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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도전한 유모차 나들이, ‘멘붕’의 기록

서른한 살 초보엄마, 인생의 무게를 느끼던 날

ke.kim@ibabynews.com

 

'유모차는 가고 싶다!' 사람에게는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유모차를 끌든, 휠체어를 타든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그 자유가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다. 유모차를 끌거나 휠체어를 타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죄인처럼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유모차를 끌고 외출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생후 6개월 아이의 엄마 김아람(31) 씨의 외출 모습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기저귀 4개, 28g씩 나눠 담은 분유 4통, 물(150ml) 담은 젖병 3개, 물(200ml) 담은 보온병 1개, 노리개 젖꼭지 1개, 치발기 1개, 촉감책 1개, 물티슈 1개, 상하의 여분 옷 1개, 가재수건 3개, 겉싸개 담요 1개, 모자 1개.

백팩 안에 짐을 가득 채운다. 180일된 아들과 장거리 외출에 나서는 길. 서울 독산동을 출발해 인천 가좌동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다녀올 예정이다. 남편 없이 이렇게 먼 길을 나서긴 처음이라 긴장되지만, 오랜만에 만날 친구와 그의 갓난 딸을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에 준비하는 손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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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가까운 역 사이는 택시를 이용하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동암역까지는 1, 2호선을 이용할 것이다. 아기띠는 앞으로 메고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 집 밖으로 나선다. 지갑과 개인 소지품을 넣은 손가방 한 개도 따로 챙겼다. 오후 1시, 해가 쨍쨍해 유모차의 햇빛가리개를 내려 아이의 얼굴을 가려준다.

 

일명 '외출 키트'. 분유, 물, 노리개 젖꼭지 등 외출할 때 꼭 챙겨 나가는 물건들이다.  ⓒ김아람
일명 '외출 키트'. 분유, 물, 노리개 젖꼭지 등 외출할 때 꼭 챙겨 나가는 물건들이다.  ⓒ김아람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집 앞 도로에는 택시 승강장이 없다. 횡단보도 앞에 유모차를 세우고 아이를 아기띠에 안는다. 유모차를 접고 택시를 기다려보는데 어쩐지 빈 택시가 더디게 오는 느낌이다. 차들이 쌩쌩, 앞을 바삐 스쳐간다. 5분쯤 지난 것 같다. 드디어 주황색 택시 한 대가 코앞에 선다. 조수석 창문을 두드려 트렁크를 열어 달라고 소리친다. 도로의 화단과 주차된 택시 사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트렁크로 유모차를 나른 후 택시 뒷자리에 앉는다. ‘휴~.’ 안도의 한숨이 짧게 새어 나온다.


“역 앞으로 좌회전이 안 되니까 대로변에서 내리셔야 돼요.”


기사님의 말에 역으로 가는 동선을 떠올린다. 역의 대각선 방향에서 내리게 될 테니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될 것이다. “네.” 짧게 대답하고 내릴 준비를 한다. 택시가 서서히 멈춘다. 내리려던 길목 코너에 차가 잔뜩 주차돼 있다. 하차할 지점을 찾던 택시가 코너까지 닿지 못하고 그대로 도로 위에 서 버린다. 오른쪽으로 길이 나있는 건널목 정 중앙이다. 문을 열면 오른편에서 차들이 돌진해올 것 같은 위치. “기사님, 여기서 내려도 되는 거예요?” 재차 묻는다. “지금 바로 내리면 괜찮아요!”


차들이 달려오지는 않을까 마음이 급하다. 서둘러 꺼낸 유모차를 바로 펴지 못하고 원래 내리려던 코너까지 열 발자국을 옮겨 편 후 아이를 내려 눕힌다. 이제 출발하는 길인데 벌써부터 정신이 몽롱하다. 10차선 도로를 한 번 건너고 4차선 도로를 한 번 더 건넌다.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더라.’ 몇 번 왔던 길이지만 갑자기 기억이 안 나고 안내 표지판은 보이지 않는다. 노점 어르신께 엘리베이터 위치를 여쭤 2층으로 오른다. 자, 이제 본격적인 출발이다. 개찰구 앞에서 카드를 찍기 위해 유모차를 세운다. 그런데 잠깐. 백팩 뒤로 넣은 손이 허전하다. ‘이상하다?’


