성미산어린이집

 

"이번 주 금요일 우리 당번이야. 알고 있지?"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알았어, 시간 맞춰 퇴근해볼게."

 

위 대화를 주고받은 며칠 뒤 금요일 낮, ‘띠리링~’ 문자 한통이 아마(아빠엄마)들의 휴대폰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연우, 주빈, 세환, 도연 모둠청소입니다. 신나는 청소 즐거운 뒤풀이 하세요~."

 

저녁 7시를 전후로 서너 가구의 아마들이 도착하는데 오늘은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양말을 벗고, 양복바지를 걷어 올린 후, 빗자루와 청소기, 걸레를 들어요. 터전 청소를 하는 날이지요.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저녁은, 엄마아빠들이 직접, 우리 아이들의 생활터전을 청소하는 모둠청소의 날입니다. 서너 가구가 함께 모둠을 만들어 청소도 하고 뒤풀이도 해서 모둠청소입니다.

 

부엌은 주로 엄마들이 맡습니다. 때로 엄마들보다 부엌청소를 더 잘하는 아빠들도 등장하지만, 그래도 아빠들한테 맡기진 않습니다. 잘하긴 하지만 끝나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에요. 대신 아빠들은 좀 더 힘든 일을 맡습니다. 등하원 때 오고가는 현관청소,  일이층을 이어주는 계단청소, 아이들의 생활에 너무도 중요하고 친숙한 장소인 화장실 청소 등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화장실 청소인데요.

 

성미산어린이집에는 예로부터(?) 구전돼 내려오는 청소매뉴얼이 있습니다. 조목조목 알뜰살뜰 짜여 있고, 이런 데까지 청소해야해, 싶은 내용도 있지요. 때로 건너뛰고 가끔 요령을 피우더라도,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항목이 있는데, 바로 화장실의 남자아이들 소변기 청소입니다.

 

음…. 그 남자소변기의 부분 명칭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네요. 소변이 내려가는 곳을 막고 있는 도기로 된 것을 들어 올려 그 안쪽까지 수세미로 박박 닦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암모니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선배아마들이 신입아마들에게 청소매뉴얼을 알려줄 때 힘주어 강조하는 항목이지요.

 

그곳까지 청소해야한다는 걸 처음 전해들은 아마들은 하나같이, 일순간 소위 ‘멘붕’의 표정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한마디씩 꼭 보태요~. "나이 사십 먹고 살면서, 이걸 닦아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그래도 어쩌겠나요?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청소인지라, 다들 열심히 합니다.

 

특히나 아빠들은 집에서도 이렇게 청소를 안 해보다가, 한두 달에 한번 터전을 쓸고 닦다보면 뭉클 하기도 하신가 봐요. 내 아이가, 우리 아이들이, 여기에서 뛰고, 저곳에서 낮잠을 자는구나. 이 삶의 ‘터전’을 내가 가꿔주고 있구나 싶은 거죠. 덕분에, 각 가정보다 훨씬 깨끗한 곳이 터전입니다.

 

빠르면 한 시간, 늦으면 한 시간 반에 걸쳐, 터전 1, 2층을 쓸고 닦고 나면, 그동안 "배고파~" '밥상엔 언제가?" "시원이~ OO가 나 놀렸어" 하며 잘(?) 기다려준 아이들 손을 잡고, 모두들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졸업한 선배조합원인 김 요리사가 친환경재료로 정직하게 요리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성미산 밥상입니다. 아마들은 아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짧지만 찐하게 수다 한판과 뒤풀이가 이어집니다.

 

공동육아로 유명한 성미산어린이집은 부모들이 직접 어린이집을 가꾸고 청소한다. ⓒ성미산어린이집
공동육아로 유명한 성미산어린이집은 부모들이 직접 어린이집을 가꾸고 청소한다. ⓒ성미산어린이집

 

일주일에 한 번씩 서너 가구에게 당번이 돌아가는 모둠청소가 이렇게 이어지고요. 3개월에 한번은 터전에 아이들을 보내는 전체 조합원들이 모두 한날 한시에 품을 내야하는 대청소가 있습니다. 매일 청소를 하고, 금요일엔 모둠청소를 하는 것도 모자라, 대청소까지 날을 잡아 1년에 네 번을 하다니, 글을 쓰며 지금 생각해봐도, 무에 그리 열심일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매일 청소를 해도 대청소 날은 새삼스러우리만치 할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청소 매뉴얼은 좀 더 촘촘하고 두껍지요.

