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잣대로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을래요"
희귀난치성질환 환우 가족들 인문학교실 수료하던 날
“아이가 지난해 5월 뇌종양 수술을 받았습니다. 평소 내성적인 성품에 병과 사춘기가 더해지고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쩍 말수가 적어진 아이를 보며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부모 대표로 무대 위에 선 이지상(서울 강서구 화곡동·48) 씨는 객석에 자리한 아들 준용(가명·17)이를 잠시 바라본 뒤 들고 나온 상패를 펼치고선 어렵사리 말문을 떼었다. 상패 속 편지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엄마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씨는 “아이의 몸이 아파 힘든 상태에서 마음의 치유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때마침 아이의 진료를 봐주신 채종희 교수님이 행복한마음학교라는 곳을 추천해주셨는데, 사춘기로 예민한 아이가 수업을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고 그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이어 이 씨는 “아니나 다를까 미술수업 중 여러 가지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게 아이 얼굴에 나타났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 덕분에 수업을 잘 마칠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불안한 마음 없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 글자도 놓칠까 또박또박 글을 읽던 이 씨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잠시 마이크를 입에서 떼곤 두 손을 부여잡았다. 한 쪽 손의 떨림이 어깨와 두 다리로 번져갈 무렵, 아들과 눈이 마주친 이 씨는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사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 마음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아요. 위로받고도 뒤돌아서면 먹먹해지고 항상 무거운 것이 가슴을 누르지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내 짐의 무게가 무겁다 해도 언젠간 가벼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바라보며 이 씨는 “학교는 아이와 저에게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고 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면서 “매회 수업을 받으면서 그간 억지로 추스리던 마음이 정돈되는 걸 느꼈다. 이젠 더 힘든 사람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 읊조렸다.
그러면서 “이제는 세상의 기준을 잣대로 아이를 몰아붙이기보다는 아이가 행복한 것이 무언인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랑의 마음을 함께 나누려 한다. 아프다고 벽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향해 문을 열고 한걸음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 환우와 가족 심적 고통 덜어주는 ‘행복한마음학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본관 A강당에 진행된 이 씨의 고백이 담긴 편지낭송. 가운과 학사모를 곱게 쓴 엄마들은 옆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픈 아이를 둔 엄마의 애달음과 절박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날은 2014년 어린이를 위한 마음치유교실인 ‘행복한마음학교’ 수료식이 열린 날이었다. 행복한마음학교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을 이용하는 희귀난치성질환 환우, 가족 등이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철학과 문화예술 교육 기반의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면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이 교육장소를 제공하고 참가할 환우를 모집하면 희망네트워크가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게 된다. 이 사업은 지난 2012년부터 3년째 지속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2일까지 총 8회, 16시간 수업이 진행됐으며 1:1 면담을 통해 선발된 40여 명의 환우와 가족들이 참석해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부적으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문하는 수업부터, 보여지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내가 어떻게 다른지,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가족과 함께 알아보는 미술수업 등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기약없는 치료를 끊임없이 받아야 하는 환우들의 정서적 불안과 사회적응의 어려움 등을 공감하고 스스로 불안, 우울 등 스트레스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 또한 오랜 투병생활로 지친 환우와 가족 간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갈등을 줄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 수업 통해 아이의 감정 느낄 수 있어
수료식 현장에서는 울고 웃었던 2주간의 기록을 담은 수업 영상도 공개됐다. ‘성안에 갇혀 있지만 즐거운 공주에요’, ‘끝나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등 아이들이 물감 묻힌 손바닥을 전지에 찍어 만들고,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을 표현한 작품에는 이들의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엄마와 함께 크레파스, 물감 등을 골라 때로는 새카맣게, 때로는 노란색과 연두색을 섞은 화려한 색감으로 감정의 색깔을 표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방송으로 소개됐다.
수업을 진행한 박남희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꽃은 겨울이 지나야 꽃이 피어나고 열매는 비바람을 견뎌야 열매가 맺어진다. 이처럼 세상에 거저 되는 건 없다”며 “애씀과 아픔, 고통은 우리에게 벽이지만 내가 힘을 가해서 밀어내면 그건 내가 걸어갈 길도 된다. 이점을 꼭 명심하고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친구들과 어머니들이 되길 바란다”며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가족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수료장을 전한 유석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전무는 “수업시간에 만든 미술 작품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지난 한 달간 모든 일정을 수료한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말씀을 드린다”면서 “수업을 통해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고, 옆에서 함께한 가족과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로 삼았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행복한 마음을 품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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