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나의 임신 그리고 아기와의 약속
기다리던 나의 임신 그리고 아기와의 약속
  • 정리 = 정은혜 기자
  • 승인 2013.08.1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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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 수기공모전 동상 구소라 씨 작품

[연재] 나의 모유수유 성공기 공모전 수상작  

 

국내 유일의 임신출산육아 전문방송 육아방송(회장 신경식)과 국내 최초 육아신문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는 세계모유수유주간(8월 1~7일)을 기념해 최근 ‘나의 모유수유 성공기’ 모유수유 체험 수기공모전(http://mother.ibabynews.com)을 진행했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올라왔다. 그중 공정한 심사를 거쳐 당선된 우수작품 12편을 차례차례 공개한다.

 

20개월 난임으로 고생하다 드디어 만나게 된 나의 첫아기 ‘동화’. 뱃속에 동화를 품고 있던 10달 내내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모유수유다. 그건 바로 내가 엄마의 젖 한번 빨아보지 못하고 분유와 우유로만 자라서 일거다. 난 어릴 때 잦은 감기를 기본으로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다. 그때마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모유가 아닌 분유와 우유를 먹고 자라서 그런 거다”라는 이야기를 하셨고 할머니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우리엄마는 약간 멋쩍어하셨다. 난 모유수유, 분유수유를 운운하며 엄마에게 눈치를 주시던 할머니가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을 뿐, 그게 뭐 대수랴 싶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임신을 하고 뱃속에 사랑스러운 우리아기 동화를 품고 나니 나도 모르게 ‘우리아기는 잔병치레하지 않으려면 분유가 아닌 모유를 먹여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모유수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난 이다음에 커서 아기가 아프지 않게 하려면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난 뱃속의 아기에게 약속했다. 엄마는 꼭 모유를 먹여주겠노라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할 수 있도록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약속과 함께 임신기간 내내 예비맘교실을 두루 다니며 난 모유수유에 대해 공부했다. "모유수유는 엄마들이 다 하고 싶어하는 것임이 분명하지만, 성공하는 엄마들이 많지 않으니 미리미리 공부하고 연습해두는 것이 좋으며 또 잘 안 된다고 해서 쉽사리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틈나는 대로 인형을 아기 삼아 수유연습도 직접 하며 남편과 함께 행복한 임신기간을 보냈다.

 

◇ 아기와의 만남. 그 행복한 전쟁의 시작

 

결혼해서 임신이 되기까지도 그리 애를 태우더니 우리 동화는 예정일을 1주일이나 지나 41주 만에 3.84kg이라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 자그마한 아기가 입 벌리고 하품하는 모습하며 손가락, 발가락 움직이는 모습들 하나하나까지 모두 너무 신기하고 소중하기만 했다. 내가 이 아기를 위해 할 수 없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모성애는 극에 달했고 난 아기를 위해 뭐든 하고 싶었다. 다 해주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아기를 위한 거라면.

 

병원에서의 첫날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날 새벽 간호사실의 호출을 받았다. 수유실로 와서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겠냐는 전화였는데 잠결에 받은 전화이기는 했지만 얼마나 떨리고 설레던지. 수유실에서 아기를 기다리니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 동화를 데리고 오셨다. 동화를 품에 안고 가슴으로 당겨 안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작고 귀여운 눈은 아직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오물오물 엄마 쭈쭈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 나도 이제 엄마구나’싶으면서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아기에게 쭈쭈를 물렸다.

 

그런데 결과는 대실패였다. 동화는 배가 고파 울면서도 쭈쭈를 물지 않았다. 물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물었지만 빨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뭐가 문제지? 난 배운 대로 했고 아기만 잘 빨면 되는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모유수유라는게 정말 쉽지 않은 거구나 싶으면서 미안함으로 가득차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리모자 첫 모유수유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첫 번째 고비, 턱없이 부족한 나의 젖량

 

