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부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며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잠시 육아에 전업으로 종사한 경험으로 아이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값진 일인지 아는 대한민국 남자랍니다.
몇 년 전 저는 잠시 백수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 저희 아이는 6개월. 결국 휴직을 하고자 했던 아내는 이르게 직장에 복귀했고, 육아는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자주부가 되었고, 서툴게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죠.
아이가 한 달 두 달 커 가면서 외출을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조르고, 저도 취업 준비 및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 저기 다녀야했죠. 하지만 육아를 담당하기로 한 제가 아이를 매번 아이를 부모님께 맡길 수도 없는 일. 하는 수 없이 데리고 다녀야 했습니다.
사실 직장에 복귀하기 전 아내는 6개월 동안 우울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와 어린 아이 때문에 밖에 못 나가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 아내. 활동적인 아내는 더 힘들어 했죠.
매번 "아이 좀 봐줘. 너무 답답해. 외출하고 바람 좀 쐬고 싶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저는 "아이 데리고 나가면 되잖아. 날도 좋은데, 뭐가 걱정이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아이 데리고 외출하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라고 반론을 했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이 맡기고 싶어서 그렇지. 저 작은 아이 데리고 나가는 게 뭐가 힘들어. 그냥 띠 메고 안고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보게 되자 아이 데리고 외출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하나 데리고 나가려면 짐이 한 보따리. 분유에, 뜨거운 물을 담는 보온병에, 기저귀에, 여벌옷에 '차라리 안 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자라 체력이 받쳐주니 정 급할 때는 짐을 잔뜩 지고, 아기를 들쳐 메고 나가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집에서 허리를 ‘삐끗’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 취업 관련 서류 때문에 급하게 구청에 가야하는 날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태워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은 순조로웠습니다. 아이도 유모차에 잘 타고 있어주고요. 처음 타는 지하철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뿔싸! 제가 사는 지역 구청인 성북구청이 있는 보문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구청이 있는 역에 유모차도 없을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권 발급 및 여러 가지 일로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찾을 일이 많을 텐데요.
저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결국 이 방법 저 방법 고민을 해도 답이 없더군요. 휠체어 리프트를 태울 수도 없고, 제가 들고 가기에는 제 허리도 걱정이고, 혹시 아이를 태우고 유모차를 들다 사고가 날까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은 자꾸 흐르고, 답이 없음을 깨달은 저는 역무원께 SOS!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익근무요원이 유모차를 들어주러 오셨습니다.
'힘 좋아 보이는 남자가 자기가 들고 올라가면 되지, 왜 귀찮게 우리를 불러'라는 표정. 저는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라고 핑계를 댔지만 꺼림칙하고 부끄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엘리베이터만 있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결국 저는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저는 취업에 성공을 해서 남자 불량주부라는 명함을 뗐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짧은 6개월 정도의 경험은 제 인생에 있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길을 갈 때 아이를 안고 있거나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엄마들을 항상 배려합니다.
길 가다가 유모차를 가지고 계단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 항상 열일 제처 두고 달려가서 유모차부터 들어주죠. 제 생각이 나거든요. 또,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유모차를 보면 우선 내립니다.
지금도 저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할 일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배리어 프리 환경‘을 만든다고 시와 구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유모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여전히 기다림과 지체의 연속입니다.
잘 있지도 않고, 있어도 저쪽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찾는 것도 일!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일!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일! 또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으면 한참을 기다려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 십상이죠.
지금은 허리도 다 낳았고 힘 좋은 남자지만 유모차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중노동이고 여전히 위험한 일입니다.
대통령님! 단 며칠이라도 저처럼 주부 한번 되어보세요. 유모차 가지고 대중교통으로 이동 한 번 해 보세요. 유모차 전용 엘리베이터, 유모차 전용 도로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공감하실 것입니다.
◇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공모 안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부모들의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과 유모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교통약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적어 보내면 됩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