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기가 쉽다고?
애 낳기가 쉽다고?
  • 칼럼니스트 김나희
  • 승인 2015.04.18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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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는 사치가 아닙니다"

[연재] 김나희의 불량정보 거기 서!


가끔 산후조리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듣곤 합니다. 주로 남성분들이 하는 말씀이죠. “우리 어머니는 아기 여럿 낳으면서 산후조리 한 번도 안 하시고도 불만 없이 잘 사셨다. 아기 낳고 며칠 뒤부터 밭일도 하셨다.” 정말 어머니, 할머니들이 ‘잘’ 사셨을까요?


'염불이 빠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궁이 질 밖으로 빠져나온 자궁하수(자궁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출산 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쭈그린 자세로 일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 복압이 올라가는 것이 자궁하수의 주요 원인입니다. 내치핵이 빠지는 치질을 '미주알이 빠진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출산 후 많이 생깁니다. '염불이 빠진다, 미주알이 빠진다'처럼 일상어로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흔히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고 박완서 작가의 소설 '꿈엔들 잊힐리야'에도 인상적인 묘사가 나옵니다.


<"꼬올 조오타. 넌 염불이 빠진 거야. 그래도 나한테 시침을 떼련?"


...가난하고 무지한 여자들이 몸을 풀자마자 산후조리할 새 없이 중노동을 하다가 자궁이 밑으로 빠져서 일생을 병신으로 사는 일은 두메에서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죽는 날까지 어기적대며 걸어야 하고 앉은자리마다 궂은 냄새를 남길 수밖에 없으리라.>


자궁탈이 생긴 여성들은 삶의 질이 극도로 낮아지는 것은 물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남편에게서도 냉대를 받게 되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남편들은 이를 핑계로 아내를 쫒아내거나 보란 듯이 후실을 들였습니다.

 

자식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자궁탈로 고생하며 사시는 것도 까맣게 모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 환자분이 떠오릅니다. 약간의 인지장애(쉽게 말하면 가벼운 치매)로 입원하신 68세의 할머니셨습니다. 건강관리를 적절히 받은 분이라면 같은 68세에 상당히 탄탄한 몸을 갖고 계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기 한 몸 돌볼 시간을 내지 못한 이 환자는 다 주어버리고 한 줌만 남은, 쥐면 날아갈 것처럼 작고 마른 분이었지요. 평생 희생하며 참고 살아오신 성격 때문에 인지장애가 왔어도 여전히 주변을 배려하는 모습이라서, 딱 '한국의 어머니'상이 떠오르는 분이었습니다.

 

병력 청취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가 40년 전 막내를 낳으면서 질이 손상되었는데, 시부모가 돈 아까우니 수술하지 말라고 했고, 40년 동안 직장질루(rectovaginal fistula)를 갖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분만 과정에서 질이 찢어져서 질(아기 나오는 길)과 직장(대변 나오는 길)이 뚫려버린 참혹한 상황인 것이죠. 이 환자의 경우, 그냥 뚫린 정도가 아니라 질벽이 전부 직장과 합쳐져버린 정도의 심한 단계였습니다. 평생 대변이 질로 나오는 고통을 안고 살아오셨죠.

 

제가 처음 발견한 직장질루를 자식들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딸과 며느리는 '왜 우리 어머니는 평생 목욕을 같이 안 가시지?'라고만 생각했었다고 하더군요.

 

산부인과에 의뢰해보니, 3단계 수술을 거치면 재건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은 아무나 하나요. 이 할머니는 빈혈과 저체중, 전반적 체력저하가 심해서 수술은 당장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빈혈과 저체중. 많은 출산과 부실한 식단, 고된 가사일과 농사일은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심한 빈혈과 저체중, 골다공증을 초래했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그저 아이들을 키워내고 살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굶어가며 일을 했습니다. 출산 후 쉬지도 못하고 굶은 몸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고 또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평생 아프다는 말도 참으면서 살아서 자식들은 '우리 어머니는 원래 그런 분' '우리 어머니는 말랐지만 강단이 있는 분'이라고 행복한 오해를 하고 살고 있죠. 비단 한국의 문제는 아니지요.모성소모는 제3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문제입니다.


과부. ⓒ엘리자베스 키스
과부. ⓒ엘리자베스 키스

 

출산은 대부분의 여성이 건강하게 통과하는 여정이지만 그렇다고 편한 여정은 아닙니다. 출산 전후에 충분히 배려받지 않으면 평생 가는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이 낳고 바로 밭일 하셨다고요? 그랬다가는 회음부 상처가 잘 낫지 않고 벌어지거나 자궁이 밑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궁하수 또는 자궁탈출을 갖고 계시면서도 평생 자식들에게 숨겨오신 어머니들도 있어요.

 

어머니들이 아이 낳고도 힘이 남아서 바로 일했던 것이 아니랍니다. 그분들이 불만을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이 없으셨던 것은 아니랍니다. 모든 여성에게는 출산 전후에 배려받고 충분한 영양을 취하고 휴식을 취할 권리가 필요합니다.


(주의: 휴식은 절대침상안정과는 다릅니다! 출산 후 너무 누워만 있으면 자궁이 뒤로 누운 상태로 자리잡아버리는 '자궁후굴'이 생길 수도 있답니다. 적당히 걸어 다니셔야 해요. 그리고 아기를 돌보는 활동은 후유증 없는 대부분의 산모들에게서 가능하기도 하고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칼럼니스트 김나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한방내과 전문의)이며 국제모유수유상담가이다. 진료와 육아에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둘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직접 자료를 뒤지는 성격으로, 잘못된 육아정보를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자연출산을 통해 낳은 아기를 모유수유로 키우고 있는 중이며  대한 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우리한의원에서 진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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