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부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안녕하세요. 박근혜 대통령님.
저는 독일에서 거주 중이고 생후 11개월 여자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결혼 후 남편의 일로 독일 생활을 시작한지 햇수로 4년이 되었습니다.
첫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타국에서의 임신과 육아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임신 막달이 되어야 분만할 병원을 새로 정하고 검진을 받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 알아들어 혹시 아기가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때가 엊그제 같네요. 지금은 많이 커서 제법 엄마, 아빠 말을 따라하고 걸음마를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눈에는 많이 큰 것 같지만 아직은 눈 떠 있는 시간 내내 엄마를 쫓아다니는 '엄마 껌딱지'입니다. 엄마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 할 시기라 많이 안아주려고 노력하지만 힘에 부친다 싶게 떼를 쓰면 전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갑니다.
아기를 유모차에 앉히고 걷거나 버스를 타면 아기는 언제 떼를 썼나 싶게 얌전하게 바깥 풍경을 구경합니다. 외출을 할 때 단 한 번도 유모차 없이 나간 적은 없습니다. 또 유모차를 갖고 다니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적도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아기와 관련된 일이라면 99% 수용해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배려를 해줍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거짓말 같던 그 말이 사실이구나' 싶었습니다. 통행불편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일반화되어 있고, 전철이나 기차를 탈 때도 많은 승객들이 유모차를 갖고 타는 부모에게 공간을 내어줍니다.
한 번은 살짝 눈이 내려 길이 매우 미끄러운 날 유모차를 타고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유모차를 버스 중간에 안전히 세우고 앞쪽으로 가서 표를 끊은 뒤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는 동안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배차시간 때문에 일부러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인 제가 유모차 앞에 안전히 착석할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따뜻한 배려로 지독하게 춥고 음습하다는 독일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과 한국의 일면만을 비교하여 '어느 곳이 더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대도시 인구밀도가 훨씬 높고, 대중교통의 상황과 여건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독일의 정책과 사회적인 배려 및 인식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의 일이 잘 마무리되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엄마이기에 '한국도 아이를 키우기 위한 여건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있구요.
대통령님. 저는 한 국가의 지도자가 그리는 비전 하나가 국가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자원이고 경쟁력인 이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행복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