 

대개 오전부터 시작되는데, 각기 사정으로 조금 늦는 아마들은 미안함에 멋쩍어하며 터전을 들어서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충분하니, 미안해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도 타박하진 않습니다. 대청소날은 이름에 걸맞게 좀 더 큰일들을 벌입니다. 계절에 맞는 새단장을 하곤 하는데요. 봄이 되면 겨울 묵은 먼지를 걷어내는 일, 여름이 되면, 방충망을 다 걷어내어 거품 내어 닦아주고요. 가을이 되면 선풍기에 커버를 씌우는 일을 꼭 해야 하고, 가끔은 마당 모래놀이터의 모래를 싹 갈아엎어야 하거나, 심지어는 땅을 파헤쳐 하수구 공사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하는 일도 생기지요. 이럴 때는, 집에서 등을 마룻바닥에 대고만 있던 아빠들이, 언제 그랬나 싶게 몸을 쓰시기에 달리 보이지요. 물론, 대청소 끝나고 막걸리 한잔 할 때는 모르지만, 집에 와서는 2박 3일을 앓아눕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품을 내는 일이 대청소만 있느냐? 그렇다면 서운하지요. 얼마 전 12월 초에는, 온 식구들이 모여 김장을 150포기 했습니다. 그전 11월 에는, 주말 하루 모여 축구대회도 했었지요, 아마. 10월에는 1박 2일 모꼬지도 다녀왔고요.

 

이래서, '공동육아! 아이는 신나고 아마는 힘들다!'라는 얘길 종종 하게 됩니다. 회사동료, 친구들에게 가끔 어린이집의 얘길 들려주면, 힘들어 어찌 하느냐는 얘길 하지요. 힘들어요.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요. 졸업할 때 가장 후련한 게 '청소 안 해도 되는 거!"라고들 하거든요.

 

이런 청소를 저는 올해로 8년째 해오고 있어요. 어린이집을 8년째 다니고 있거든요. 내년이면 5학년이 되는 큰아이, 아토피 때문에 고생이 심해, 먹거리를 골라 먹일 수 있는 곳을 찾아, 강남구에서 마포구로 이사를 감행하며 공동육아와 인연을 시작했지요. 아이의 아토피라는 것이 겪은 가정들은 모두 알고계시겠지만, 아이 하나의 고생이 아닙니다. 온가족의 고생이 뒤따르지요. 그로인해 저와 남편의 생활도 힘들어져, 아이는 하나만 키워야겠다고 생각을 굳히고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공동육아 생활 시작한지 2개월 만에 계획도 않은 둘째가, 그 2년 뒤에 또 셋째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났지만, 서울에 연고도 없고, 어울리기를 나서서 하지 않는 저희 부부의 성격 탓에, 서울이라는 큰 도시 안에 외로운 섬 같은 느낌이었지요.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공동육아를 시작했지만, 그런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저녁, 딩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어린이집 아빠 한분이 신문지에 싼 흙이 묻은 채소를 한 아름 들고 서계셨어요. 텃밭에 다녀오는 길이고, 생각이 나서, 나눠주러 들르셨다고요.

 

8년 전 어느 초여름의 일이지만, 저는 그 일이 가끔 생각나네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이곳은 아이를 키울만한 마을이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곳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계획 없이 찾아온, 둘째, 셋째 때문에 8년째 성미산어린이집과 연을 이어가고 있네요.

 

다섯 살 막내가, 2년만 더 다니면 완전히 졸업인데, 이제 청소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벌써 서운해지곤 합니다. 청소 안하게 되는 게 서운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 이 이웃들과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겠지요? 넷째를 낳아서 어린이집 좀 더 다니는 게 어떻겠냐는 어린이집 아마들의 얘길 들으면, 그래서, 가끔 진지하게 생각해보곤 하나 봐요.

 

글쓴이 = 시원(김기정, 병준·연우·희우 엄마) / 성미산어린이집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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