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청각장애 아들, 또박또박 선생님 말하다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엄마, 할무이 생생님 와?”
“응, 오신데. 빨리 선생님 보러가자”
언어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방금 전까지 이제 엄마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던 둘째 아이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돈다.
언제부터인가 5살짜리 둘째 아이와 나와의 대화 속에 또 한 사람의 가족이 들어가 있었다. 장애아 돌보미 선생님인데, 둘째는 그 분을 ‘할머니 선생님’이라 부르며 잘도 따른다. 물론 아직은 발음이 우둔하지만 청각장애로 태어나서 그 정도 발음하는 것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감지덕지다.

우리 가족은 나와 남편,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는 다섯 식구다. 5년 전 둘째가 태어나고 한 달 후, 큰 병원에서 처음 장애판정을 받았을 때의 놀라움과 두려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다행히 장애를 일찍 발견하여 그 후 돌 전후에 인공와우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지만, 또 그 어린 나이에 매일 차를 타고 먼 곳의 전문기관으로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다니던 직장은커녕 집안일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 셋을 키우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대부분의 장애아 치료의 경우 그 시기를 놓치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장애아 돌보미 선생님이 오셨고 나와 우리 둘째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이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6번째 가족이 된 것이다.
“생생님 가지마, 모까... ”
내가 돌봄이 선생님께 둘째를 맡기고 그동안 미루어 둔, 볼일을 보고 돌아오자, 이제 돌봄이 선생님이 갈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지 둘째는 문 앞까지 맨발로 뛰쳐나와 그 작은 몸으로 두 팔을 쫙 펴고는 선생님을 가로막고 서있다. 어떨 때는 선생님 신발을 숨기기까지 한다.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나와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둘째의 행동이 귀찮기는커녕 마냥 귀엽고 즐겁기만 하다.
사실 장애아를 둔 가정은 일반 가정에 비해 웃을 일이 그리 많지가 않다. 부부 중 한명은 직장을 포기하거나 줄이고 장애아와 늘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으로도 전에 비해 힘들어진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가장 힘든 것은 정신적인 피로인 것 같다. 이제 좀 적응이 되어 아이의 장애를 잊고 살 때쯤이면, 문득문득 세상은 다시 우리 아이가 장애아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곤 한다.
사람이 많은 마트나 식당에 가거나 초등학생인 큰아이 학부모 모임에 가거나 하면 아이 귀에 깜박거리는 기계(인공와우)를 보고 다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다 이해는 하지만 어떨 때는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학교에 들어가면 놀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이렇게 약간은 지쳐있는 와중에 돌보미 선생님의 소개로 ‘장애아가족 휴식지원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처음엔 아이를 돌보미 선생님께 맡기고 나만 다녀왔지만,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도 권하게 되었다. 남편은 처음엔 귀찮아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간만에 휴가를 내고 같이 따라가 주었다.
남편과 함께 갔을 때는 석고로 손 모양을 뜨는 일이었다. 그 날은 나와 함께 간 둘째아이와 남편의 손 위에 석고헝겊을 덮고 굳힌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둘째 아이는 아빠와 함께 굳힌 석고 손 위에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을 칠했고, 나는 다섯 손가락에 믿음, 인내, 사랑, 절제, 행복을 써넣었다. 남편은 손목으로부터 나무를 그려 올라간 다음 손가락은 가지처럼 보이도록 그려 넣었다. 그리고는 작게 40 木手(목수)라고 썼다. 말 그대로 나무손이 되었다. 그런데 가지를 연상하는 다섯 손가락 중 세 손가락 끝에만 빨간 열매가 3개 그려져 있었다.
궁금해서 물은 내게 남편은 40살이 될 때까지 살아온 길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단다. 나와 만나 결혼해서 첫아이를 얻게 되던 기쁨, 둘째를 낳고 마음 아파하던 기억, 하던 일이 안 풀려서 고뇌하던 기억 등등 기쁨과 슬픔이 손등의 울퉁불퉁 튀어나온 힘줄이 마치 나무의 거친 껍질처럼 모두 나무에 서려있단다. 그리고 우리 아이 셋은 우리가 만든 세 열매를 뜻하고, 비어있는 두 개의 가지 끝에는 아직 두 개의 열매가 맺지는 못했지만 맺어지고 있는 중이란다.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행복과 성공의 열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도해주시던 강사님이 남편의 작품을 칭찬하니까 나까지 기분이 으쓱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영화를 봤다. 남편과 함께 이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자신이 정말로 힐링(Healing)된 느낌이라고 했다. 먹고 사는데 쫓겨서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여유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치유였다. 주위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다시금 되돌아 볼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와 남편이 그리고 우리 둘째와 치료 이외의 목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무언가를 함께 했다는 것이 뜻 깊었다.
나는 우리 둘째가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오히려 복덩어리라고 생각한다. 둘째 아이 덕분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고, 부부간, 가족 구성원간의 일체감이 더욱 커진 것 같다. 복덩이 둘째를 키우면서 어느덧 소심한 내가 더욱 큰 그릇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후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더욱 강한 엄마 아빠가 되자고 남편과 함께 다짐했다. 일반아이와 비교하며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조바심 느끼며 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자랄까를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사회에 도움을 주며 살 수 있을지를 가르치고 싶다. 늘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부부가 먼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겠다.
나는 오늘도 집 앞 현관에서 익숙한 장면을 목격한다. 다른 점이라면 날이 갈수록 둘째아이 발음이 또박또박해진다는 것이다.
“할머니 선생님 가지마... 못가...”
“안돼요. 예준아... 내일 또 올게...”
“ ^^ ”
*이 글은 올해 한국건강가정진흥원(원장 이은희)이 실시한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 서비스 이용·돌봄 활동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노선경 씨의 글이다. 장애아가족 양육사업은 보건복지부 위탁사업으로, 장애아를 둔 가정에 장애아동 돌봄서비스, 휴식지원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현재 17개 시·도의 18개 기관에서 3000여 명의 장애아동이 돌봄서비스를 지원받고 있다. 돌봄서비스는 전국 가구평균소득 100% 이하 가정 중 18세 미만의 장애아(1급~3급)와 거주하는 가정이, 휴식지원프로그램은 소득과 장애등급에 상관없이 18세 미만의 장애아와 거주하는 가정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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