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그래요...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 기고 = 성유빈
  • 승인 2015.07.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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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멋진 워킹맘 꿈꾸다 좌절한 성유빈 씨

[특별기고]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결혼 비용? 육아 비용? 어마어마하다고? 이게 다 남들 하는 거, 따라 하려는 심보 때문인거야. 나처럼 내 소신껏 생활하면 아무 문제없어!!’

 

남편과 4년간의 연애기간동안 계획적으로 적금 부어 경기도 외곽 쪽에 신혼집을 얻고, 결국엔 예단3총사 다 해가며, 약간의 소신은 버렸지만 순탄하게 결혼식을 마쳤습니다.

 

결혼 전부터 둘째 아이 가지는 시기까지 계획 짜놓고 남편과 엽산제 3개월 챙겨먹고 술 끊고, 유난 떨며 허니문베이비에 성공하였지요.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임신에 성공, 애를 무사히 낳고 어쩌고저쩌고. 남들 다 힘들다고 엄살 피우는데, 나는 멋진 워킹맘이 되어야지.

 

이게 웬걸... 이 결심은 임신 후 일주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 임신부는 사회적 약자라고요

 

제가 임신소식을 직장동료들에게 알리자, 그들의 반응은 축하한다가 아니라 “왜 이리 빨리 가졌어?”였습니다. 임산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배려에 대해 낙담하게 됩니다. 저도 과거에 임신한 선임의 일을 도우며, 교과서적인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베풀었지만, 한 달이 못 갔습니다. 선임이 임산부라는 이유로 내 일이 더 많아진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여자인 제가 이해를 못했는데..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옛날 옛적에 출산을 한 사람들은 본인들의 고통은 다 잊어버리고, 임산부가 남들과 똑같은 일꾼이 되기를 강요합니다. 임산부가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 입덧의 시작

 

입덧으로 입원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저는 분명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람의 행세를 하며 살 수는 없는 정도였습니다. 항상 어지럽고 미식거려서 지팡이라도 있어야 첫 걸음이 떼어질 정도였으니깐요. 경기도 외곽에 신혼집을 얻어, 서울까지 나오는데 최소 1시간이 걸리는데 입덧에 광역버스를 타는 기분이란. 임신했다고 유난떤다는 평가 받기 싫어 회사도 악착같이 나갔습니다만 중간중간에 반차 쓰고, 연차 쓰는 날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눈치가 보이더군요.

 

입덧을 시작하며 가장 원망스러웠던 건, 어느 누구도 입덧이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라 말해준 이가 없었다는 겁니다. 매스컴을 봐도 임산부는 ‘우웩~ 우웩~’ 약간의 구토만 할 뿐 매우 정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어르신들도 당신들 시대에는 입덧 하는 티도 못 냈다며 다 참고 견뎌야 하는 거라 하더군요.

 

근데요. 정말, 입덧으로 회사생활 하는 게 얼마나 힘드냐면요. 둘째는 당연히 가지기 싫어지고요. 온갖 우울증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듭니다. 이게 단순히 개인의 차이일까요?

 

◇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이 무섭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 가능성 때문에 몸을 잘 보살펴야 하고,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와서 조심조심 해야 합니다. 저는 출근길에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하는데요. 열에 일곱 번은 사람들에게 찡겨서 가지만, 노약자석이 비어있으면 냉큼 앉아서 갑니다.

 

내 몸과 아이의 건강이 절실한 지금, 아무리 임산부이지만 젊은 여성이 노약자석에 앉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노약자에 포함이 되는데도 불구하고요. 지하철을 이용해본 임산부들은 대부분 이 에피소드를 겪습니다.

 

“젊은 사람이 왜 노약자석에 앉아 있어?”

 

딱 봐도 65세도 안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저에게 핀잔을 줍니다.

 

“저 임산분데요?”

 

민망하셨겠지요? 하지만 공격을 멈추진 않습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 노인들한테 자리를 양보해야...”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자리를 구걸하는 임산부가 되긴 싫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스스로 차지한 자리에는 앉고 싶습니다.

 

◇ 저출산을 요구한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

 

제가 임신하기 전에, 이런 사상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공평해야 하고, 회사에서 더 일 잘하는 사람이 승진하는 게 맞고 임신한 여자가 회사에 피해를 준다면 불이익 받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겠구나. 서러워도 감내하며 사는 수밖에...

 

하지만, 임신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출산이라고 나라에선 큰일났다 하고 어르신들은 젊은 여자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몰아치는데 저처럼 다출산을 꿈꾸던 사람도 사회에서 어떠한 배려도 받지 못하는 지금,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의 마음이 백 번 천 번 이해가 됩니다.

 

임신 5개월까지 입덧으로 고생하다가 이제 쫌 살만해지니 그동안 밀렸던 일들이 주어집니다. 이 또한, 회사 차원의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일주일에 4일을 야근하며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임신했다고 직장 그만두는 뻔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건만 회사에서는 임신 전이나 후나 똑같은 노동인력으로 밖에 보지 않는 거 같습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있으면서 임산부의 노동시간을 강제로 단축해주는 법안이 없는 이상 저출산은 계속될 것이며, 여성의 사회진출은 무한한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 경력단절, 현실이 되다

 

임신해서 회사 다니기 힘들다 하면, 그냥 집에서 쉬어라 라는 반응이 많은데 임신했다는 이유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이 자리를 놓아야 합니까? 폭력에 가까운 발상이지요. 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저는 시댁과 친정이 모두 지방에 있습니다. 이제 애기를 낳으면 출산휴가, 약간의 육아휴직 후 어린이집에 애기를 맡겨야 하는데 그것도 걱정이지만 육아휴직까지 쓴 직원이 둘째를 가졌다하면 회사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결국 지금은 출산 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경력에 집착하는 것 보단, 당장은 아기를, 가정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리곤 허무해집니다. 왜 굳이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서 그렇게 아등바등 공부하며 살았는가? 어차피 애 낳으면, 포기하게 될 걸... 처음부터 시작이나 말지...

 

저의 첫째 아이는 아들입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 아들에겐, 꿈을 위한 교육을 시킬 수 있어서입니다. 여자애를 가졌다면, 꿈에 대한 교육을 별로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이루고 버리는 것 보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야 버릴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여성의 사회진출 향상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일 수도 있지만 훗날 제가 딸을 가진다면 그냥 얌전히 살다 가정이나 잘 이루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야무진 꿈을 가지고, 결혼과 육아를 꿈꿨던 여자는 결국 대한민국 현실에 부딪혀 희생만 당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요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원고 모집 안내] 베이비뉴스는 다음카카오와 함께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임신하기 두려운 나라, 임산부 응원 뉴스펀딩 프로젝트(http://bit.ly/1IxGTVn)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라는 주제로 원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로 실어 널리 알리고, 원고료도 드리겠습니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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