처음엔 누구나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니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동화도 서로에게 편안한 자세를 찾으면 모유수유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기가 배고파하면 무조건 전화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난 조리원 선생님의 호출을 받을 때마다 동화에게 젖을 물렸다. 쪽쪽 빨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면 성취감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품에 안겨 작은 눈을 감고 오물오물 쪽쪽 연신 움직여대는 동화의 입을 보는 일이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나 나의 수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동화는 모유수유 하는 동안 계속 칭얼댔고 양껏 먹지 못하는 듯했다. 신생아실로 보내진 동화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 언제나 분유병을 물고 있었다. 조리원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태어날 때 좀 크게 태어났고 다른 아기들에 비해 먹는 양이 많으니 엄마의 수유량이 빨리 늘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아기가 배가 고픈데 양껏 먹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유축을 하면 젖량이 많이 늘어난다는 말씀에 짜고, 짜고, 또 짰다. 그간 내 모유량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는데 유축을 해보니 30분 유축을 해도 나의 모유는 고작 10cc에 불과했다. 아기에게 미안함에 눈물만 나왔고 수유 후 혹은 유축 후 나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수유에 엄청난 자책을 했다. 임신기간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젖량이 많지 않다고 했던 임신관련 책자 속 문구를 떠올리며 임신기간 동안 먹었던 빵과 피자, 국수 등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왔고 조리원 동기들과는 말 한마디도 섞지 않으며 방에만 있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신랑은 심해지는 산후우울증을 고려해 나에게 모유수유 하려 애쓰지 말고 맘 편히 분유를 먹이자는 제안을 했다. 난 아기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은데, 내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슬프기만 했고 양껏 먹이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나는 틈나는 대로 동화를 안아주려 애썼고 또 젖을 물리려 노력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아기에 대한 나의 애틋함과 모성애는 점점 커지는 듯했다.

 

꾸준히 아기에게 젖을 물려 엄마와 아기가 모유수유에 적응해나가며 유축으로 양을 늘려나가면 될 거라는 선생님 말씀에 난 틈나는 대로 젖을 물렸고 산후조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수유를 계속 하다 보니 수유를 하고 나면 온몸이 아팠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까지 아기에게 수유를 해봤다.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유두 부분의 상처로 인한 고통은 너무 심했다.

 

잘못된 자세로 계속 물리고 또 물리고 하다 보니 상처가 심해졌고 딱지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유축을 하고 무심결에 젖병을 보았는데 젖병 안에 담겨있던 모유의 색을 보고 깜짝 놀랐다. 뽀얀 모유는 온데간데없고 살굿빛, 핑크빛의 모유가 담겨있었다. 깜짝 놀라서 보니 나의 유두에선 피가 계속 나고 있었고 생각보다 심해진 나의 상처에 간호사 선생님은 결국 수유와 유축을 당분간 중단하라고 하셨다.

 

◇ 미역국, 모유촉진차와 함께 젖샘이 터지다

 

결국 난 하루 반나절 정도 모유수유를 중단했다. 하지만 다른 조리원 동기들이 아기를 안고 수유실에 모여 수유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혼자 신생아실에서 젖병으로 분유를 먹고 있는 우리 동화가 너무 가여웠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엄마의 체취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조리원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수유실에서 동화를 끌어안고 젖병을 물렸다. 수유실에서 우연히 ‘모유 촉진차’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퇴근길 신랑에게 부탁해 물 대신 모유 촉진차를 사달라고 했다.

 

평소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로 유명하지만 모유촉진차가 수유량을 늘리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좋든 싫든 습관적으로 마셨다. 하루 1컵 정도의 물을 마시던 내가 하루 4~5잔의 정도 양을 습관적으로 계속 마시려 노력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기특하다. 뿐만 아니라 난 내 생일에도 미역국을 안 먹던 사람이다. 물컹하고 미끄덩한 미역의 그 느낌을 지나칠 정도로 싫어했는데 조리원 동기들 중 분유 보충 없이 100% 완모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움과 더불어 아기에 대한 미안함에 그토록 싫어하던 미역국을 계속 먹었다.

 

조리원에서는 짜여진 식단에 의해 다양한 미역국이 나오니 자연히 먹을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조리원 퇴소 후에도 난 한동안 매일매일 미역국과 함께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미역국과 모유촉진차를 꾸준히 먹은 이후 젖량은 조금씩 늘었고 출산후 2주 정도 되었을 무렵 분유 보충없이 모유로만 동화에게 수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지금도 젖량이 좀 줄어든 것 같다 싶으면 바로 미역을 찾아 물에 불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엄마의 의지는 참 대단한 것 같다고 느낀다.

