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모유수유는 아픔이자 기쁨이었다
내게 모유수유는 아픔이자 기쁨이었다
  • 정리 = 정은혜 기자
  • 승인 2013.08.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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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 수기공모전 금상 황경주 씨 작품

[연재] 나의 모유수유 성공기 공모전 수상작    

 

국내 유일의 임신출산육아 전문방송 육아방송(회장 신경식)과 국내 최초 육아신문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는 세계모유수유주간(8월 1~7일)을 기념해 최근 ‘나의 모유수유 성공기’ 모유수유 체험 수기공모전(http://mother.ibabynews.com)을 진행했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올라왔다. 그중 공정한 심사를 거쳐 당선된 우수작품 12편을 차례차례 공개한다.

 

모유수유, 지금도 그 말을 들으면 울컥하며 눈물이 맺힙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너무나 감동스러웠던 28살 초보엄마의 모유수유.

 

저의 모유수유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출산부터 평범하지 않아 많은 마음고생을 했었지요. 결혼 2년차, 저의 나이 28살 기다렸던 아이가 생겼습니다. 워낙 건강하였고 젊은 나이의 임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한 출산을 기대하고 있었던 저는 임신 27주 양수가 터지며 갑작스럽게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처음 만난 건 출산 후 12시간이 지나 인큐베이터 안에서였습니다.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었던 1kg의 작은 아이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은 모유를 먹을 수 없지만 미숙아에게 모유, 특히 초유가 중요하니 꼭 유축을 하여 냉동상태로 보관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 있는 아이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열심히 모유를 짜서 모으는 것뿐이었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이 모유를 먹으며 쑥쑥 자랄 것을 기대하며 작은 가슴을 누르고 비비며 한 방울의 모유라도 더 짜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 가슴은 돌덩이처럼 딱딱해지더니 어마어마한 통증을 몰려왔습니다. 산통보다 더한 통증이 밀려오는데 가슴을 스치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나오고, 잠을 잘 수도, 어떠한 활동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출산이라 모유수유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던 저는 '젖몸살'이라는 단어를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산모들은 출산 직후부터 아이에게 젖을 물리게 되는데 저는 손으로만 모유를 짜고 있으니 젖이 탱탱 불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위 친한 아기엄마들이 유축기를 사주었고 저는 가슴마사지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사지를 해 주시는 분은 이렇게 젖이 단단하게 된 산모는 처음 본다며 마사지를 받는 것이 많이 아플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가슴 마사지를 받는 것은 많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모유수유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었습니다. 마사지 하는 분 앞에서 체면도 없이 펑펑 울며 “마사지를 못 받겠다고, 모유수유가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마사지 하는 분은 만약 이렇게 젖이 단단한 상태로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모유가 끊길 수도 있다며 병원에 있는 아이한테 모유를 가져다주어야 되지 않느냐고 저를 설득하였습니다. 출생 후 영양제로만 버티며 몸무게가 900g까지 떨어진 아이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눈물의 가슴마사지와 유축을 통해 모유를 모았습니다.

 