손가방이 없어졌다.


왔던 길을 떠올려본다. 길가에 떨어뜨린 걸까. 택시에 두고 내린 걸까. 택시인 것 같다. 택시를 수소문 해본다. 없다는 소리가 돌아온다. 유모차에 누운 아기는 멀뚱멀뚱 엄마만 쳐다본다. 집 열쇠며 온갖 소지품이 손가방에 있는데 큰일이다. 오랜만에 먼 친구 보러 간다고 너무 들떠 있었던 걸까. 이런 실수는 살다 살다 처음이다. “아들 미안해… 근데 엄마 어떡하니….” 정신을 붙잡고 유모차를 다시 왔던 길로 되돌린다.

 

구로디지털단지역 교차로 횡단보도를 아이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건너고 있다. 독산동 방면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대로는 이 교차로 지점에서 차량 좌회전이 불가해 대중교통 이용 시 역 후방이나 전방에서 내려 두 번의 건널목을 지나쳐야 한다. 이기태 기자 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구로디지털단지역 교차로 횡단보도를 아이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건너고 있다. 독산동 방면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대로는 이 교차로 지점에서 차량 좌회전이 불가해 대중교통 이용 시 역 후방이나 전방에서 내려 두 번의 건널목을 지나쳐야 한다. 이기태 기자 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4차선, 10차선 도로를 다시 건너는 길. 부산한 거리에 분주히 곁을 지나는 사람들. 방금이라도 재가 떨어질 것 같은 담배를 든 아저씨의 손이 아이 옆을 스친다. 구걸하는 아저씨는 유모차 앞을 막아선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지만 가방만 찾으면 다 괜찮을 것 같다. 가까스로 택시에서 내린 그 자리에 다시 가서 선다. ‘세상에.’ 마을버스, 차들로 건널목이 혼잡하게 차있다. 이런 곳에 아기를 안고 유모차를 내리라며 차를 세워줬다니…. 머릿속이 아찔해진다. 하지만 원망도 잠시. 바닥, 길목, 어느 곳을 두리번거려도 가방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하다. 이런 걸 두고 ‘멘붕’(멘탈 붕괴라는 뜻의 신조어)이라고 하던가.


행방이 묘연한 가방 찾는 일을 포기하고 카드와 주민등록증 분실신고를 하러 가는 길. 동사무소 입구를 덩치 큰 SUV가 가로 막고 서 있다. 사람 한 명이 몸을 비틀어 겨우 지나갈 만큼의 공간을 남겨 두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자주 접하는 곤란한 상황이다. 유모차는 접거나 들 수라도 있지만, 휠체어 타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지날 수 없을 길이다. 다행히 옆을 보니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은 있다.


쑥쑥 잘 커줘서 고마운 9.3㎏의 아들과 아들의 짐이 든 3㎏의 가방, 6㎏짜리 유모차. 엄마가 되긴 했지만 아직 자신도 아이처럼 덤벙댈 때가 많은, 서투른 초보엄마의 인생의 무게는 20㎏쯤 되는 걸까. 이 무게를 짊어지고 수많은 인파를 헤쳐 인천까지 다녀오는 건 너무 야심찬 계획이었던 걸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커져갈 테고 이유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가방은 더 무거워질 텐데.


열쇠가 없어 집에는 들어갈 수 없다. 동사무소 옆 마트 수유실에서 아이 기저귀를 갈며 아이의 상태를 체크한다.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마냥 예쁘다. 곧 20㎏쯤은 우습게 여겨지는 날이 오겠지. 그래도 앞으로 3년은 유모차 신세를 져야 할텐데 걱정이다. 앞으로 이런 외출을 계획하지 않는 게 최선일까? 지하철이나 버스 이용은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할까? 비죽대는 사이 저 멀리서 남편이 온다. 아이 낳고 남편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다.

 

한편 베이비뉴스와 뉴시스는 오는 9일 서울광장에서 '유모차는 가고 싶다' 영유아 보행권 및 어린이 안전 캠페인 제2기 서포터즈 소망식을 개최한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LG전자, 에이원, 아프리카코리아가 공식 후원하는 행사다. 캠페인 공식 홈페이지(http://safe.ibabynews.com)에서 자세한 사항을 살펴볼 수 있고, 참가 신청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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