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옥시의 가짜 사과
[취재수첩] 옥시의 가짜 사과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3.11.12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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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어치 귤 몇 개 사오더라도 진심 사과 원해"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저희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이런 불행을 겪었다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안타깝고 송구스럽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자사 제품이 해당 폐손상을 초래한 것이 사실인지 그 여부를 알지 못합니다. 법률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재판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던 모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5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출연해 지원 드리고 싶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제조, 판매해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가 지난 1일 국회 환경부 국정감사에 참석해 전한 말이다. 현재(11월 1일 기준)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은 541명, 사망자는 144명. 이들 피해자의 60%가 옥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의 이번 사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발생한 지 만 3년 만에 처음이다. 옥시는 이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위한 50억 원 기금 지원’에 대한 보도자료를 뿌리며 자신들의 사과를 홍보하는데 주력했다.

 

옥시가 한 사과는 진짜 ‘사과’가 아니었다.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폐질환의 원인으로 밝혀진 건 2011년 가을이다. 정부는 동물실험 등을 통해 옥시 등의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임산부와 영유아를 사망으로 몰고 간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국민들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고 이후 추가적인 피해신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옥시의 사과는 정부와 국민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옥시는 자신들이 만들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가 폐손상을 유발한 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피해자들에게 5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신들의 잘못 여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 결과에 따를 일이라는 것이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함없는 입장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가 발생한 뒤 몇 번이고 옥시 본사를 찾아갔다. 그때마다 옥시는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쫓아냈다. 피해 발생 3년간 옥시 측 관계자를 만난 적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울부짖었고 옥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던 옥시가 피해자들 앞이 아닌, 국회 앞에 서서 인도적 지원을 운운하니 피해자들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11일 오전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서울 송파구 삼전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가 있는 건물 1층에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들고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1일 오전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서울 송파구 삼전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가 있는 건물 1층에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들고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그리고 지난 11일. 옥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아이를, 아내를, 남편을 잃은 피해자들은 장하나 민주당 의원과 함께 옥시 본사를 찾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지원만을 운운하는 것을 항의하기 위해서다. 국회의원과 함께 한 자리라 그랬을까. 옥시 관계자는 본사 1층 로비로 내려와 피해자들을 맞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국회의원을 맞았다.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휠체어에 앉은 피해어린이, 아침 일찍부터 전라도, 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피해가족들, 일하다 말고 뛰쳐나온 피해가족들에겐 인사 한번 건네지 않았다.

 

옥시 측은 “갑작스럽게 방문하셔서”라는 이유를 들며 피해자들을 건물 7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구석 짐칸으로 보이는 허름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게 했다. 피해자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옥시의 과오가 드러날까 걱정됐던 걸까? 자신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모양새치곤 부족한 모습이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이제야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 했던 피해자들의 마음은 또다시 무너졌다. 옥시 관계자 앞에서 꺼내기 싫은 아픔을 다시 한 번 들춰야 했던 피해자들은 “내가 왜 이 앞에서 구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피해자들은 “사과는 한 명 한 명 찾아가 진심으로 하는 게 사과다. 우리는 인도적 지원 50억 원 필요 없다. 진심으로 사과하라”며 “우리처럼 가습기살균제를 써봐라. 그러고도 인도적 지원이란 말이 나올 수 있는지 보자. 직원들 모두 한번 써봐라”고 눈물을 흘렸다. 옥시 측은 항의서한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겠다는 말만 남겼다. 여전히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언제 한번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피해자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은 아직까지도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로 인해 아이를 떠나보냈고 가정이 파탄났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만 믿고 정당하게 돈을 내고 산 물건이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갈 줄 그 누가 알았을까.


3년이 흘렀다. 여전히 가해 기업들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50억 원이라는 이벤트성 지원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옥시가 행한 잘못에 대한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다. 피해자 한 명은 이런 말을 했다. “인도적 지원금 50억 원? 단 돈 1000원어치 귤을 몇 개 사오더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란다”고 말이다. 소비자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기업이다. 이제는 정말 생존을 위해서라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찾아가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행동은 더 이상은 안 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삼전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면담 장소로 향하고 있다. 이들이 내린 곳은 본사가 아닌 7층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삼전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면담 장소로 향하고 있다. 이들이 내린 곳은 본사가 아닌 7층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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