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란만장 모유수유 도전기
나의 파란만장 모유수유 도전기
  • 정리 = 정은혜 기자
  • 승인 2013.08.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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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 수기공모전 대상 이규인 씨 작품

[연재] 나의 모유수유 성공기 공모전 수상작   

 

국내 유일의 임신출산육아 전문방송 육아방송(회장 신경식)과 국내 최초 육아신문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는 세계모유수유주간(8월 1~7일)을 기념해 최근 ‘나의 모유수유 성공기’ 모유수유 체험 수기공모전(http://mother.ibabynews.com)을 진행했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올라왔다. 그중 공정한 심사를 거쳐 당선된 우수작품 12편을 차례차례 공개한다.

 

“여보, 저 군장이 몇 kg인지 알아? 자그마치 10kg이야. 이 더운 날씨에 저거 매고 행군하면 정말 죽을 것 같아.”

 

두 아이와 전쟁 같은 일주일을 치르고 난 일요일 오후 남편은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 잠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합니다. 여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생방에 긴급출동 등 군대 관련 에피소드를 보며 자신의 경험담까지 털어놓고, 힘들고 고단했던 지난 시간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듯 실감나게 이야기합니다. 10kg의 군장처럼 무거운 배를 열 달 동안 안고 지내는 임산과 출산의 과정.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 하듯, 저에게도 너무나 힘겹고 어려웠던 출산 그리고 험난한 모유수유 무용담이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같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결혼한 부부교사 커플입니다. 서른다섯 노총각과 서른넷 노처녀가 만나 달콤한 1여 년의 비밀열애 끝에 드디어 결혼을 한 것이지요. 결혼 후 바로 아이가 생겨 저와 남편은 구름에 오른 듯 알콩달콩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임신 사실을 안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잦은 출혈로 유산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당분간 누워서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풍전등화라더니 그로부터 꼬박 석 달을 침대에 누워 바람 앞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촛불을 지키듯 조심히 지냈습니다.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고 출근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저는 신종인플루에 걸려 한 달 넘게 고열과 기침으로 사경을 헤맸습니다. 타미플루를 처방해도 좀처럼 낫질 않고 큰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자 남편과 시아버님은 조릿대가 좋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낫을 들고 이 산 저 산을 헤매며 귀한 조릿대를 구해 달여 먹였습니다.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기는 동안 이제 배도 남산만 해져 한 시름 더나 싶었더니 조산의 위험이 있다며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병 휴가를 다 쓴 터라 저는 남편의 차에 누워서 출근하였다가 맨발 투혼으로 수업을 해나가며 안간 힘을 쓰며 36주라는 임신 기간을 가까스로 지켜냈습니다. 가진통 시간만 48시간, 이미 진진통도 하루가 꼬박 넘어 기진맥진. 병원의 분만대에 누워서도 좀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자 의사 선생님은 제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 셋 낳고 싶어요. 조금만 더 노력하고 할래요.” 출산이 가까워오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던 저는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를 셋까지 낳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 셋을 칼로 배로 째서 낳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제 힘으로 낳고 싶은 마음에 사경을 헤매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연분만을 하겠노라 고집을 피웠고 드디어 3.4kg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엄마는 함몰유두라 모유수유 성공하기가 어려울 듯해요. 처음부터 젖병을 물리면 아이가 짧고 먹기 힘든 엄마 젖을 먹지 않으려 할지 모르니 컵수유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의사선생님도 근래에 보기 힘든 난산이었다고 말한 만큼 죽을힘을 다해 쓰러져 있는 내게 간호사 선생님은 우리 가족에게 불어 닥칠 또 한 번의 위기를 암시하며 해결책으로 ‘컵수유’라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제 젖꼭지가 짧아도 너무 짧아 아이가 물기 어렵고 더구나 젖이 돌기 시작하면 가슴이 불어나면서 짧은 젖꼭지가 파묻혀 더욱 짧아지니 애초부터 입만 가져다 대면 줄줄 나오는 젖병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가급적 엄마 젖을 무는 연습을 많이 하고 젖이 나오기 전까지 분유를 타서 컵으로 먹이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컵수유를 하게 되면 일일이 아이 병동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간호사들이 챙기기 어려우니 엄마와 아빠가 데리고 있으면서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유수유를 위해 우리 가족은 어렵지만 컵수유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들은 신생아실 대신 산모입원실에 같이 있으며 수시로 젖을 물리는 연습을 했고 연습 후 배가 고플 때는 분유를 컵에 따라 먹였습니다.

