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를 뿐, 당당한 엄마 되고파"
[엄마를 만났다] 안면장애인 변복순 씨의 육아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한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예쁘게 자라줘서, 밥을 잘 먹어줘서…, 그리고 자신이 아이 엄마라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두 아이의 엄마인 변복순(36) 씨도 매 순간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엄마다.
“엄마라서 정말 감사하죠. 예전엔 꿈꾸지 못했던 행복이었는데, 아이들로 인해 행복하고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기니까요.”
현모(3·가명), 현서(1·가명) 엄마인 변 씨는 여느 엄마들처럼 육아에 지치면서도 어린이집 선택에 고민하고, 아이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엄마다. 변 씨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얼굴이 아픈 안면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엄마라는 이유로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속상할 때도 많고, 얼굴의 통증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든든한 아이들의 모습만 보면 절로 웃음꽃이 핀다는 변 씨의 육아 이야기를, 지난 16일 그의 자택으로 찾아가 들어봤다.

◇ 안면장애인 변복순 씨의 육아 이야기
“새벽에 큰 애가 토하는 바람에 잠을 못자서 오늘 얼굴이 많이 부었어요. 피곤하고 잠 못자고 하면 얼굴 혈관이 안 좋아서 붓고 출혈이 일어나거든요.”
변 씨는 다른 때보다 더 부은 듯한 얼굴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변 씨는 얼굴의 오른쪽 피부가 붉고 보통 얼굴보다 붓는 동정맥 혈관기형으로 태어났다.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으면 얼굴에 바로 나타나는데, 심하면 출혈까지 발생한다. 20대 때 몇 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로 상태가 더 나빠지면서 풍선처럼 얼굴이 부풀 때도 많다.
“남편이 연애할 때 마시마로를 닮았다고 해줬어요. 사랑하면 그런 별명으로 불러주게 되나 봐요.”
아직까진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이 많은 사회다보니 장애인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다. 특히 변 씨와 같은 안면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생소해, 많은 사람들이 낯선 시선을 보낸다. 그런 시선에 힘든 20대를 보낸 변 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소중한 아들과 딸을 낳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꿈꾸겠다는 마음 하나로 계획했던 수술도 포기하고 선택한 임신이었다.
“약물 치료 후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약물이 독하다보니 임신을 안 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여자인데 더 예뻐진 모습은 어떨까 기대를 했었지만, 아기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요.”
◇ 엄마로서의 삶 위해 얼굴 수술 포기
변 씨는 “엄마가 되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변 씨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는 변 씨의 얼굴로 바로 나타났다.
변 씨는 “몸은 괜찮은데 출혈이 심했어요. 첫째를 낳고 일주일 동안 계속 입안에서 피가 났는데, 특히 둘째 때는 의사가 지혈을 못할 정도로 피가 나서 수혈을 많이 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얼굴이 부으면서 혈관이 도드라지고 피부가 약하다보니 세수할 때도 혈관이 터지기 일쑤였다. 자고 일어나면 이불에 피가 흥건했다. 휴지 몇 통을 써도 지혈이 안 돼 애를 먹었다. 임신 시기에 당연히 찾아오는 빈혈도 변 씨에겐 배로 찾아왔다. 출혈이 심하니 빈혈약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부은 얼굴은 눈과 코, 입안 곳곳을 자극했고, 첫 아이를 낳고는 오른쪽 시력마저 잃었다.
“별명이 종합병원”이라는 변 씨. 하지만 그 힘든 일들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선 소용없는 것이었다. 얼굴의 통증이 극심해도 임신 기간 동안, 또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진통제 하나 안 먹었다.
“큰 아이가 돌 지난 뒤 좋다고 달려오는데, 얼굴에 헤딩을 하는 바람에 얼굴 안이 찢어져 석 달을 고생했어요. 피바다가 되고 그랬죠. 지금은 첫째가 말귀을 알아들으니 ‘엄마 여기 만지면 안돼’라고 말하면 안 만지고 그래요.”
◇ 얼굴 통증보다 힘든 건 사회의 차가운 시선
얼굴이 아프고 힘들어도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라 괜찮다는 변 씨. 하지만 어떤 아픔보다도 힘든 건 장애라는 이유로 엄마의 당연한 권리와 의무마저 할 수 없게 막는 사회의 현실이다.
변 씨는 첫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 보낼 때를 생각하며 조심스레 아픈 상처를 꺼내놓았다. 매일 엄마랑 단둘이 지내는 게 아이의 또래 관계 형성에 영향을 줄까 싶어, 집 근처 영아전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엄마의 장애로 아이에게 영향을 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어린이집 원장을 만난 첫 날, 변 씨는 장애의 한계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괜찮은데, 아이들이 제 얼굴을 보고 예쁘다, 안 예쁘다를 생각하고 놀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 그런 일이 생기겠다 생각했지만, 너무 이르게 무방비상태로 그런 말을 들으니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찾아간 변 씨는 어린이집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한 채 문 뒤에 숨어 아이를 맞았다. 놀이터에서 야외수업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먼발치에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변 씨는 “난 불쌍한 엄마가 아니라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아직까지 사회가 장애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그렇구나 하면서도 상처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결국 다른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옮긴 변 씨. “엄마가 아이를 위한다면 다른 엄마들 신경 쓰지 말고 모든 모임에 꼭 나오라”는 원장에 말에 변 씨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 어린이집은 내가 가도 되는 영역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며 웃을 수 있었다.
이제는 집 앞 놀이터에 나가도 아이들이 “현모 엄마다!”며 반갑게 맞이해주고, 아파트 사람들도 아이들을 보며 “예쁘게 잘 자랐다”는 말들을 많이 해준다고. 변 씨는 “나를 닮아서 아이들이 그렇게 예쁘다는 걸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 당당한 엄마 되고 싶어요”
이제는 현모, 현서 엄마로 사회의 구성원이 된 변 씨. “복순이란 이름처럼 나이가 들수록 복이 많아진다”고.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큰지 평생을 경험해온 변 씨는 아이들 앞에서 더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이 크다.
“부모의 장애와 무관할 순 없겠죠. 하지만 장애는 다를 뿐 틀린 건 아니잖아요. 엄마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아이들이 알 수 있게끔 더 당당한 엄마가 될 거에요. 또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변 씨는 둘째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든든한 엄마가 되기 위해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계획도 꾸준히 실천할 작정이다.
“엄마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엄마가 즐겁고 행복하고 열심히 살면 우리 아이도 열심히 살 것이라고 믿거든요. 아이의 거울이 될 수 있도록, 제 마음과 육체가 건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거에요.”
끝으로 변 씨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엄존하는 이 사회에 대해 한마디 던졌다. “장애가 있다고 지나친 관심은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희는 특별하지 않거든요. 시선은 아직까지도 차가우면서 감정은 따뜻하게 다가오면 솔직히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지나친 관심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배려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변 씨는 그 어떤 엄마보다도 따뜻하고 당찬 엄마였다. 엄마라는 사실에 가슴 벅차하는 그의 해맑은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 그런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변 씨의 웃음이 더 활짝 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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