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도 유모차 끌고 이동하기 힘들어요
남자들도 유모차 끌고 이동하기 힘들어요
  • 기고 = 김서룡
  • 승인 2013.09.11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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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미는 유모차도 가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특별기획] 부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찾는 것도 일!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일!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일입니다. ⓒ김서룡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찾는 것도 일!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일!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일입니다. ⓒ김서룡

 

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며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잠시 육아에 전업으로 종사한 경험으로 아이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값진 일인지 아는 대한민국 남자랍니다.

 

몇 년 전 저는 잠시 백수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 저희 아이는 6개월. 결국 휴직을 하고자 했던 아내는 이르게 직장에 복귀했고, 육아는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자주부가 되었고, 서툴게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죠.

 

아이가 한 달 두 달 커 가면서 외출을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조르고, 저도 취업 준비 및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 저기 다녀야했죠. 하지만 육아를 담당하기로 한 제가 아이를 매번 아이를 부모님께 맡길 수도 없는 일. 하는 수 없이 데리고 다녀야 했습니다.


사실 직장에 복귀하기 전 아내는 6개월 동안 우울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와 어린 아이 때문에 밖에 못 나가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아내. 활동적인 아내는 더 힘들어 했죠.

 

매번 "아이 좀 봐줘. 너무 답답해. 외출하고 바람 좀 쐬고 싶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저는 "아이 데리고 나가면 되잖아. 날도 좋은데, 뭐가 걱정이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아이 데리고 외출하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라고 반론을 했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이 맡기고 싶어서 그렇지. 저 작은 아이 데리고 나가는 게 뭐가 힘들어. 그냥 띠 메고 안고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보게 되자 아이 데리고 외출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하나 데리고 나가려면 짐이 한 보따리. 분유에, 뜨거운 물을 담는 보온병에, 기저귀에, 여벌옷에 '차라리 안 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자라 체력이 받쳐주니 정 급할 때는 짐을 잔뜩 지고, 아기를 들쳐 메고 나가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집에서 허리를 ‘삐끗’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 취업 관련 서류 때문에 급하게 구청에 가야하는 날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태워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은 순조로웠습니다. 아이도 유모차에 잘 타고 있어주고요. 처음 타는 지하철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뿔싸! 제가 사는 지역 구청인 성북구청이 있는 보문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구청이 있는 역에 유모차도 없을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권 발급 및 여러 가지 일로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찾을 일이 많을 텐데요.

 

저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결국 이 방법 저 방법 고민을 해도 답이 없더군요. 휠체어 리프트를 태울 수도 없고, 제가 들고 가기에는 제 허리도 걱정이고, 혹시 아이를 태우고 유모차를 들다 사고가 날까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은 자꾸 흐르고, 답이 없음을 깨달은 저는 역무원께 SOS!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익근무요원이 유모차를 들어주러 오셨습니다.

 

'힘 좋아 보이는 남자가 자기가 들고 올라가면 되지, 왜 귀찮게 우리를 불러'라는 표정. 저는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라고 핑계를 댔지만 꺼림칙하고 부끄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엘리베이터만 있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결국 저는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저는 취업에 성공을 해서 남자 불량주부라는 명함을 뗐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짧은 6개월 정도의 경험은 제 인생에 있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길을 갈 때 아이를 안고 있거나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엄마들을 항상 배려합니다.


길 가다가 유모차를 가지고 계단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 항상 열일 제처 두고 달려가서 유모차부터 들어주죠. 제 생각이 나거든요. 또,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유모차를 보면 우선 내립니다.

 

지금도 저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할 일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배리어 프리 환경‘을 만든다고 시와 구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유모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여전히 기다림과 지체의 연속입니다.

 

잘 있지도 않고, 있어도 저쪽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찾는 것도 일!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일!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일! 또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으면 한참을 기다려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 십상이죠.

 

지금은 허리도 다 낳았고 힘 좋은 남자지만 유모차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중노동이고 여전히 위험한 일입니다.

 

대통령님! 단 며칠이라도 저처럼 주부 한번 되어보세요. 유모차 가지고 대중교통으로 이동 한 번 해 보세요.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 유모차 전용 도로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공감하실 것입니다.

 

◇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공모 안내

 

오는 9월 15일 오후 2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유모차는 가고 싶다' 연중캠페인 서포터즈 발대식이 열린다. ⓒ베이비뉴스
오는 9월 15일 오후 2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유모차는 가고 싶다' 연중캠페인 서포터즈 발대식이 열린다. ⓒ베이비뉴스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부모들의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과 유모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교통약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적어 보내면 됩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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