 

한참 빨기 본능이 강한 아이에게 젖병 대신 컵으로 주려니 먹는 양보다 제대로 먹지 못해 얼굴로 쏟아지는 일이 더 많았고 얼굴은 물론 분유가 흘러내린 목까지 울긋불긋한 부스럼이 나 아이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연분만을 했어도 몸을 가누기 어려워 휠체어를 타고 다닐 만큼 쇠약해진 저는 몸조리 대신 하루 종일 아이를 들고 있으려니 온몸이 퉁퉁 붓고 어깨와 목, 허리가 빠질 듯 아팠습니다. 남편과 친정 엄마 역시 하루 종일 부실한 산모와 배불리 먹지 못해 칭얼대는 아이를 돌보느라 힘겹고 고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퇴원 후에도 조리원 대신 집으로 갔습니다. 함몰유두인 제가 험난한 모유수유를 성공하기 위해선 힘들더라도 컵수유를 계속 해야 하니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는 조리원 대신 집으로 가서 직접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4일쯤 지나자 젖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빈 젖으로 고군분투하던 아이도 달콤한 초유의 맛을 보자 좀 더 힘을 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젖이 돌기 시작하자 가슴이 팽창하며 젖꼭지가 안으로 말려들어 가면서 짧아져 아이는 더욱 엄마 젖을 물기 어려워졌습니다. 뜻대로 안 되자 더 크게 울며 보채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기만 한 저의 눈물로 집안은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더 큰 고난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쓰나미처럼 몰아닥치는 가슴 통증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데굴데굴 구르는 저를 본 엄마는 젖몸살이 온 것 같다며 얼굴빛이 흐려졌습니다. 젖이 돌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제대로 빨지 못해 그런지 가슴은 점점 커지듯 불어나더니 급기야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습니다. 가족들은 고인 젖을 짜내기 위해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 보았지만 가슴을 옥죄는 통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몰려는 통증으로 긴 밤을 꼴딱 새운 저와 남편은 날이 밝자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모유수유 마사지 샵을 찾아가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짧아도 너무 짧다는 마사지 선생님 한숨에 억눌린 고민을 털어놓으며 엉엉 목 놓아 울었습니다. 

 

"함몰유두인 저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가 고통받고 있어요. 못난 엄마 때문에는 아이는 컵으로 분유를 받아먹느라 얼굴이 온통 부스럼이 가득하고, 친정엄마와 남편은 하루에도 열두 번 컵으로 여기저기 쏟아낸 분유로 젖은 아이 옷과 이부자리를 빠느라 정신없고 제대로 먹지 못해 울며 보채느라 낮잠도 자지 않고, 새벽까지 칭얼대는 아이 보느라 밤마다 불침번을 서고 있으니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요.”

 

가슴을 압박하는 통증과 그 동안 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억눌린 고민을 털어놓으며 엉엉 목 놓아 울었습니다.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선생님은 마사지가 끝나자 수유자세를 교정시켜주시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우리가족은 그토록 기다리던 ‘꿀꺽꿀꺽’ 아이가 젖을 목으로 넘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3개월의 산휴기간이 끝나자 저는 다시 학교로 복직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유축기로 젖을 짜고 퇴근 후에는 직접 수유를 계속하고자 했지만 문제는 이제 막 엄마 젖 먹기에 익숙해졌는데 유축을 해서 일반 젖병에 먹이다 보면 엄마 젖꼭지와 젖병 젖꼭지에 대해 혼동이 오고 점점 먹기 쉬운 젖병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는 점점 엄마 젖을 물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방법을 찾던 중 ‘모유실감 젖꼭지’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유실감 젖꼭지는 일반 젖병의 젖꼭지와 달리 입을 크게 벌려 혀의 정중앙에 젖꼭지를 물어서 자신이 직접 빨아야 젖을 먹을 수 있어 엄마 젖꼭지와 최대 비슷한 방법이라는 말에 일반 젖병 대신 모유실감 젖꼭지로 유축한 젖을 먹였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한다는 말이 있듯 아이가 젖을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입에 커다란 모유실감 젖꼭지를 물으려니 입 주변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딱딱한 젖꼭지를 힘차게 물고 빨려니 온몸에 땀이 범벅이었습니다.

