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타던 간호사 부끄럼 타는 간호사가 되다
환자 타던 간호사 부끄럼 타는 간호사가 되다
  • 윤지아 기자
  • 승인 2015.11.18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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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직장어린이집 체험 수기 부문 최우수상 김은지 씨

【베이비뉴스 윤지아 기자】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주최하고 근로복지공단 직장보육지원센터가 주관한 '2015 직장어린이집 우수 보육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을 소개한다. 다음은 어린이집 체험수기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국회 제3어린이집 간호사 김은지 씨의 수기다.

 

*환자 탄다[명사+동사]: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운이 없어 바쁜 자를 이르는 은어/ [줄인 말] 환타


'환타' 간호사


소아과 병동에서 일했던 저는 '환타'로 유명했습니다. 제가 출근만 하면 입원 환자 예약이 빗발치고, 중환자실에서 모든 상태가 괜찮다고 해서 보낸 환자는 제 얼굴을 보자마자 숨을 못 쉬고, 응급실에서 올라온 아이는 병동 도착과 동시에 경련을 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경련하는 아이 할머니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기절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난데없이 보호자가 환자를 죽이겠다며 컵을 깨 뾰족한 유리로 위협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등장함과 동시에 일이 많아져 수간호사 선생님께서는 "K간호사 때문에 우리가 월급 받는다."라고 너스레를 떠시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병원이기에 여러 가지 사건이 늘 벌어지는데, 유난히 독특한 일을 많이 겪다보니 이젠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었습니다.

 

어린이집 적응기


그렇게 강심장이 된 간호사가 2014년 7월 어린이집 간호사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간호사를 찾는 가장 주된 호소는 찰과상, 타박상, 발열입니다. 제가 이런 증상이 있는 아이들을 보고 놀랄까요?


오히려 다친 아이를 데리고 온 선생님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놀란 토끼가 되어 아이를 안고 뛰어오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경련하는 아이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들어오는 부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선생님들이 둥글게 모여 큰일 났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저를 찾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환타의 위력이 이제야 나오는 구나! 한명쯤은 쓰러질 때도 되었지~'하며 마음을 담대히 하고 아이를 향해 뛰었습니다. 그런 저의 눈에 보인 아이의 얼굴은 1.5cm 정도의 찰과상뿐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놀이하던 친구가 손으로 할퀴었던 것입니다.) 상처를 깨끗하게 소독하고 재생밴드를 붙인 후 어머님을 만나 상처의 정도와 원에서의 관리 계획,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 드리고 일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처를 입은 아이의 아버님이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언성을 높이시는 겁니다. 이유는 상처를 입힌 아이의 부모가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선생님들이 왜 둥글게 모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가 돌봐도, 누가 놀이해도 다치지 않는 안전한 어린이집


매일매일 보건교사일지를 기록하며 아이들이 다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동일한 장소나 같은 이유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고는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300건의 이상신호, 29건의 경고가 있은 후에 1건의 대형 사고를 만든다.'는 하인리히 법칙대로 300건의 이상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문을 만지다 가시에 찔린 아이가 있어 어린이집 전체 공간의 문을 점검해 나무의 결이 벗겨져 있는 곳을 찾아보며 시트지를 붙여 보완하고, 대근육 매트의 연결부위(찍찍이)에 쓸려 찰과상을 입은 아이를 보고 매트마다 찍찍이에 부직포를 덧대었습니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끊다가 휴지커터에 손을 부딪쳐 상처가 난 아이를 보며 휴지커터를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고, 수시로 실·내외에서 아이들이 손닿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아이의 눈으로 살피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담당자에게 보수를 요청하였습니다. 작은 노력이었지만 아이들의 사고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시 점검하고 보수한 결과 동일한 장소나 같은 이유로 다치는 아이는 없었고, 아이들이 다치는 횟수 또한 크게 줄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어린이집 간호사'의 역할


어린이집에서의 근무가 처음이었던 저는 '어린이집 내에서 간호사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응급상황이 어린이집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서 간호사로 근무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사고의 '사후 처리'뿐만 아니라 사고의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간호사의 역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은 전염병에 있어서도 사고에 있어서도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합니다. 이에 저는 오늘도 장시간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아프지 않고 즐겁게 놀이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은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아이들의 건강을 살피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환타' 인가?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환타'의 진면모(?)를 보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부끄럼을 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네네님(선생님)이 아이스크림 보다 쪼아(좋아)" 때 아닌 사랑 고백을 하는 아이들. "네네님 아파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저도 모르던 제 손의 상처를 보며 묻는 아이들을 보면 어느새 제 볼을 발그스름해 집니다. 발음도 잘 못하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쩜 그리도 잘 발견 하는지요. 그리고 그 아픔에 어찌나 공감을 잘 하는지요.

 

아이들의 표정과 말 한마디로 인해 '내가 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크게 위로 받습니다. 그리곤 나도 누군가의 아픔에 저렇게 마음을 다해 공감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드의 시구처럼 아이들에게 소중한 것들을 배우며 환자 타는 간호사가 아닌 부끄럼 타는 간호사로 오래도록 아이들 곁에 머물기를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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