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식 스냅전문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결혼식 사진은 꼭 찍어야만 하는 장면이 있다. 마치 공식 같다. 우리나라 결혼식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연출되는 결혼식 장면에 한계가 있다.”
붕어빵처럼 똑같은 결혼식 풍경을 거부한 한 커플이 잔디밭 위에 텐트와 그늘막을 치고, 캠퍼들을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다. 주인공은 바로 9년 동안 캠핑을 즐겨온 황기문(39), 허진(35) 부부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식은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한 채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은 현재 중학교 2학년.
두 사람은 신혼 때부터 함께 캠핑을 즐겨 다녔다. 지난해 봄 떠났던 캠핑에서 대화를 하던 중 “우리 캠핑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어떨까?”라는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는데, 1년 만에 정말로 캠핑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5월 5일 아내의 생일로 결혼식 날짜를 잡고, 자주 가던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의 한 캠핑장을 결혼식장으로 결정했다. 평소 캠핑 블로그를 운영하며 온오프라인으로 교류했던 많은 캠퍼들을 결혼식 하객으로 초대했다. 당초 결혼식장에는 하객들을 위해 텐트 60동을 설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는데, 두 사람의 결혼식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전해들은 사람들이 결혼식장에 몰려 결혼식 당일 120동 이상의 텐트가 설치됐다.
캠핑장 한쪽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주례단을 세우고, 붉은 카펫을 까니 결혼식장이 완성됐다. 하객들은 각자 가져온 캠핑용 의자에 앉았다. 결혼식은 하객들의 뜨거운 환호성 속에 검은 턱시도와 미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랑 신부가 입장하면서 시작됐다.
결혼식은 주례 없이 진행됐다. 두 사람이 결혼 선언문을 낭독하고, 예물을 주고받는 순서로 진행됐다. 동료 캠퍼들은 익살스러운 축하 공연을 펼쳤고, 신랑 신부는 골프 카트에 깡통을 매달아 만든 웨딩카를 타고 캠핑장 안을 돌며 카퍼레이드를 했다. 결혼식 후에는 통돼지 바베큐와 맥주가 곁들여진 피로연이 펼쳐졌다. 바로 국내 최초 캠핑장 결혼식의 풍경이다.
이렇게 열린 두 사람 결혼식 총비용은 300만 원 남짓. 아내 허 씨는 “피로연 음식비용 정도만 들었다. 웨딩플래너를 하는 캠퍼분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빌려주셨고, 화장품을 판매하는 캠퍼분이 결혼식 날 메이크업을 맡아주셨다. 이 외에도 결혼 피로연 음식이나 음향장비, 답례품 등 모두 다른 캠퍼분들이 소개해주시거나 협찬해 주셔서 알뜰한 비용으로 매우 멋진 캠핑 결혼식을 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 황 씨는 “평소 틀에 박힌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우연히 건넨 우스갯소리였지만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딱 맞는 결혼식이었다”고 말했다.
낯선 캠핑장 결혼식에 대해 주변의 걱정이 없진 않았다. 황 씨는 “캠핑장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부모님도 걱정하셨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을 보시고는 굉장히 흡족해하셨다. 무엇보다 하객 규모와 전문 취재진 같았던 캠퍼들의 카메라 세례에 놀라셨다. 400~500명 정도 온 것 같다. 결혼식에 온 하객 절반 정도는 모르는 분이었던 것 같다. 그저 결혼식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기 위해 오신 캠퍼들이었다. 모두가 신이 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 결혼식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요즘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다. 결혼식 후 2박 3일 부산 백패킹을 다녀왔고, 이달 중에는 전주와 강릉, 7월에는 대전과 청주, 8월에는 대구로 캠핑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신혼여행 예산은 1박 2일 기준 10만 원 미만으로 알뜰하게 잡고 있다. 황 씨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경비가 차이가 나지만 일단 숙박비가 안 들어서 비용이 적게 든다. (웃음) 부산에서의 신혼여행 첫날밤은 포장마차 옆 잔디밭이었다. 남들처럼 편안한 허니문은 아니지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캠핑 허니문이라 평생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씨는 “나는 집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자는 주의다. 아내가 힘들면 가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평생 아내를 돌보면서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허 씨도 “변하지 않게 살고 싶다. 아이도 크니 이제 단둘이 캠핑하러 다닐 때가 많다. 결혼식은 이제 했지만 결혼생활이 10년이 넘었는데도 남편이 워낙 내게 잘해서 갓 결혼한 신혼부부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고, 때로는 살기 위해 억세지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풋풋하게 평생 신혼부부처럼 알콩달콩 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