 

덕분에 엄마 젖꼭지와 젖병 젖꼭지 혼동 없이 낮에는 유축한 젖을 먹고 퇴근 후에는 직접 엄마 젖도 잘 빨아주어 고생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젖병 수유를 거부하여 친정엄마가 점심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려와 직접 젖을 먹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엄마 젖을 물리기 위해 퇴근시간에 맞춰 달려온 친정엄마 덕분에 학교 근처 지하철역 모유수유실에서 젖을 물린 적도 많습니다.

 

"어쩜, 아이가 토실토실 튼튼해요. 엄마 젖 먹나 봐요?" 가끔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들르는 보건소에서는 무럭무럭 잘 자라는 우리 아들을 보며 예쁘다며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고 그즈음 엄마 젖 먹는 모유수유아 선발 대회가 있으니 나가 보라는 권유로 우리 가족도 출전해 보게 되었습니다. 모유수유아 선발 대회는 아이의 키와 몸무게, 머리 크기를 측정하여 월령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소리 나는 대로 바라보기, 기기와 뒤집기, 물건 잡기 등 성장 속도에 맞게 잘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 발달을 테스트합니다.

 

의사 선생님들로부터 모유수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성실히 답변한 후 마지막으로 직접 모유수유하는 모습을 시연하는데 무대 울렁증이 있는 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관문을 무사히 마치고도 마지막 모유수유를 시연하는 장면에서 잔뜩 긴장한 아이를 울리는 바람에 결국 참여하는데 의의를 두며 아쉬움을 남긴 채 대회를 마쳤습니다.

 

아이를 때놓고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으로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대형 현수막과 액자, 그리고 돌잡이 행사판도 직접 만들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뜻깊은 돌잔치를 무사히 마치고 저희 부부는 모유수유를 끊기로 했습니다. 남편과 친정엄마까지 온가족이 똘똘 뭉쳐 힘겹게 완모에 성공해 그만두기 너무도 아쉬웠지만 제가 나이 많은 고위험군 산모이다 보니 둘째도 하루빨리 가져야 할 것 같아 모진 마음을 먹고 젖을 떼기로 했습니다. 엄마 젖을 더 먹겠다고 울며 보채는 아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지만 젖을 끊자마자 바로 둘째가 생겨 그나마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었습니다.

 

둘째 임신으로 좋아하던 우리 부부에게 뜻밖의 사고가 났습니다. 남편과 함께 출근하던 중 불법 유턴하며 과속으로 달려오던 상대 차가 우리 차를 들이받은 것입니다. 아프고 놀라기도 했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을 반 아이들을 생각하며 학교로 달려가 수업을 마친 후 병원으로 갔습니다. 점점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몰려왔고 병원에서도 왜 이제 왔느냐며 다그쳤습니다.

 

