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필리핀 신부의 특별한 결혼식
박미첼-박흥교 부부, 결혼 4년 만에 전통혼례식 치러


21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서울놀이마당에 전통혼례 순서를 알리는 홀기(笏記)가 울려 퍼졌다. 신랑이 신부의 방에 기러기를 놓고 나와 대례상 앞에 설 때까지 좀처럼 신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신랑과 표주박에 술을 나눠 마시는 순서가 돼서야 신부는 한삼으로 가렸던 얼굴을 드러냈다. 활옷에 족두리, 곤지로 몸을 단장한 신부의 눈이 유난히 컸다. 신부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박미첼(33) 씨로, 한국인 남편 박흥교(47) 씨와 결혼 4년 만에 신부 단장을 했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살고 있던 두 사람은 부부의 날을 맞아 서울특별시새마을부녀회가 마련한 ‘다문화 어울림 한마당’을 통해 공식 부부 선언의 기회를 얻었다. 이날 치러진 다문화 어울림 한마당에서는 전통혼례뿐 아니라 결혼이주여성 전통요리 경연대회,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져 시종일관 성대한 잔치 분위기가 이어졌다.
박 씨 부부의 전통혼례식은 서울특별시새마을부녀회와 성균관파티움의 도움으로 성사됐다. 박 씨 부부의 사연을 듣고 안타깝게 여긴 서울특별시새마을부녀회가 다문화 어울림 한마당의 한 순서로 전통혼례식을 기획했다. 전통혼례식을 치르는 데 필요한 의복, 상차림, 전문 주례 등 모든 사항은 성균관파티움이 지원했다.
박 씨 부부는 낯선 옷차림과 신발 때문에 어색한 걸음을 겨우 떼고 교배(交拜)와 합근(合?)을 마쳤다. 약식으로 치러지는 전통혼례의 주 순서인 교배는 대례상 앞에서 서로 맞절을 올리는 것, 합근은 표주박에 술을 나눠 마시는 것을 뜻한다. 난생처음으로 전통혼례를 구경하는 100여 명의 결혼이민여성들은 호기심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신랑신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박 씨 부부 아들인 가람(3) 군과 박미첼 씨의 친정어머니, 친인척들도 함께했다.
주례를 맡은 이는 “전통혼례에서 표주박은 천지음양의 이치와 혼을 뜻하는 것으로 남녀가 하늘에 한 몸으로 있다가 땅으로 내려와 가정을 이뤄 다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이 표주박처럼 마음을 함께하고 정성과 공경, 정직을 다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가정 만들기를 바란다”며 박 씨 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서울특별시새마을부녀회 최광자 회장은 “110만 명 다문화가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지금, 부부의 날을 맞아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것은 다문화가족과 한국 사회와의 상징적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풍습과 문화가 다른 만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바란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박미첼 씨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된 지금도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문화를 익히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남편과 가족 덕분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 그동안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전통혼례를 치르게 돼 기분이 좋다. 오늘 정말 행복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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