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묵직한 느낌이 이런 것일까요. 제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그저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임신 6주쯤, 병원 초음파 검사실에서 처음으로 뱃속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습니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그 소리는 엄청 크고 우렁찼지요. 마치 어른의 것처럼.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존재감이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몸을 뒤집고 기어가고 걸어가고 뛰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 키우는 맛이 신기하고 재미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보며 이런 마음이셨을까. 아니면 아이 키우는 일에 바빠서 미처 그 재미조차 못 느끼셨을까. 어찌 됐든 우리 부부는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힘든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너무 즐겁고 ‘아이 때문에 웃는다’라는 느낌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새삼 힘이 들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입니다.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는 작년 3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졌습니다. 좋든 싫든, 아프든 안아프든, 해가 쨍쨍 찌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항상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 어린이집에 출근하듯 들어가야 하는 아이가 너무나 잘 적응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조금씩 아침밥을 안 먹기 시작하더니 변을 보는 횟수도 줄어들고 웃음과 애교보다는 짜증과 울음으로 범벅이 되는 하루하루가 계속됐습니다.
아이에게 사랑과 행복만 주고 싶었는데….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아빠엄마에게 기쁨과 감사함을 준 것처럼, 유복한 집안의 아이처럼 모든 걸 다해줄 수는 없지만 줄 수 있는 건 노력을 다 해주고 싶고 웃음만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택한 최선의 선택이라 말하지만, 왠지 주양육자를 엄마나 아빠가 아닌 다른 낯선 곳의 어떤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죄스럽고 미안했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과 추억과 안정감을 결국 돈과 맞바꾼 것이지요.
어쩌면 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갖고 있는 고민인 줄 압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직장에도 시간을 내주고 아이에게도 시간을 내주어야 하는 고질적인 아이러니, 직장에 나가 잘릴까봐 걱정, 직장을 옮길 때 월급이 늦어질까봐 걱정, 계속 쭉 일해야 하는데 사업이나 다른 것을 슬슬 준비해야 하는 불안정함….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일도 하고 살림도 해야 하는 처지를 투정부릴 시간조차 제겐 없습니다. 아니, 시간이 없어 투정을 못부리는 게 아니라 전 제가 힘들더라도 가족만큼은 행복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게 제 진심이지요. 가족들이 아프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건강하고 해맑게 웃으며 지내준다면 난 맨몸으로 나가서 싸울 각오가 돼 있으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하면 내가 잘 못 보살펴줘서 그런가, 하고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지요.
죄책감 이야기가 나와서 그렇지만, 이젠 저도 죄책감에만 시달릴 게 아니라, 마음의 계획 생각의 계획을 세워서 당당하게 나아가려 합니다. 밥을 안 먹고 어린이집에 안 가려고 투정 부리는 아이를 꾸짖고 또다시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밥을 맛있고 기분좋게 먹을 수 있을까 하며 레시피를 찾아보고 노력하는 지혜롭고 당찬 엄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이 아빠의 월급이 적다고 불평하고 남들과 비교해 남편의 기를 죽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가 좀더 노력해서 다른 부수입을 끌어올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찾는 자랑스러운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더 이상 2010년을 돌아보며 마음 아파하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제 자신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이제 새해도 밝았고 저는 또 다시 달려갈 겁니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묵직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같이 있어주는 시간이 부족하고 이런저런 걱정에 속이 타들어가 늘 시간과 희망이 갈급합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보람차고 마음 아프고 웃고 싶고 울고 싶고 여러 감정들로 뒤죽박죽 혼란스럽지만, 엄마라서 기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시간과 희망도 제 편이 되어 주겠지요.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들, 그리고 처음 말하지만, 사랑해요. ‘엄마’라는 이름을….
*베이비뉴스는 2011년 새해를 맞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새해 소망을 들어보는 특집원고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여러분들의 새해 소망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뛰겠습니다. 특집원고로 실리면 원고료를 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의: 02-3443-3346
우리는 오늘도 힘을 내지요.
엄마라는 묵직함에서 조금은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