병원에서 입원 후 몇날 며칠을 검사하며 태아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행여나 아이에게 큰 일이 있을까 걱정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낳은 순간까지 아이의 안전이 염려되어 걱정스러웠지만 아이에게 큰 이상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저는 상대차가 직접 제가 탄 보조석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목과 허리에 심각한 디스크가 생긴 걸 알았습니다.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디스크로 인한 통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제 막 돌이지난 아들을 돌보며 낮에는 학교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몸이 부서지는 듯 아팠습니다. 임신한 상태라 디스크 치료는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을 생으로 참으며 열 달을 보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디스크로 인해 자연분만이 어려울 수 있다며 제왕절개를 권했지만 처음부터 셋째 출산을 목표로 둔 저는 자연분만을 해 보겠노라 부탁드렸습니다. 또 다시 산통이 찾아왔고 산통과 함께 목과 허리 디스크 통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엄청난 진통을 참아내고 3.9kg의 건강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법 튼실한 아이를 디스크를 앓는 제가 자연분만 하다니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제 가족은 모유수유를 목표로 출산 후 조리원 대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아들과 신생아와 산모까지 우리 집은 북적북적 더욱더 정신이 없었습니다. 3.9kg이라 낳기는 어려웠지만 힘이 좋았던 딸아이는 짧은 엄마 젖꼭지를 열심히 물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즈음 저는 갑자기 온몸에 마비 증세가 와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디스크가 심한 상태로 임신 기간 동안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한 상태로 아이를 출산하고 모유수유까지 하고 있으니 몸에 무리가 왔다며 지금이라도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자며 타일렀습니다. 마비가 와 혼자서는 앉고 일어설 수도 없던 저는 병원 침대에 누워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프세요?" 놀란 의사 선생님은 꼭 고쳐 줄 테니 걱정 말라며 위로해 주셨지만 저를 울게 한 건 마비된 몸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모유수유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제발 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해 달라고 울며 매달렸고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혼자 힘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을 어긴 채 또 다시 모유수유를 시작했습니다. MRI를 찍고 모진 약을 먹을 탓에 조금씩 거동이 가능하자 과감하게 약을 끊고 다시 젖을 물렸습니다. 다만 또 다시 마비가 올 수 있다는 말에 몸에 무리가 덜 가도록 누워서 수유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목과 허리를 불편한 저를 위해 남편과 친정엄마가 번갈아 가며 아이를 받쳐주어 젖을 물렸지만 앉아 먹이는 저도 아래에서 두 팔로 아이를 떠받치는 남편과 친정엄마도 너무 힘들어 생각 끝에 누워서 젖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첫째 때에도 시도한 바가 있지만 제가 젖꼭지가 너무 짧아 누우면 아예 먹기가 더욱 어려워 깩깩거리는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고군분투하던 둘째는 다행스럽게도 누워서도 물어주어 어렵지만 모유수유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가슴을 압박하는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젖몸살이 다시 온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시댁에서 젖소를 길러 자신 있다던 남편은 뜨거운 수건으로 제 가슴의 긴장을 완화시킨 뒤 두 손으로 뭉친 젖을 짜겠노라 아주 세게 짜내었습니다. 그러나 돌처럼 굳어져 통증이 심한데다가 남편까지 비틀어 짜듯 힘을 더하자 죽을 듯 아팠습니다. 어느 덧 새벽이 되자 두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남편과 친정엄마는 기절하듯 소파에 나가 떨어졌고 오로지 저 혼자 밤을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젖몸살이 얼마나 아픈지 이미 경험한 저로서는 젖몸살에 대한 공포로 두려웠고 첫째 때보다 더한 통증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다급한 저는 119로 전화를 걸어도 보고, 병원의 응급실로 문의했지만 진통제를 먹어야 한다는 말에 그만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진통제를 먹게 되면 수유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파도 참아보기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러나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은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입에 수건을 물고 이를 악물고 참아 보았지만 너무도 아프고 시간도 더디게 갔습니다.

 

결국 저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두 손을 깍지를 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앉은 산 자세를 취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에 도움이 되도록 요가를 배우던 중 일 여년 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배운 덕분에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 임신기간 동안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물론 젖몸살의 통증이 덜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엄청난 통증으로 나약해진 저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한 뒤 두 팔을 크게 뻗어 합장한 후 큰절을 하며 긴긴밤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가슴의 통증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라마즈 호흡이 출산의 고통을 덜듯 길게 코로 들여 마시며 절을 하며 바닥에 엎드려서 내뱉는 호흡 역시 가슴 통증을 줄여주는 듯했습니다. 또한 팔을 쭉 펴는 동작 역시 뭉친 가슴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는 듯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해 나무자세와 태양예배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벌써 다섯 시간도 넘게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자 다리 관절이 욱신욱신 쑤시고 아팠습니다.