 

◇ 두 번째 고비, 망가진 허리로 누워만 지낸 50일

 

침대에 누워있던 동화를 안아 올리던 조리원에서의 어느 날. 나는 허리를 삐끗해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심한 허리통증으로 인해 나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온 신랑과 부모님은 조리원 조기퇴소를 결정하셨고 결국 나는 예정보다 일찍 동화와 함께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산후 도우미 선생님이 며칠 후 집으로 오셨고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모습의 날 보시곤 제왕절개 환자인 줄 아셨다고 했다.

 

망가진 허리 때문에 바닥생활이 불가능했던 나는 동화를 산후 도우미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소파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난 걷는 것은커녕 앉고 일어서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소파 위에 누워 아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친정 엄마는 나의 손발이 되어 화장실, 주방 등 일어서서 걸어야 할 때마다 손과 허리를 잡고 함께 걸어주시며 근 2달 정도를 매일매일 한의원과 재활의학과 등 허리치료를 위해 병원을 함께 다녀주셨다.

 

산후 도우미 선생님은 아픈 허리가 생각만큼 쉽게 낫지 않을 거라며 아픈 허리로 무리하지 말고 분유수유하는 건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분유도 모유만큼이나 좋은 영양상태를 가지고 출시되니 너무 고생스럽게 수유하려 하지 말고 그냥 분유수유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하지만 모유수유에 대한 내 욕심은 아픈 허리와는 무관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고 한번 분유 맛을 알아버린 아기는 모유를 다시 먹기 힘들다는 이야기에 나는 누워서 모유를 유축하고 젖병으로 먹이는 방법을 택했다. 아픈 허리 때문에 5분 이상 앉아있기가 힘들었던 상태인지라 내가 동화에게 모유를 먹일 방법은 누워서 유축을 하고 젖병으로 먹여주는 방법뿐이었기 때문이다.

 

말랑한 엄마의 젖가슴과 익숙한 엄마의 체취를 느끼며 모유를 먹게 해주고 싶었건만 당시 나의 허리와 몸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화 젖병에 내가 유축한 젖병까지 넘쳐나는 젖병과 젖꼭지 등을 닦고 삶느라 친정엄마가 정말 많이 힘드셨을 텐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세 번째 고비, 출산의 고통보다 심했던 젖몸살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병원치료를 병행하며 나의 허리는 많이 정상화되었고 유축해서 젖병으로 모유를 먹이는 것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이렇게 젖병수유에 익숙해지는 건가 싶던 어느 날 출산의 고통보다 더하다는 젖몸살이 나에게 찾아왔다. 진심이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더했다. 39도가 넘는 고열이 하루종일 지속되었고 그와는 정반대로 나는 오한으로 너무나 추웠다. 달달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떨며 그대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급히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고 사실 그날 이후 기억은 생각나지 않는다. 몇 시간을 잤는지 유축과 수유를 어찌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내 인생 최악의 고통을 맛본 날이다.

 

양쪽가슴은 단단한 돌덩이처럼 뭉쳤고 그중 한쪽 가슴은 손을 대기가 무서울 정도로 뜨겁고 또 뜨거웠다. 책에서 본 것처럼 차가운 양배추를 올려보기도 했고 그 와중에 유축도 간간이 했던 것 같다.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어 유방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모유수유 상담실에 가서 젖몸살을 풀어주는 마사지도 받았다. 아기에게 직접 젖을 물려야 하는데 유축만 하다 보니 양이 너무 많아지고 안쪽의 모유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그대로 뭉쳐 젖몸살이 오게 된 거라며 허리 때문에 힘들긴 하겠지만 계속 아기에게 직접수유를 시도해보라 하셨다. 지금처럼 계속 유축을 해서 수유를 할 경우 언제고 젖몸살이 또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에 허리도 안 좋고 덕분에 오래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고 하니 모유수유를 아예 그만 하는 게 어떻겠냐는 가족들의 의견이 있었다.

