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오줌싸는 아이 "내가 싫어질라고 그래"
밤마다 오줌싸는 아이 "내가 싫어질라고 그래"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6.01.14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카노 후미코의 그림책 '요 이불 베개에게'
요 이불 베개에게 겉표지. ⓒ한림출판사
요 이불 베개에게 겉표지. ⓒ한림출판사

[연재]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이 글은 아이와 함께 읽은 타카노 후미코의 그림책 <요 이불 베개에게> 형식을 빌려 쓴 것입니다.

 

요야,

이불아,

베개야.

아침까지 푹 자게 해 줘.

부탁할게.

 

너희들도 들었지? 그 새벽, 둘째 아이가 했던 말.

 

"아빠~"

"(잠결에) 으응?"

"아빠, 미안해. 내가 또 쉬를 해버렸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래 알았어. 얼른 씻으러 가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딱히 혼도 못 내겠고, 이제 6살인데 계속 이러면 어쩌나... 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새벽마다 아이를 씻기고 침대 시트를 가는 게 어느덧 일상이 돼 버렸네. 한동안 괜찮더니 다시 시작이라 더 걱정이야.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부의 '잠 못 드는 밤'이 아닌 것 같아. 

 

남편은 평소와 달리 지쳐보였어. 목소리도 날카로웠지. 아이도 뭔가 다르다고 느낀 걸까? 그날 아침 둘째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아이는 슬픈 얼굴로 말했어. "내가 싫어질라고 그래."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제 6살짜리가 하는 말에 갑자기 나도 슬퍼졌어.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어. 잠들기 전 "아빠 옆에 꼭 달라붙어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둘째니까, 무서운 꿈을 자주 꾸는지 "아빠에게 지켜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빠 껌딱지' 둘째니까. 그런 아이에게 아빠가 화나고 속상한 것만큼 마음 쓰이는 일은 없겠지. 

 


미처 몰랐어. 우리만큼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하며 "좋은 잔소리(잠자기 전에 물 많이 먹지 마라, 자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엄마아빠를 깨워라, 하다 못해 아침까지 참아라 등등)도 이쯤이면 그만 하라는 거겠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한 건 그 때문이야.

 

물론 너희들이 해준 말도 들려줬어.

 

네 요가 말했다고.

네 배 속에서 오줌이 찰랑찰랑 몸부림치면

내가 이렇게 달래 줄게.

"기다려 기다려 아침까지 기다려", 라고.

 

네 이불이 말했다고.

팔이랑 다리랑 낮에 넘어져 피가 난 무릎도

호호 불어 주고, 문질러 주고, 따뜻하게 감싸서

싸악 낫게 해줄게, 라고.

 

네 베개가 말했다고.

머릿속에서 무서운 꿈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면

내가 콧김으로 씽씽 날려버릴게, 라고.

 

그런데 내 말을 듣던 아이 얼굴은 더 심각해졌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 그리고 말했어.

 

"내 이불에는 눈코입이 없는 걸..."

"아... 아냐, 그렇지 않아. 산타 할아버지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계시잖아. 네 이불에 있는 눈코입도 눈에 안 보이는 거 뿐이야. 그러니까 걱정마."

 

아, 이 놀라운 임기응변. 이 말이 효과가 있던 걸까? 그 다음날 새벽 아이는 더이상 "미안하다"고도 "용서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어. 대신 웃음을 주었지. 힘들겠지만 당분간 이 웃음으로 버텨야 할까봐.

 

"아빠~"

"(잠결에) 으응? 왜?"

"문제가 생겼어."

"무슨?"

"내가 오줌을 쌌거든, 엉덩이 좀 씻겨줘."

"하하하. 그러게 문제는 문제네. 얼른 씻으러 가자. 그나저나 이제 6살인데, 너 진짜 어쩌냐. 하하하."

 

오늘 새벽에는 어떤 말을 하며 우릴 깨울지 궁금해지는 밤. 그래도 요야, 이불아, 베개야 고마워. 오줌 싸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무서운 꿈을 꾸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으니까. 오줌싸개 우리 막내,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이 그림책은요]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게 그림책의 매력이라더니, '혼자 자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한 이부자리 짝꿍 책'이라는 출판사의 소개 글이 눈에 띕니다. 읽고보니 이렇게 다정한 요와 이불, 베개를 친구 삼아 삼을 청하면 혼자 자는 마음이 한결 편해지겠네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 타카노 후미코는 원래 만화가였습니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따뜻한 마음과 유머가 담긴 이 책은 그의 첫 그림책으로 지난 2010년 한림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9살 다은, 5살 다윤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Copyrights ⓒ 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