 

날이 밝자 남편의 지갑 속에서 출장 모유수유 마사지사의 명함을 보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간밤에 뭉친 젖을 너무 세차게 짓누르는 바람에 유선이 너무 많이 파괴된 것 같아요. 이렇다 보면 모유양이 줄어 원만한 모유수유가 어려울 수 있어요. 첫째 모유수유를 마치고 나면 그냥 젖을 말리는 게 아니라 마사지사에게 전문적으로 젖을 말렸어야 하는데 젖을 제대로 말리지 않아 남아있던 모유에 다시 둘째를 먹이기 위한 젖이 돌아 더욱 더 강력하게 젖몸살이 오게 된 거랍니다.“

 

간밤에 진통제를 먹고 싶다는 유혹도 뿌리친 채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참았건만 젖을 먹이기 어렵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마사지도 꾸준히 받고 선생님이 내게 했던 방법을 떠올리며 열심히 뭉친 가슴을 풀어 젖이 돌도록 또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딸아이에게 열심히 젖을 물렸습니다. 3.9.kg로 태어난 딸아이는 힘차게 엄마 젖을 물고 열심히 먹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제 몸이 좋지 않아 누워서 젖을 먹였지만 사례 한 번 걸리지 않고 무사히 수유할 수 있었고, 기특하고 고마운 딸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딸아이가 모유만 먹으려고 해 우리 가족에게 큰 고민이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 이유식을 시작했지만 이유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유기농 재료에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았지만 돌이 다 되도록 과일은커녕 아이들이 즐겨 먹는다는 과자조차 입에 대지 않고 오직 젖만 먹었습니다. 걱정되어 소아과를 다니며 자문을 구하고 아이의 영양 상태에 문제는 없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현재 건강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지만 엄마 젖만으로는 영양이 부족하니 꼭 이유식을 챙겨 먹어야 합니다”라며 이유식을 꼭 먹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딸아이는 입에 숟가락만 넣으면 거세게 밀어내며 엄마 젖만 찾았습니다.

 

그러다 딸아이의 돌이 지나고 갑작스레 배가 아파 병원에 응급실로 실려가 입원을 했습니다. 딱히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과로와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복통인 걸로 결론짓고 며칠 만에 퇴원을 하였습니다.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한 갖가지 검사를 한 저는 당분간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일주일 이상 젖을 물리지 말라고 당부하는 바람에 딸아이는 엄마가 있어도 젖을 먹지 못하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남편은 일주일 동안 젖을 중단한 후 다시 수유하는 것보다 이참에 아예 모유를 끊자고 말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젖을 줄 수 없다니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첫째를 키우며 유축기로 수유하며 엄마 젖이 얼마나 아이에게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저는 몸에 좋은 엄마 젖을 둘째에게 직접 수유하기 위해 일부러 육아휴직까지 신청하며 지난 일 년 동안 디스크 치료도 포기한 채 공을 들였는데 뜻하지 않게 수유를 중단해야 한다니 속상한 마음에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어차피 셋째까지 낳기로 한 거,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이제 그만 수유를 중단합시다.” 딸아이라면 끔찍이도 생각하는 남편은 저를 달래기 위해 따뜻한 위로와 함께 제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이제 제 나이 서른여덟. 셋째를 낳고 싶은 저였기에 남편의 위로로 마음을 다잡으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유수유로 자란 두 아이 모두 이제는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자연과 벗하며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올 해 초 시골로 이사 온 저희 가족은 가끔 매서운 겨울바람에 콧물을 흘려 병원에 가기도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진즉에 엄마 젖으로 예방 주사 맞은 아이들이라 큰 걱정 없다며 저를 격려해주십니다. 천식을 앓았던 남편과 심한 비염으로 고생한 저를 닮아 첫째가 천식과 비염이 있습니다. 기관지와 호흡기가 약해 고생이 많지만 모진 감기가 유행하여 40도가 넘는 고열로 펄펄 끓을 때도 단 한 번의 열 쇼크 없이 잘 견뎌냈습니다.

 

날 때부터 컵수유를 하며 모유수유라는 험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이겨 내온 아들은 매사 어렵고 힘든 일을 잘 참고 견뎌내는 진득함이 있으니 아마도 힘겨운 모유수유가 아들에게 준 고마운 선물일 거라 생각합니다. 40개월의 아들은 조금 매운 듯한 김치도 잘 먹고 아삭이 고추도 한 입 먹음직스럽게 먹고 들기름에 자작자작 묻혀 낸 호박나물과 논에서 잡은 우렁 넣고 박박 끓인 된장찌개도 곧잘 먹으니 모유수유 기간 동안 편식 없이 골고루 먹은 엄마의 식습관으로 그대로 닮은 모양입니다.