노란 초유가 줄줄 나와 젖병의 삼분의 일을 채우던 순간 너무 기쁘고 제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그 때까지 아이는 소화기관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영양제를 통해서만 영양을 공급받고 있었고 저의 모유들은 차곡차곡 냉동실에 쌓여갔습니다. 유축으로만 모유를 짜내야 했기 때문에 2시간마다 짜내도 시원한 느낌이 없었고 자주 젖몸살이 왔습니다. 혹여나 젖몸살이 심하게 올까 새벽에도 2시간마다 알람을 맞추어 일어나 유축을 하였습니다. 어쩔 때는 너무 졸려서 유축한 모유를 모두 쏟아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10번 이상 유축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병원에서 힘들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저 또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출산 후 한 달이 지나 아이가 드디어 관을 통하여 모유를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3ml의 소량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의 소화기관이 처음부터 많은 양의 모유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미숙아들이 처음 모유를 먹고 나서 잘 받아들이지 못해 금식을 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이 우리 아이는 모유를 잘 받아들여 날마다 그 양이 늘어갔습니다. 모유를 먹기 시작하면서 몸무게도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전에는 10g, 20g 늘던 몸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서 출생 50일 만에 인큐베이터 안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나오면서는 젖병으로 모유를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젖병으로 모유를 먹이던 순간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세상에 나와 몸의 이곳, 저곳 주사 바늘을 꽂고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 아이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겠지요. 그런 아이를 생각하니 젖몸살과 싸우고 열심히 유축을 하는 엄마의 수고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생후 70일 아이는 '미숙아 망막증'으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10일의 입원 기간 동안 수원에서 서울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이를 면회 가며 유축 2시간을 지키기 위해 유축기와 유축부품들을 싸들고 다녔습니다. 모유수유실에서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안고 수유하고 있을 때 유축기를 꺼내서 유축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수유하는 엄마들이 부럽고 서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어디 있고, 유축을 하느냐”는 많은 엄마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힘들어 화장실에서 유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었고 아이는 생후 2개월 만에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퇴원교육을 받으며 병원에서 미숙아들은 모유수유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 빠는 힘이 부족하고 처음에 젖병으로 먹였기 때문에 엄마 젖을 잘 빨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아직도 호흡기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서 젖병을 빨 때 무호흡증을 보이곤 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젖병으로 먹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위 미숙아를 낳은 엄마들은 모유보다 분유가 더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일부러 분유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퇴원하면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를 안고 모유수유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얼마나 실망이 되었던 말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모유는 엄마의 특권이라 생각하였고 꼭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2개월 동안 병원에서 혼자 지내야 했던 아이에게 이제는 엄마와 함께 있다고, 배고프면 언제든지 엄마 젖을 먹으면 된다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퇴원할 때 아이의 몸무게는 2.3kg이였습니다. 퇴원하는 날부터 열심히 엄마 젖을 갖다 대었지만 아이는 물 생각도 하지 않고 젖병만 찾았습니다. 주위에서 아이를 배고프게 만들면 엄마 젖을 먹게 되어있다고 조언해 주었지만 2.3kg의 아이가 배고프다고 우는데 젖병을 안 주고 아이가 물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 젖을 계속 갖다 대고 있기에는 엄마 마음이 너무나 약했습니다. 그래도 무조건 젖병을 물리기 전 엄마 젖을 먼저 갖다 대었고 아이에게 계속 말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젖병 말고, 엄마 젖을 먹자고.

 

퇴원을 하여 아이의 몸무게는 또 다시 급속도로 자랐습니다. 3kg이 넘어가고 4kg이 가깝게 되던 어느 날 아이는 엄마 젖을 쭈욱하고 빨기 시작했습니다. 출산 후 세 달 만에 처음 느껴보는 직접 수유의 느낌이 그렇게 시원하고 감동적일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퇴원을 하고도 한 달 동안 엄마 젖을 빨지 않아 직접 수유는 어려운 것인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아빠는 아이에게 젖병으로 먹이고 엄마는 유축을 하며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빨지 않으니 모유량도 점점 줄어서 이제는 아이가 빨게 되도 부족할 거 같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처음으로 모유를 빠는 것을 보니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이는 처음에는 몇 분 빨고 말더니 점점 빠는 시간도 늘어나고 빠는 횟수도 늘어났습니다. 급기야는 젖병을 거부하고 엄마 젖을 찾을 정도가 되었을 때 아빠와 엄마는 기뻐서 집안을 뛰어다녔습니다. 젖병을 완전히 떼고 직접 수유만 되기까지는 한 달이 시간이 걸렸고 출산 후 네 달 만에 유축기와 젖병을 치우게 되었습니다.

 

직접 수유가 되고 나서 병원에 가게 되거나 외출을 하게 되어 수유실에서 아이를 안고 수유를 하면 저 혼자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엄마들에게는 평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저에게 남다른 수유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아이가 20개월이 될 때까지 수유를 하였습니다. 너무 커서까지 모유를 먹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저는 더 먹일 수 있다면 더 먹이고 싶었습니다. 둘째의 임신으로 갑작스럽게 수유를 끊게 되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흔히 미숙아는 잔병치레가 많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아이는 너무나 건강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감기나 잔병치레도 거의 없이 자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모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쉽지 않았던 모유수유의 과정. 지금도 그 과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합니다. 모유를 먹고 건강하게 자란 아이는 이번 달이면 세 돌이 됩니다.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너무나 튼튼하게 자란 아이를 바라보면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꼭 직접 수유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병원에서나 주위에서나 할 수 있다는 말보다는 아이가 태어나서 두 달이나 엄마와 떨어져 있었는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제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모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유수유를 포기할 수도 없었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고, 젖몸살로 진통제를 먹으며 유축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병원 화장실에서 몰래 유축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2시간마다 일어나서 유축을 해야 했기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모유수유, 저에겐 남다른 아픔이었고 남다른 기쁨의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는 커서 이런 엄마의 수고를 기억할까요?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엄마는 이렇게 그 시간을 추억하며 아이에게 남다른 애정으로 대하고 남다른 감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모유수유를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모유수유, 엄마가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줄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모유수유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가 있다면 저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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