 

친정엄마, 친정아빠, 남편과 시어머님이 50~60일 먹였으면 된 거라고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으니 이참에 단유 하고 허리를 비롯해 산후조리에 힘쓰라고 얘기해주셨다. 하지만 여태 있었던 고비 때마다 얼마나 노력해가며 이겨내 왔는데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유수유를 지속하고자 했을 때마다 찾아왔던 지난 고비들이 생각나 뜨겁게 달아오른 양쪽 가슴을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다.

 

잦은 유축이 젖량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또 젖몸살을 부른다 하니 유축을 자주 하지 않는 게 마땅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모유량으로 인해 속옷은 물론 상의가 계속해서 젖어오고 그래서 유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젖몸살이 오고 2주간 밤낮을 교대하며 친정엄마와 신랑이 손으로 유축을 해주셨다. 처음만 동화가 조금 빨아주면 그다음은 신랑와 친정엄마가 손으로 조물조물 꾹꾹. 나도 엄마도 신랑도 모두가 초보인지라 가슴도 참 많이 아프고 그래서 아프다고 비명도 지르고 했지만 그 덕분인지 그날 이후 아직까지 나에게 젖몸살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 네 번째 고비, 동화의 태열 그리고 아토피

 

젖몸살이 찾아오지 않으면서 동화가 부족하지 않게 먹을 만큼의 모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처음부터 직접 모유수유를 했더라면 동화가 먹는 양에 맞추어져 나의 모유는 생성되었을 테지만, 잦은 유축으로 인해 늘어날 대로 늘어나 버린 나의 모유량과 동화가 먹는 양을 맞추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동화가 필요로 하는 모유량과 내 모유는 점점 그 양을 맞추어갔고 스스로 앉아 직접수유도 가능할 만큼 내 허리도 좋아졌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심한 태열로 인한 아토피. 생후 보름께부터 조금씩 나타난 태열이 없어지지 않고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병원에서 아토피 판정을 받았다. 아토피 전문병원을 찾아가 상담도 하고 치료도 받고 그러길 벌써 6개월째 동화의 아토피는 현재 진행 중이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은 갑각류 즉 꽃게, 새우등에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기 쉬운데 엄마가 이런 음식들을 섭취할 경우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되기 쉬우니 모유수유 하는 동안은 엄마가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꽃게와 새우등을 먹을 수가 없다. 사실 살면서 꽃게와 새우 먹을 일이 뭐 그리 많을까 싶었는데 국이나 찌개는 물론 밑반찬 심지어 외식 메뉴(쉬림프 피자, 해산물 스파게티 등)까지 새우나 게가 들어간 음식들은 의외로 많았다.

 

지금 동화는 생후 9개월. 힘들고 어려웠던 고비를 하나둘 넘기며 지금까지 100% 완모를 해내고 있다. 중간 중간 포기할법한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잘 이겨내고 여태까지 모유수유를 해내고 있는 나 스스로 참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유니세프에선 생후 2년까지 모유수유를 권장하고 있다 하니 지금만큼의 수유량만 받쳐준다면 난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이유식과 함께 모유수유를 병행할 듯하다.

 

동화의 모유수유가 끝나고 나면 임신기간부터 여태껏 참아왔던 맥주나 와인등의 알코올도 맘껏 즐길 수 있고 먹고 싶었던 꽃게나 새우등도 맘껏 먹을 수 있는 걸까? 왠지 그때쯤엔 또 한 명의 아기가 뱃속에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지, 혹시 낳아서 기르고 있다면 또다시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며 모유수유에 매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엄마만이 안겨줄 수 있는 선물 2가지 그리고 약속

 

세상에 태어난 지 9개월밖에 안 된 동화. 앞으로 많은 것을 얻고 가지며 살아가게 될 테지만 엄마인 나만이 동화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 그중 하나가 사랑 가득한 엄마의 모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화의 동생이다. 이 두 가지는 동화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너에게 꼭 해줄게, 약속하고 또 약속했던 것들인지라 동화와 나만이 아는 일종의 약속인 셈이다. 약속은 지키는 거니까 나는 오늘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모든 엄마들이 모유수유를 하고 싶어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하지만 어려운 고비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을 이겨내 왔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내가 이런 힘든 고비들을 이기고 9개월째 완모를 하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여자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의지를 가지면 이 고비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본다.

 

모유는 세상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고 나만이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그러니 모유수유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고 울고 있는 엄마들이 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엄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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