 

3.9kg으로 태어난 저희 딸이 궁금하시다고요? 웬만한 남자아이보다 크게 태어난 저희 딸은 비만이나 우량아는 아니고 늘씬한 다리에 또래보다 키가 커 벌써부터 장차 미래의 미스코리아로 키울 생각에 흐뭇합니다. 1년 동안 엄마 젖만 먹어 걱정시켰던 딸아이는 정말 큰 병치레 없이 잘 자랍니다. 주변에 감기가 유행하여 엉겁결에 덩달아 콧물을 흘리는가 싶다가도 이내 괜찮아져 정말 병원 갈 일 없이 쑥쑥 잘 자라 주어 지난 세월 모유수유로 고생한 날들에 대한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모유수유는 저희 가족에게 큰 교훈을 안겨 주었습니다. 아들은 모유수유 과정을 잘 견뎌낸 덕에 강인한 정신력을, 딸아이는 열심히 엄마 젖 먹은 덕에 튼튼한 면역력을 갖게 되었으니 모유수유 엄마로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어릴 때 칭얼칭얼 많이도 울어 걱정이었는데 품에 안겨 엄마 냄새 맡고 젖 먹으며 자란 두 아이들은 자랄수록 방글방글, 덩실덩실 잘도 웃어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아빠의 피로 회복제가 됩니다.

 

자라면서 친정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자꾸만 잊고 저 혼자 큰 줄 알고 지냈습니다. 저절로 엄마 뱃속에서 나와 공짜로 엄마 젖 먹고 큰 줄 알았더니 제가 엄마가 되어 모유수유를 경험하고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공들여 태교하고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시할아버지까지 모시고 모진 시집살이하면서도 밤잠 설쳐가며 젖 먹인 덕에 그 딸이 자라 오늘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일찍 떠난 남편을 대신 해 가장의 짐까지 짊어진 엄마는 두 배의 정성과 노력으로 저와 동생을 키웠건만 어느새 엄마 키만큼 훌쩍 자란 저는 그저 제가 잘나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모유수유하는 내내 제 곁에서 집안일 걱정 없이 아이 키우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힘들다 말없이 제 곁을 지켜준 친정 엄마, 서툰 제가 그동안의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오롯이 책임감 있는 엄마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 옛날 저 역시 땀 흘려 엄마 젖 먹으며 자라온 숨겨진 내공 때문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곱슬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저는 한동안 저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고운 피부에 긴 생머리 날리는 연예인들을 부러워하며 못난이 인형 같은 저 자신을 많이도 미워하였지요. 그러나 소중한 아이를 뱃속에 담고 튼튼하게 열 달을 지켜내고 영양만점 엄마 젖을 먹일 수 있는 건강한 저의 몸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지 새삼 깨닫게 되었으니 모유수유를 하며 부족한 저도 많이 자랐습니다. 남편 역시 모유수유하는 동안 몸에 좋은 유기농 재료를 구해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저를 챙겨 먹이고 방학 기간이면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해 주었으니 자상하고 속 깊은 남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천직이라 여기던 학교도 잠시 쉬고,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제 손으로 키우느라 고생고생하고 있지만 셋째를 낳겠다는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기 위해 엄마의 몸이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건강 텃밭인 줄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잘 알게 된 저는 더 건강하고 영양 가득한 엄마가 되기 위해 식단조절과 운동으로 셋째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일지를 적으며 모유수유 시간과 수유량을 체크하고 제가 먹은 음식 중 어떤 음식은 좋고 나쁜지 꼼꼼하게 챙기며 모유수유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은 훗날 셋째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또 한 번의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라는 커다란 산을 넘기 위해 그동안 하지 못한 디스크 치료를 받으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셋째 역시 젖 먹이며 키우고 싶습니다. 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생애 가장 아름다운 도전인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은 행복한 단꿈을 꾸며 오늘도 저는 알콩달콩 건강맘, 영양맘이 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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